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섬김(룻기서 강해 6), 룻 3: 1-5, 내 인생 이야기의 저자는 누구인가?

2024.07.04 19:23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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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 3: 1-5, 내 인생 이야기의 저자는 누구인가? 찬 370장(주 안에 있는 나에게)

오늘 본문 말씀은 ‘룻기서’ 전체 이야기 중에 클라이맥스가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의 가정이 기근을 피해 ‘모압’ 땅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엘리멜렉’ 자신과 두 아들은 죽고, 그 아내 ‘나오미’는 과부가 되어 어린 며느리 ‘룻’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면서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 ‘나오미’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동안 부정적이었고, 소극적이었던 ‘나오미’가 ‘룻’의 섬김과 헌신으로 다시 힘을 얻어 ‘룻’이 ‘보아스’의 아내가 되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장면입니다.

그러면서 ‘2절’을 보면 ‘나오미’가 이렇게 말합니다. “생각하여 보렴. 우리의 친족 가운데에 보아스라는 사람이 있지 아니하냐? 네가 요즈음 그 집 여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잘 들어 보아라. 오늘 밤에 그가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부를 것이다.” 여기서 ‘친족’이란 ‘기업 무를 자’라는 의미입니다. 즉 그 여자를 책임질 의무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목욕을 하고, 향수를 바르고, 고운 옷으로 몸을 단장하고서,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거라.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마칠 때까지, 너는 그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여기서 목욕하고, 향수를 바르고, 몸을 단장하고,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말들은 마치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는 장면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당시 여성이 남성에게 청혼을 할 때 하는 몸가짐입니다.

그런데 충격적이고 다소 파격적인 내용이 ‘4절’ 말씀입니다. “그가 잠자리에 들 때에, 너는 그가 눕는 자리를 잘 보아 두었다가, 다가가서 그의 발치를 들치고 누워라. 그러면 그가 너의 할 일을 일러줄 것이다.” 이 부분을 우리 성경은 건전하게, 그리고 보수적으로 번역을 했지만, 다르게 보면 이 단어들의 의미 안에는 굉장히 노골적인 성적 행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어머니의 지시를 들은 ‘룻’의 입장에서는 시어머니의 말이 당혹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5절’을 보면 ‘룻’이 이렇게 말합니다. “룻이 시어머니에게 대답하였다. “어머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다 하겠습니다.” 이것은 바로 ‘믿음의 순종’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룻’은 ‘기업 무를 자’, 즉 ‘나오미’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며느리에게 힘든 명령을 했을 때, ‘룻’은 그 말씀에 ‘아멘’하고 순종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종’이 ‘룻’의 운명과 ‘나오미’의 운명을 바꾸게 된 것입니다. 이방 여인 ‘룻’은 하나님의 축복의 회중에 들어올 수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룻기 1장’을 보면, 성경은 의도적으로 ‘모압’이라는 단어를 ‘7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룻’이 ‘이방 여인’이며 그것도 악한 ‘모압 족속’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장’에서는 그런 그녀가 그 ‘섬김’과 ‘순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그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믿음의 사람’에게 ‘섬김’과 ‘순종’은 그 인생을 바꾸는 능력인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 ‘3장’을 묵상하면서 주의 깊게 살펴본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시어머니’라는 단어입니다. ‘룻기 3장’은 의도적으로 ‘시어머니 나오미’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시어머니’라는 의미는 ‘법적인 어머니’, ‘법적으로 책임을 갖고 있는 어머니’라는 뜻입니다. 즉 ‘나오미’는 ‘룻’에게 자신이 ‘룻’의 행복을 책임질 책임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얘야, 네가 행복하게 살 만한 안락한 가정을, 내가 찾아보아야 하겠다.” 그들이 고통 속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 ‘룻’은 ‘나오미’를 위해 ‘안식처’가 되어주었습니다. ‘룻’이라는 존재 자체가 ‘나오미’의 안식처면서 그가 의지하며 일어설 수 있었던 ‘설 자리’가 되어 준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누군가의 설 땅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게 되면, 제게 필요한 땅은 발이 닫는 약 30cm정도의 땅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눈을 감고도 설 수 있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제가 눈을 감고 있는 순간에 제 주변의 땅을 30cm정도만 남겨놓고 10m 깊이로 파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가 똑바로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두려움에 떨면서 흔들리거나 떨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불필요해 보이는 이 땅이 있기 때문에 내가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불필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이것이 있기 때문에 내가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이웃이 된다’는 것은 그의 문제를, 근심 걱정을 해결해 주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방황하거나 고통 속에 있을 때, 그의 설 땅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누군가의 설 땅이 되어주고,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종교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설 땅 혹은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바로 ‘룻’은 그런 ‘나오미’에게 ‘서 있을 수 있는 땅’이 되어준 것입니다.

‘룻기서’를 읽으면서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룻기서’ 안에서 ‘하나님이 등장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만 등장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명령하셨다던지, 하나님이 뭔가를 책망하셨다던지, 하나님이 무엇인가 능력을 나타내셨다던지, 이런 말씀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단지 하나님은 이 ‘룻기서’에서는 이야기의 배경으로만 존재하시고, 적극적으로 이 이야기에 개입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은 ‘신실한 자신의 백성들의 삶’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자신을 세상 앞에 직접 드러내시기도 하지만, 또 우리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시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룻기서’는 그 하나님의 사람들, 특히 우리가 계속해서 ‘룻기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랑, ‘헤세드’, 그 사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주려고 하는 그 마음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를 통해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룻기서’ 말하는 핵심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종교적인 말과 모습을 갖고 살아간다고 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우리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 믿음은 헛된 믿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룻기서’에서는 하나님이 등장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룻’의 마음, 그의 시어머니 ‘나오미’를 향한 ‘헤세드’의 사랑 안에서, 그리고 ‘룻’을 향한 ‘나오미’의 ‘헤세드’의 사랑 안에서, 또 ‘룻’을 긍휼히 여기는 ‘보아스’의 ‘헤세드’의 사랑 안에서 등장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룻기서’는 하나님은 등장하시지 않지만, 그 어떤 책들보다 하나님의 ‘헤세드의 사랑’을 강하게 말씀하고 있는 책인 것입니다. 그래서 ‘룻기서’에서 하나님은 이야기의 배경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 ‘룻’의 삶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시는 ‘저자’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이 말씀하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그들의 이야기처럼 보였지만 그 이야기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배후에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우리의 삶의 이야기, 그 뒤에 하나님이 계심을 느끼며 살고 있는지 이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삶에 ‘저자’가 되어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저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내 삶의 저자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내 삶의 ‘저자’가 되시도록, 삶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제목: 하나님! 나의 삶과 우리 가정의 삶이 내가 아닌 하나님의 이야기로 써 주시길 원합니다.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처럼 우리 주변의 고통받는 자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바라보고, 섬길 수 있는 헤세드의 사랑을 허락해 주시고, 나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세상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형상의 삶을 살게 하소서.

중보기도(목: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 담임목사님과 목회자들 가운데 주의 영이 충만하게 하시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선한 헤세드의 역사가 이뤄지게 하소서. 교회의 모든 제직들과 봉사자들의 섬김과 수고 가운데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하소서. 이 땅 가운데 세우신 모든 주의 종들이 어둔 세상을 말씀으로 빛으로 비추는 능력의 종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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