믿음의 도전 (히브리서강해 7), 히 5: 1~10,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2024.07.26 12:59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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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5: 1~10,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찬 91장(슬픈 마음 있는 사람)

‘히브리서’의 배경을 보면 히브리서는 고난 가운데, 환란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서신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는 어떻게 하면 그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또 환란을 이길 수 있는지를 말씀하지 않고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서만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성도가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처할 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단지 그 문제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 가운데서도 오직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중보자가 되시며, 능력이 되시기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다시 일어나 믿음으로 승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장’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 대해 말씀했고, ‘2장’에서는 ‘큰 구원을 이루신 구원자 예수님’에 대해 말씀하면서, ‘3장’에서는 그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참된 안식’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4장’에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이 주시는 안식의 은혜’를 설명하면서, 계속에서 ‘5장’ 역시 우리의 ‘중보자이신 대제사장 예수님’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중보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제사장을 통해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이제는 우리의 참된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본문 ‘1절부터 4절’ 말씀을 보면 어떤 사람이 대제사장이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택정함을 받은 사람만이 제사장에 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특별해서 대제사장이 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지명하셨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 ‘5절, 6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자기 자신을 스스로 높여서 대제사장이 되는 영광을 차지하신 것이 아니라, 그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고 말씀하신 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또 다른 곳에서 “너는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 임명받은 영원한 제사장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의 중보자로 삼으시기 위해 대제사장으로 이 땅에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라는 의미는 인간적인 가문이나 혈연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세우시고 인정하신 하나님의 권능에 의한 대제사장이다’라는 것입니다.

‘멜기세덱’은 성경에 딱 한 번 나오는 인물입니다. ‘창세기 1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자신의 조카 ‘롯’이 사로잡혀 갔음을 듣고 소돔과 고모라 왕과 싸움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승리하여 자신의 조카도 구하고 많은 재물도 탈취하여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 때 ‘아브라함’을 맞이하여 축복한 제사장이 바로 ‘살렘 왕 멜기세덱’이었는데, 성경을 보면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이었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멜기세덱’은 하나님께서 아직 ‘레위 족속’을 제사장 지파로 세우시기 전, 그리고 그 어떠한 제사 의식이나 제사 규정이 없을 때에, 하나님이 직접 ‘멜기세덱’을 선택하셔서 제사장으로 세우시고, 그를 통해 ‘아브라함’을 축복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멜기세덱’은 가문이나 혈연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통해 제사장이 되었고, 하나님은 그를 통해 하나님의 권능과 축복을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게 하셨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축복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권능으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2장 5절’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중보’라는 말은 ‘중간에 섰다’라는 뜻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사람의 중간에 서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께서 인간을 정죄하는 검사로 서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변호하시는 변호인으로 서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중보’의 의미는 단순히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서 계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와 모든 것을 동일하게 함께 행하신다’는 뜻입니다. 바로 우리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께서 어떤 상황과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우리와 모든 것을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택하신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는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7절부터 10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육신으로 세상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께 큰 부르짖음과 많은 눈물로써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경외심을 보시어서, 그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에게서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 대제사장으로 임명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 심한 통곡과 많은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하나님께 올리셨습니다. 그런데 이 눈물은 단순히 자신의 고통을 위한 눈물, 자기 연민의 눈물이 아닙니다. 인간적 한계 속에 있는 모든 연약한 인간, 모든 인류를 위한 애통의 눈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간구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의로움이나 자랑 때문이 아니라,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고 때로는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 할지라도 오직 예수님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담대히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를 마무리 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끝을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14절’에 예수님께서 직접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갈 길을 몰라 헤맬 때, 실패 속에서 좌절하고 있을 때, 외롭게 병과 싸우고 있을 때,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깊어 괴로워하고 있을 때, 죄악의 길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죽음의 골짜기에 떨어져 신음하고 있을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그런 나를 위해 눈물로 통곡하시며 가슴 아파하시고, 또 그 아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직접 개입하시고 함께 하셔서, 우리가 그 문제와 고통에서 이기고 승리할 수 있도록 함께 역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담대히 주님을 향한 믿음 안에서 그 모든 것을 말씀 안에 순종함으로 이겨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제목: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에 중보자가 되심을 늘 기억하게 하시고, 그 주님을 믿고 순종함으로 내 삶 속에서 주님의 능력과 은혜가 넘치게 하소서.

중보기도(금: 예배와 예스미션): 주일 선교 파송 연합 예배와 모든 목장과 새벽 예배와 모임 가운데 주의 영이 임하시고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소서. 예스미션이 은혜 가운데 잘 이뤄지게 하시고 모든 성도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소서. 이 땅 가운데 세우신 모든 주의 종들이 어둔 세상을 말씀으로 빛으로 비추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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