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섬김(룻기서 강해 7), 룻 3:6-13, 아름다운 사랑을 위한 책임, 고엘
2024.07.05 07:10
예수인교회
아름다운 섬김(룻기서 강해 7), 룻 3:6-13, 아름다운 사랑을 위한 책임, 고엘 찬송가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룻기서에 흐르고 있는 핵심중 하나가 바로 “헤세드”의 사랑입니다. 이 헤세드는 간단히 말하면, 언약적 사랑으로 약속한 것을 책임지는 사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가령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이 연약한데도 끝까지 책임지고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은 아브라함의 공로나 노력이 아닌 그저 창12장에 아브라함과 피의 언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구원한 하나님께 계속 불평을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까지 인도합니다. 왜죠? 출애굽기 19장에 시내산에서 그들과 언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도 부족하고 감정도 연약해서 하루에도 12번씩 바뀝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빚어갑니다. 왜냐면, 십자가에서 주님의 피로 구속에 대한 언약을 맺은 겁니다. 이것이 헤세드 “언약적 사랑”입니다. 즉 아름다운 사랑이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선행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언약을 지키는 책임입니다. 오늘 룻의 모습속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위한 2가지 책임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등장하는 책임은 “말씀에 대한 책임”입니다. 6
헤세드의 기본은 “언약적 사랑”입니다. 그래서 언약인 말씀을 지키는 데서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은 룻에 대해 이렇게 표현합니다. 룻3:6 그는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가 시킨 대로 다 하였다. 이것은 어제 살펴본 나오미의 명령뿐만 아니라 룻의 삶전체를 표현하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보세요. 그녀는 지금까지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왔고, 그모스신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고,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밭에 나갔고, 종들의 말을 듣고 이삭을 가져오고, 오늘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 보아스에게로 나갑니다. 말씀대로 다 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녀의 성격은 우리가 알듯이 매우 내성적이며 조용하고 매우 신중합니다. 그런 여인이 고향을 버리고 평생 믿었던 신을 버리고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 틈에서 이삭을 줍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이런 룻에게 보아스를 유혹하라는 것은 성격은 둘째치고 동네에서 모진 소문이 날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모든 명령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 사사기 시대의 이야기란 점입니다. “자기 뜻대로 행하는 시대”입니다. 즉 시대적으로 볼때 룻은 바보, 또는 미련한 사람으로 취급되는 시대 였기에 말씀을 지키는 것은 더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말씀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지만, 그것이 어려울까요? 성경을 보면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죄의 속성입니다. 요일 3:4 죄를 짓는 사람마다 불법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죄는 곧 불법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죄 때문이라고 정의 했습니다. 또 하나는 나의 법 때문입니다. 사사기의 특징은 내소견을 따르는 것입니다. 내생각 내뜻, 나의 법이 하나님의 법보다 우선되기에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가령 용서하라는 말씀을 들어도 내가 보기에 용서가 안되기에 따르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라고 해도 내가 보기에 안될것 같기에 따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보다 나의 법이 항상 더 강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씀을 지킬 수 있을까요?
오늘 보아스가 룻에게 감동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이 10절입니다. 룻3:10 보아스가 룻에게 말하였다 이봐요 룻 그대는 주님께 복받을 여인이오 가난하든 부유하든 젊은 남자를 따라 감직한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 지금 그대가 보여준 갸륵한 마음씨는 이제까지 보여준 것보다 더욱 더 값진 것이오. 그녀는 말씀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젊음과 가치관과 인생의 경험을 내려놓고 이것을 지키기 위해 책임을 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아스는 “값지고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아름다운 사랑이 세워지려면 나의 법과 권리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주변에 아름다운 공동체가 아름답지 않게 느껴질때가 있습니다. 대부분 이유는 하나입니다. 나의 법을 따르고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가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 된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말씀을 지킨것입니다. 오늘도 부부관계속에 직장관계와 목장안에서 나의 법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아름다운 사랑을 세워가는 예수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등장하는 책임은 “영혼에 대한 책임”입니다. 7-13
7-8절을 보면 드디어 타작이 다 끝이나고 밤이 깊어 일꾼들이 잠이 들무렵 보아스도 잠자리에 들었을때 슬그머니 룻은 그의 발치로 가서 스윽 들어갑니다. 이때 보아스가 돌아눕다가 깜짝 놀라 일어납니다. 룻3:9누구요 하고 물었다. 룻이 대답하였다. 어른의 종입니다. 어른의 품에 이 종을 안아 주십시오. 어른이야 말로 집안 어른으로서 저를 맡아야 할 분이십니다. 여기서 문제의 문장이 등장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순수한 룻이 할 수 없는 말들을 던집니다. 근데 해석을 잘해야 합니다. 먼저 어른의 종이란? 룻은 당시 약 20대초반이고 보아스는 약 60대전후반이기에 이런 표현을 쓴 것입니다. 근데 “어른의 품에 이 종을 안아 주십시오.” 약간 꼬리를 치는 마치 유혹하는 말로 들립니다. 사실은 이것은 보아스가 2:12에서 “하나님의 날개아래 너를 덮어 주실거다” 그 표현을 가지고 와서 보아스 당신이 집안의 어른으로서 나를 맡아야 할 사람이기에 “책임져 주십시오.”라고 사실은 정중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잘봐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할 수 없는 말을 던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11절을 후반을 보면 “그대가 정숙한 여인이라는 것은 온 마을 사람들이 다알고 있소” 그녀는 이런말을 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하게 되었는가? 지금 그녀의 마음안에 이런 간절한 마음은 자기 자신 한명을 위한게 아니라 나오미와 자신의 가문을 책임지는 마음에서 용기가 나오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말이 있죠 “여자는 약하다 근데 엄마는 강하다.” 이해가 되시나요 우리가 언제 체면버리고 담대해 질 수 있냐? 책임지는 사람이 있을때, “두려움 없는 헤세드의 사랑”이 나오는 것입니다.남편과 아내가 언제 가정을 위해 목숨을 버릴만큼 사랑이 충만해지죠. 사랑하는 자녀들이 있을때입니다. 영적 리더는 언제 불같은 사랑으로 희생할 수 있죠? 맡겨진 영혼이 있을때 입니다. 목장을 하다보면 이럴때가 있습니다. 새가족이 들어올때 난리가 납니다. 서로 섬기고 희생하려고 하죠. 이 새가족이 아무말이나 막던져도 웃음보가 터져나오는거에요 그게 그랬냐고 다 오바맨들이 됩니다. 정말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나오는데도 오바하잖아요 그랬냐고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며 영혼을 향해 책임지는 헤세드의 넘치는 사랑이 막뿜어져 나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맡겨진 가족이나 직장 동료 또는 지체들에게 우리가 이런 오바맨들이 될때 어떻게 될까요? 가정과 교회가 어떻게 될까요? 거기가 천국이 될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