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섬김(룻기서 강해 3), 룻 1: 14~22, 반드시 보리를 거두는 시기는 옵니다.

2024.06.28 10:39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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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 1: 14~22, 반드시 보리를 거두는 시기는 옵니다. 찬 342장(너 시험을 당해)

전 세계가 ‘팬데믹’ 기간 동안 이 ‘코로나’만 벗어나면 행복해질 것처럼 생각했지만, 오히려 2023년 한국의 자살률은 30%이상 증가했고, 삶의 질은 더 힘들어졌다고 합니다. 얼마 전 뉴스에 30대 평범했던 한 주부가 코로나 기간 동안 산더미 같은 빚만 남기고 도망간 남편을 대신해 3남매를 키우다, 아무리 애를 써도 빚을 갚기는커녕 3남매를 키울 힘마저 없어지자, 16층 아파트에서 “나 안 죽을래, 나 죽기 싫어”하며 울부짖는, 채 7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을 밀쳐 떨어뜨리고 자신도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기사를 보며 ‘죽기 싫다’는 자식을 16층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뜨린 모진 어머니를 책망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고통과 절망 속에서 자식과 함께 죽음을 선택한 한 여인의 불쌍한 운명에 안타까운 연민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고통의 순간, 절망의 순간,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세상처럼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안 되면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말씀하고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말씀은 분명 우리에게 그 고통과 절망의 순간에도 분명 희망이 있고, 참고 인내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에게 반드시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나님의 비를 내려주시는 축복의 가나안 땅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가장 은혜가 됐던 말씀이, ‘22절’의 “그들이 베들레헴에 이르렀을 때는 보리를 거두기 시작할 무렵이었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여기서 ‘보리를 추수하는 때에 그들이 돌아왔다’는 것은 ‘나오미’와 ‘룻’의 절망적인 상황이 이제 회복과 소망으로 바뀌는 시작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쓰디 쓴 고통’을 축복으로 바꾸어 가는 ‘나오미’와 ‘룻’의 삶은 어떤 삶이었겠습니까?

첫 번째로 ‘룻’의 삶을 보면 그녀는 끝까지 은혜를 붙잡는 삶을 살았습니다.

남편과 시아버지를 잃은 두 며느리 ‘룻’과 ‘오르바’는 시어머니 ‘나오미’에게서 하나님의 ‘헤세드’와 같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룻’과 ‘오르바’ 모두 이 은혜를 입었지만, ‘오르바’는 ‘구름’이라는 그 이름의 뜻처럼 어머니를 떠납니다. ‘14절’을 보면 분명 어머니의 사랑과 배려와 섬김과 희생에 ‘룻’과 ‘오르바’ 모두 큰소리로 울며 감격했지만, ‘오르바’는 떠났고 ‘룻’은 끝까지 붙잡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4절 하반절’을 보면 “그러나 룻은 오히려 시어머니 곁에 더 달라붙었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달라붙었다’는 뜻은 ‘접착제로 완전히 꽉 붙였다’는 의미입니다. ‘룻’은 비록 그 삶이 힘들고 어려운 삶이 될지라도 결코 그 은혜의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이 믿음의 결단이 그녀를 그 고난에서 축복의 자리로 옮기게 된 것입니다. 바로 ‘헤세드’의 은혜는 받았지만, 그 은혜를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간 ‘오르바’는 그 이름조자 남지 않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환경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그 은혜를 끝까지 붙잡은 ‘룻’은 ‘메시아의 조상’이 되는 영광의 주인공인 된 것입니다.

두 번째로 ‘나오미’의 모습을 보면 그녀는 신앙 안에서 그 절망과 고통의 원인을 찾았습니다.

‘나오미’는 쓰디 쓴 ‘마라’의 고통을 겪으면서 자신의 가정에 밀어닥친 불행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룻기 1장 13절’에 보면 “주님께서 손으로 나를 치신 것이 분명하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오늘 본문 ‘20절’에는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몹시도 괴롭게 하셨다”, 또 ‘21절’에는 “나는 가득 찬 재로 이 곳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를 텅 비어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치시고,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불행하게 하셨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고난의 원인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믿음의 성도는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성도가 시련을 당하거나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그 원인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성도에게 어려움이 닥치고 환란이 닥칠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그것을 피하기 위한 피난처가 아니라,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살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고통의 자리에서 축복의 자리로 가기 위해서는 믿음의 자리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나오미’는 비록 많은 것을 잃었지만, 결코 거기서 눈물만 흘리며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그 고통의 순간, 자신의 신앙을 잘못을 깨달고, 처음 하나님과 함께 했던 ‘베들레헴’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는 낭패와 실망 당할 때,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이 무엇인지 내 삶이 하나님 중심의 삶인지 살펴보고, 그 삶이 잘못됐다면 즉시 회개하고 그 잘못을 고치고 주께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삶의 기쁨을 잃었던 ‘나오미’는 말씀을 떠났던 자신의 삶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신앙의 자리로 회개하며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고통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주님을 찾고 돌아온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살아갈 힘과 방법을 예비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2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렇게 하여 나오미는 모압 여인인 며느리 룻과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왔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이르렀을 때는 보리를 거두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여기서 “보리를 거두는 추수를 시작할 때”란 ‘곡식을 추수 할 때’라는 의미 외에 ‘그 밭에 추수가 끝나면 가난한 자들과 나그네들을 위해 곡식을 다 거두지 않고 이삭을 남겨 두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즉 여기서 오늘 성경에서 ‘보리 추수 시작할 때’라는 것은 ‘나오미’와 ‘룻’이 빈 손들고 울며 주님께 돌아왔지만, 주님께서는 이미 그들이 먹을 것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결단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에 대한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긍휼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의 자리에서 축복을 받는 비결이 그랬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그는 주님께 그 절망을 갖고 나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열두 해를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그 고통의 자리에서 예수님께 나아와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병이 나을 줄 믿고 그 절망의 병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실 때, 사람들이 중풍 병으로 누워있는 친구를 침상 채 메고 와서 지붕을 뚫고 주님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고통의 자리에서 본래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인 주님께 돌아온 것을 의미합니다.

‘역대하 7장 14절, 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나의 백성이 스스로 겸손해져서, 기도하며 나를 찾고, 악한 길에서 떠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용서하여 주며, 그 땅을 다시 번영시켜 주겠다. 이제 이 곳에서 드리는 기도를, 내가 눈을 뜨고 살필 것이며, 귀담아 듣겠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없는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 제목: 우리의 삶의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고, 말씀과 기도로 끝까지 믿음의 자리를 지켜나가게 하소서. 우리 가정이 말씀에 순종하고 기도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비를 내리시는 축복과 약속의 가나안 땅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영혼구원의 사명을 감당하는 축복의 가정이 되게 하소서.

중보기도(예배/선교지): 주일 예배, 목장 예배, 모든 모임 가운데 성령 충만을 부어 주셔서, 어두운 이 시대를 변화시키는 주님의 구별된 백성이 되게 하소서. 선교사님들의 선교지와 사역 가운데 함께 하소서. 이 땅 가운데 주님의 이름으로 드려지는 모든 예배와 모임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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