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섬김(룻기서 강해 9), 룻 4: 1~6, 보아스와 아무개
2024.07.10 11:16
예수인교회
룻 4: 1~6, 보아스와 아무개, 찬 435장(나의 영원하신 기업)
지금까지 룻기서’를 살펴보면서 도저히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하나도 없던 ‘룻’이라는 이방 여인이 그 절망과 고통 속에서 그의 인생이 ‘기업 무를 자’ ‘보아스’를 만남으로 인해 하나님의 ‘헤세드의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성도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의 삶의 ‘기업 무를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분께 나의 모든 삶을 맡길 때 우리의 삶도 ‘룻’의 삶처럼 고통과 절망이 소망과 감사의 은혜의 삶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룻기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룻’이 ‘보아스’를 만난 것처럼, 우리의 삶속에서 온전히 주님을 만나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이 축복을 받은 첫 번째 사람은 ‘보아스’가 아니었습니다. ‘3장 12절’에 보면 ‘보아스’는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한 사람 있소”라고 말하고 있고, 또 오늘 본문 ‘1절’에서도 “집안간으로서의 책임을 져야 할 바로 그 사람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그 사람을 “여보시오”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개역개정 성경’은 “아무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이을 ‘첫 번째 기업 무를 자’는 ‘아무개’가 되었고, 두 번째 사람인 ‘보아스’가 그 은혜와 축복을 잇는 축복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아스’가 하나님의 주시는 ‘기업 무를 자’의 놀라운 축복을 받기 위해 한 행동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는 세상이 아닌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고 성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이제 ‘보아스’는 ‘룻’과 결혼하기 위해 아침 일찍 성문에 올라가 앉게 됩니다. 여기서 ‘성문에 앉았다’는 것은 단순히 ‘성문에 올라가 앉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당시 재판 장소가 없었던 사사시대에 ‘성문’은 사람들이 문제가 생길 때, 재판을 열었던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성문 위 회관의 자리’는 판결을 내리던 장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서 ‘보아스’가 ‘성문 위 회관 자리에 앉았다’는 것은 그가 ‘룻’의 문제로 높은 자리에 앉아 재판을 열 수 있는 대단한 권력자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욱이 ‘3절’에 장로 ‘10명’을 청하여 그 옆에 앉게 했다는 것은, ‘10명’이란 당시에 무리의 완전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확한 법적 효력을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즉 ‘보아스’가 높은 권위와 신분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보면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보아스가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성경을 보면 ‘보아스’는 ‘룻’의 기업을 무를 첫 번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그가 ‘룻’을 아내로 맞이할 확률이 매우 적고 위험 요소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이런 방법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룻’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룻’이 이방여인이었기에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면 편법을 써서 쉽게 그녀를 차지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세상적인 방법이나 편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었습니다. 손쉬운 방법을 통해서 ‘룻’을 얻을 수 있었지만, ‘보아스’가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방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결과가 좋으면 다 좋다고 말합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라도 우선 돈만 많이 벌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지고 재물을 모아, 그것으로 헌금을 많이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로마 군사들에게 잡히시던 밤에 옆에 있던 ‘베드로’가 칼을 들고 ‘말고’라는 사람의 귀를 자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때 예수님께서는 떨어진 그 귀를 다시 붙여주시면서 ‘베드로’에게 칼을 쓰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지금이라도 하늘에 있는 천사들을 부른다면 그들이 와서 이들을 다 멸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힘이 없어서 잡히신 것이 아닙니다. 능력이 부족해서 고난을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삶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예배시간에는 뜨겁게 찬양과 기도를 하고, 은혜를 받으며 감격하고 울기도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성경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다고 말하는, 미련하다고 말하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간다면, 그 삶은 진정한 하나님의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 아닌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아무리 거룩한 척하고 신실한 척해도, 세상에서 그 거룩함이, 구별됨이 들어나지 않는다면, 세상적으로는 그 삶은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하나님이 보실 때, 그 삶은 실패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생활 뿐 아니라 세상의 삶에서도 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순종하며, 세상의 빛처럼, 소금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아무개’라는 사람들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업 무를 자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나의 유익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이름을 알 수 없지만 ‘아무개’라고 불리는 ‘룻’의 첫 번째 기업 무를 자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는 처음에는 ‘보아스’의 말에 ‘자신이 그 기업을 무르겠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보아스’가 ‘룻’의 기업도 함께 물어야 한다고 말하자, 그는 본문 ‘6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조건이라면 나는 집안간으로서의 책임을 질 수 없소. 잘못하다가는 내 재산만 축나겠소. 나는 그 책임을 질 수 없으니, 당신이 내가 져야할 집안간으로서의 책임을 지시오.”
이 ‘아무개’는 “내게 손해가 되기 때문에 그 일을 할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과 책임보다 자신의 삶의 유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도 내게 유익이 될 때,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때, 높임을 받을 때 순종을 하지만, 사람들이 알아봐 주지 않고, 인정해 주지 않는 일에는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달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 어디에도 그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분명 ‘룻’과 ‘나오미’의 기업 무를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매우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를 표현하기를 의도적으로 ‘아무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아무개’라는 히브리어의 의미는 ‘아무 쓸모없는 땅, 아무 가치 없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즉 성경에서 이 사람을 ‘아무개’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보아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는 하나님의 일에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가치도 없었던 사람,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기억조차 하실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서 20절’ 말씀을 보면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책임을 저버리고, 자신의 유익과 안락만을 위해 산다면 그것은 비록 세상에서는 조금은 편하고 조금은 좋을지 몰라도,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삶이며, 그 이름조차도 기억되지 못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똑같이 세상을 살고, 똑같이 주어진 삶을 사는데 한 사람은 ‘예수님의 예표’가 되면서 그 이름이 후대에까지 높임을 받고 급기야 메시야가 탄생하는 존귀한 사람이 된 반면, 또 한 사람은 그 이름조차도 없이 안개처럼 사라지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바라기는 여러분 모두는 ‘아무개’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잊혀진 사람이 아닌 ‘보아스’와 같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영원히 기록되고 기억되어지는 축복의 사람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오늘 나의 삶이 세상의 것만을 얻기 위한 아무개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실천하는 보아스의 삶이 되게 하소서. 나의 삶과 가정도 보아스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사명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기업 무를 자의 축복을 받게 하소서.
중보기도(다음세대): 교육부, 유스, 청년들이 하나님의 기업을 잊는 축복자가 되게 주의 영을 부어 주소서. 7월 22일부터 24일까지 있는 교육부 VBS와 유스, 청년부의 여름 사역 가운데 은혜를 부어주시고 많은 VIP 영혼들을 품게 하소서. 다음 세대를 이끈 영적 지도자들이 말씀과 성령으로 세워지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