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도전 (히브리서강해 5) 히 4:1-7  안식할 수 있는 믿음

2024.07.23 14:58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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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도전 5 히4:1-7  안식할 수 있는 믿음  찬421/469  내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안식이란, 창세기 2장을 보면 단순한 쉼을 넘어서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설계한 축복의 날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과의 만남의 날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에 안식이 안되는 안식이 있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안식이 무엇이고 안식이 회복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가지를 살펴봅시다.

첫째 안식은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4:1-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에 들어가리라는 약속이 아직 남아 있는 동안에, 여러분 가운데서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하십시오 그들이나 우리나 기쁜 소식을 들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들은 그 말씀이 그들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듣고서도, 그것을 믿음과 결합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는 자가 믿음을 갖고 듣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령 TV를 켜려고 리모컨을 눌렀는데 작동이 안됩니다. 잘보니까 베터리가 없습니다. 이 리모컨은 아무것도 켤 수 없는 무용지물입니다.

말씀이 그렇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이 있어도 거기에 우리의 믿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란 의미입니다. 그럼 여기서 필요한 “믿음”은 뭘까요? 히브리 기자는 이것을 11장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보이지 않는 그분의 말씀을 실상의 삶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11장에 몇가지 예를 듭니다. 하나가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아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사를 드렸고 가인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또 하나는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 못하지만 말씀을 듣고 그대로 갔다고 말합니다. 또 하나는 노아는 말씀을 듣고 방주를 지었다고 말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말씀을 들은데로 삶으로 실상화 시킨 것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이것은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믿는 믿음이 결합되야 나올 수 있는 행동이란 것입니다.(요1:1)

미국의 존 맥스웰 목사가 오하이오에서 목회할때. 그는 사냥꾼으로 유명한 교우와 함께 고속도로를 드라이브 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는 그때마다 그 교우의 특별한 면을 보며 놀랐습니다. “목사님, 저기 다람쥐가 있네요.” 그러나 존맥스웰 목사에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목사님, 저기를 보십시오. 오리가 두 마리나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보지 못했습니다. “목사님, 사슴을 보십시오.” “토끼가 지나갔습니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그 교우는 십여 마리의 짐승을 봤습니다. 그러나 같은 길을 같은 차를 타고 가면서도 맥스웰 목사는 전혀 보지 못하고 지루한 “고속도로”만 보였다고 말합니다.

믿음의 세계는 믿음을 갖을때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본 것을 열 사람의 정탐꾼은 보지 못했습니다. 신앙인은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말씀을 들으며 믿음이 생기기도 하지만 “믿음을 갖고 말씀을 들을때는 놀라운 하나님의 세계가 보입니다.” 이런 안식과 충전이 되는 예배가 되길 축복합니다.

둘째 안식은 “말씀을 들을 때 시험하지 말라” 입니다.

4:6-7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안식에 들어갈 기회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기쁜 소식을 먼저 들은 사람들이 순종하지 않았으므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시 ‘오늘’이라는 어떤 날을 정하시고, 이미 인용한 말씀대로, 오랜 뒤에 다윗을 통하여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완고함은 “목이 굳다, 마음이 뻣뻣하다” 라는 의미도 있지만, 여기서는 “시험”이란 의미입니다. 이 본문은 시편95:7,8을 인용한 것인데 이 내용은 16장에 출애굽 백성들이 모세앞에 목이 마르니까 모세에게 “물을 내어봐라 그러면 내가 여호와인것을 믿겠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면 믿겠지만, 안들어 주면 안 믿겠다고 “하나님을 시험한 사건”입니다. 이같은 시험은 마귀가 주로 사용하는 유혹입니다. 창세기에 마귀는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어봐, 말씀대로 죽는지 않죽는지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 했습니다. 눅4장에 예수님이 광야에 시험당할때도 마귀는 “하나님은 너를 지키신다고 했으니 높은데서 떨어져 보라”고 유혹합니다.

마귀는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이같은 시험의 마음을 주는데, 이것은 신뢰관계를 깨뜨리는 교묘한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우리는 그것을 순종하는 관계가 인간의 가장 복된 관계인데, 이것을 교묘하게 인간중심으로 바꾸어 그 관계를 깨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관계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연인이 애인을 위해 집을 바래다 줄때 뒤돌아 보면 “이 여자는 나를 사랑한다” 그런데 안보면 아니다.” 사랑하는 관계를 서로 시험하게 합니다. 이 마귀의 시험은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근데 중요한 점은 관계를 깨는 마귀의 시험이란 점입니다. 말씀 앞에 이런 태도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는 마음은 “언약적 사랑의 헤세드”입니다. 상대가 내 뜻대로 행하든, 아니든 언약한 말씀을 행하는 것이 헤세드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배신하고 뒤돌아서며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어주셨습니다. 이것은 상대와 상관없이 약속의 말씀을 지킨 사랑입니다. 마귀는 오늘도 우리의 모든 관계속에 이 시험거리를 만들며 안식하지 못하고 늘 의심하며 불안하게 만듭니다. 오늘도 우리가 이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언약의 안식을 회복할때 진정한 쉼을 얻게 됩니다. 내 뜻에 말씀을 맞추고 사람들을 맞추는게 아니라 오늘도 한결같은 말씀에 맞추는 안식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예수님을 통한 진정한 안식을 누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때 믿음을 갖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있게 하소서

중보제목:(화: 목장/목자/VIP/ 예스미션/VBS를 위해) 모든 목장마다 안식의 모임이 되게하소서, 목자의 가정에 쉼을 주시고 재충전되게 하소서, 예스미션과 VBS를 통해 선교적 교회로 서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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