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이긴 사람들 (사사기강해 48) 삿20:37-48 하나님의 심판 방법
2024.06.21 09:28
예수인교회
어둠을 이긴 사람들 (사사기강해 48) 삿20:37-48 하나님의 심판 방법 찬302/408 내주 하나님 넓고 큰
어느 성도가 질문했습니다. ㅠ “왜 저사람은 악하고 못됬는데, 사업이 잘 풀리고 오히려 선한 사람들은 늘 어렵고 힘들게 살까요?” 우리가 이럴때 낙심이 됩니다. 도데체 하나님의 공의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오늘 이스라엘 11지파와 베냐민과의 싸움이 그러했습니다. 잘못을 행했던 베냐민이 두번이나 승리합니다. 악인을 통해 의인을 심판한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오늘 본문은 저자가 29-36절까지의 본문과 반복하면서 싸움에 대한 결론을 다룹니다. 이걸 통해서 하나님이 악을 어떻게 심판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심판하십니다.” 37-39
오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삿20:37-38 매복한 군인들이 급히 나와 기브아로 돌격하여 사방으로 흩어져서, 칼날로 기브아의 성읍 주민을 다 쳐죽였다. 이스라엘 주력부대와 매복부대 사이에서는, 성읍에서 큰 연기가 구름기둥처럼 치솟는 것으로 신호를 삼자는 약속이 이미 되어 있었다. 이것은 32절에 설명했던 이스라엘의 전략을 한번 더 자세히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11지파는 지는 것처럼 속인 후에 베냐민 군대를 본진에서 벗어나게 한 후 기브아 본진 주변에 숨겨놓았던 매복팀을 침투시켜서 비어있는 본진을 점령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작전은 숫자가 작고 불리한 쪽에서 사용합니다. 전술적으로 40만대 2만5천은 작전이 필요없는 숫자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복잡한 작전을 썼을까요? 교만했던 이스라엘이 두번의 실패로 겸손해진 것입니다. 성경에서 교만이란? 단순히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우쭐대는 걸 넘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힘과 노력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 것이 교만입니다. 반면 겸손은 그저 사람들 앞에서 굽신대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며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만한 사람이 어떻게 겸손해 질수있을까요? 그것은 자기가 노력한 것의 실패를 경험할때입니다. 두번의 실패가 이스라엘을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점에서 실패가 그들에게 은혜가 된것입니다. 반면, 39절에 베냐민은 적은 숫자로 2번을 승리한 것이 오히려 교만하게 하여 자신의 성읍을 비워놓고 나오게 했다는 점입니다. 승리가 패배의 원인이 된것입니다. 이걸 통해 우리는 모든 전쟁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일의 승패보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식하는게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싸움에 졌다해도 하나님을 얻으면 이긴것이고, 싸움에 이겼다고 해도 정작 하나님을 모르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은 “삼하 22:28주는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낮추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혹시 반복되는 실패속에 있다면 그속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이 해법일 수 있습니다. 반면 일이 너무 잘 풀린다면 하나님께 물으며 두렵고 떨림으로 감당해야 할것입니다. 오늘도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은 “대적을 통해 심판하십니다.” 40-46
39-43절까지 이번에도 이스라엘이 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이스라엘이 베냐민을 격파하는 장면입니다. 전술적인 승리도 있지만, 실상은 28절, 35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심판과 승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심판할때 자연재앙 또는 질병으로 심판하거나 많은 부분 대적을 통해 심판 하곤 한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은 주변 국가들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블레셋이나 아말렉, 그리고 애굽과 바벨론 앗수르등 크고 작은 싸움과 분쟁의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왜 선한 이스라엘이 악인들에 손에 넘겨져 심판을 받습니까? 그럼 그 악인이 옳은 것이 되지 않습니까?” 질문합니다. 이것에 대해 하나님은 “그 악인들 또한 결국에 언젠가 심판한다”고 말씀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을 쳤던 모든 민족은 전부 하나같이 멸망 당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이스라엘만 지금까지 건재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대적을 통해서 심판하지만 악이 이긴것은 아니란 점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악인을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변에 이해 안되는 악인에 의해 힘들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때에도 우리가 기억할 것은, 악인의 형통이나 득세가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한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알고 실패와 핍박, 고난 속에서도 공의의 하나님을 붙드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은 “은혜를 남기며 심판하십니다.” 47- 48
마지막으로 이 싸움의 특이한 점을 기록합니다. 삿20:46-47 베냐민 사람들 가운데서 칼을 쓸 줄 아는 사람 이만 오천 명이 그 날 모두 쓰러졌는데, 그들은 모두 용사들이었다. 그러나 육백 명은 방향을 돌려 광야 쪽 림몬 바위까지 도망쳐서, 넉 달을 그 림몬 바위 있는 곳에서 숨어 살았다. 이스라엘은 베냐민을 쫓으며 치열하게 싸운 끝에 무려 25100명을 죽이게 됩니다. 그런데 47절에 “육백명은 광야의 림몬 바위굴에 숨어서 넉달을 버티며 살게 됩니다.” 사실 48절에 이스라엘의 감정상태로 볼때, 남은 600명도 학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남겨진 것은 “하나님의 의도적인 은혜”였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에 대해서 “상한 갈대를 꺽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 긍휼의 하나님(사42:3)”라고 말했고 하박국선지자도 “진노중에라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다(합3:2)” 말합니다. 그러나 “목사님, 25100명에 그 가족까지 약 8만여명이 학살을 당했고 겨우 600명만 남았습니다. 이걸로 뭘 할수있겠습니까?”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항상 이렇게 남겨진 자들을 통해서 민족을 다시 일으키는 은혜의 하나님이셨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남겨진 노아의 가족을 통해 역사가 다시 시작되었고, 이스라엘은 BC 586년에 바벨론에게 멸망당했지만 남겨진 포로들을 통해 다시 시작됩니다. 오늘 전쟁에서 남겨진 베냐민 600명 속에서 훗날, 우리가 잘 아는 이스라엘의 초대왕이 나오고 베냐민 지파가 이스라엘을 이끄는 왕족이 됩니다. 놀라운 반전 드라마 입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은 멸망에 있지 않고, 당신의 백성이 바르게 다시 일어서는데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진노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그루터기를 통해 다시 살리고 일으키십니다. 오늘도 소망 없다고 생각하는 사역이나 목장이나 자녀는 없습니까? 잃어버린 것보다 남겨진 것에 집중해 보십시오. 없는 것보다 있는 것에 감사해 보시길 바랍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심판은 은혜로 시작될 것입니다.
기도제목: 하나님 오늘도 싸움의 승패보다 하나님앞에 코람데오로 살아가게 하시고 실패를 통해 겸손해지게 하소서, 남겨진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며 다시 일어서게 하소서
중보제목: (금: 선교지/ 모든 예배/ 예스미션 팀장과 사역지를 위해) 16곳의 선교사님들과 선교지에 영적 전쟁을 잘감당케 하시고 필요들을 채워주소서, 모든 주일/새벽/목장예배속에 하나님을 의식하며 예배하게 하소서, 예스미션을 통해 온교회가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