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이긴 사람들 (사사기강해 47), 삿 20: 29-36, 하나님께서 베냐민을 치셨으므로...

2024.06.20 07:47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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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이긴 사람들 (사사기강해 47), 삿 20: 29-36, 하나님께서 베냐민을 치셨으므로.

찬 351장/ 통 389장  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사니

  20장부터는 이스라엘 전체가 베냐민 지파를 상대로 전쟁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5절에 “주님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치셨으므로…”라고 나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죄 지은 베냐민을 향해 심판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베냐민 지파를 심판하셨을까요? 그리스도인의 능력, 특징은 무엇일까요? 기도, 말씀? 물론 그런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특징은 “죄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것, 이 세상에서 세상에 물들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은 바로 ‘죄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유익과 자신의 승리를 위해서는 눈 감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전쟁이 일어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바로 베냐민이 ‘죄를 두려워하지 않고 너무도 쉽게 죄를 지었고, 또 그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누가 죄인인 것인가, 누가 죄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지’를 보시고 그것을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전쟁은 어떤 것인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 하나님과 반대편에 있는 자들은 어떻게 될 수밖에 없는지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전쟁은, 교만함을 먼저 무너뜨리신다.(29절)

오늘 본문 29절은 몇 번째 전투의 시작일까요? 벌써 3번째입니다. 이스라엘 열 한 지파 40만대 베냐민 지파 26,700명입니다. 이스라엘의 열 한 지파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베냐민 지파를 처벌한다는 마음으로 전쟁에 임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베냐민 지파의 죄가 너무도 명백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의 전투의 결과는 이스라엘의 참패입니다. 40,000명이 죽는 결과를 얻습니다. 오늘 전쟁에서 패퇴하는 큰 이유에 대해서 여러 해석이 존재하지만, 한 신학자의 해석이 크게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이스라엘의 군대는 40만을 가지고 있고, 명분도 분명하고 떳떳했습니다. 당연히 이겨야 마땅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스라엘의 많은 자들은 마치 자신이 심판자가 된 듯 전쟁에 임합니다. 그들의 입에서 “벌하게 하자, 성읍을 치자”라며 자신들의 힘으로 충분히 심판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교만을 꺾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쟁에서 하나님은 교만함을 먼저 무너뜨리신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공동체,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리더들의 교만함을 먼저 무너뜨리시고 난 후 하나님의 전쟁에서 사용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전쟁에서는 방법론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30-33절)

이스라엘의 이 3번째 전투는 아이성 전투와 비슷하다고 계속 들어왔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베냐민이 진 이유는 이 전략 때문에 이기고, 졌을까요?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35절에 아주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치셨으므로…”입니다. 그들이 전략을 잘 사용해서, 베냐민 지파가 전략을 파악하지 못해서 이기고 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베냐민 지파를 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었고, 베냐민은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쟁에서는 어떠한 것도 승리의 요소, 패전의 요소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가능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하지 않으시겠다고 결정하시면 어떠한 것을 해도 이루어 질 수 없는 것 입니다. 모세는 출애굽 할 때,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 마르다하여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반석을 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반석에 명하라.’하셨는데 모세는 반석을 칩니다. 그것이 큰 죄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반석을 쳤는데, 이번에도 친 것이 무엇이 문제입니까? 과거 하나님의 기적의 방법이 오늘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전쟁의 핵심은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전쟁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승리하신다. (35-36절)

베냐민 지파는 왜 이 어리석은 전쟁에 임하였을까요? 이 당시에 베냐민 지파들은 용병으로 뽑아가고, 사 갈 정도로 싸움을 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베냐민이 이스라엘 지파와 싸움을 선택했을 때에는 어느 정도의 자신감과 능력이 있었기에 전쟁에 임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들은 자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두 번의 승리의 경험은 그들로 하여금 더 정신을 못 차리게 했을 것입니다. 이 성공의 경험이 우리 인간의 눈을 멀게도 만듭니다. 35절에 ‘주님께서 치셨으므로…’라고 할 때, ‘치다’는 ‘나가프’라는 동사입니다. 이 동사는 전쟁에서 치명적으로 완전히 처 부순다는 것을 말합니다. 엎치락 뒤치락 할 때 사용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한쪽이 완전히 멸망당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이 ‘나가프’라는 동사를 사용할 때 주어가 주로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전쟁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왕끼리 하는 것이 아니라, 세력끼리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은 반드시 하나님의 승리로 마무리가 됩니다. 그 시대가 마치 암흑과 같고,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서 각자의 소견대로 살고, 하나님이 내버려 두신 것과 같고 절망스러운 시대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은 살아계셨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베냐민을 치셨다.’라는 것은 하나님이 이 상황을 지켜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직접 전쟁을 주도해서 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예수인교회 성도여러분...결론을 맺습니다.>

베냐민 지파의 죄라는 것도 결국은 자신 있는 자신의 힘이었습니다. 남을 억누르고, 내 마음대로 상대방을 유린할 수 있는 힘입니다. 그렇기에 베냐민 지파 그들에게는 그 힘이 내려놓을 수 없는 너무 큰 유혹이었습니다. 강함, 능력, 상대방을 누를 수 있는 힘, 그것 때문에 베냐민은 25,100명이라는 용사가 죽었고, 지파의 절반 이상이나 되는 인재들의 죽음으로 지파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우리의 자랑 거리들이 다 날아 가버릴 수 있습니다. 한순간에 없어질 수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주권과 능력을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죄의 민감성이 떨어진 이 시대에 우리는 ‘주님께서 베냐민을 치셨다.’를 보아야 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예수인교회 성도여러분, 진심으로 죄를 두려워하는 인생, 죄의 자리에서 떠나는 인생,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권자이심을 기억하고, 하나님 편에 서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어서 이 시대를 이기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용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다음 세대를 변화시키시고, 이 시대를 하나님의 시대로 바꾸어 가실 줄 믿습니다.

말씀기도: 나의 경험과 능력을 의지하는 교만함을 깨닫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하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게 하소서.

요일기도:(목:지도자/가정/나라 위정자): 교회 지도자들에게 ‘한 성령’을 부어주소서, 가정을 회복하게 하소서, 나라의 위정자들에게 바른 가치관으로 나라를 이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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