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이긴 사람들 (사사기강해 46), 삿 20: 17-28, 승자가 없는 전쟁

2024.06.19 10:42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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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 20: 17-28, 승자가 없는 전쟁, 찬 380장(나의 생명 되신 주)

‘마태복음 7장 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너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자신의 잘못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만을 정죄하는 우리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11지파’는 ‘베냐민 지파’의 죄만 보면서 자신들의 모습, 자신들의 죄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전쟁으로 인해 ‘베냐민 지파’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11지파’ 또한 큰 피해를 보게 됩니다. 한 마디로 이 전쟁은 승자가 없는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 땅을 분배하면서 그 땅의 가나안 족속과 우상을 물리치고 그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그들은 그 적들과의 싸움을 멈추고, 자신들의 형제끼리 서로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이 전쟁은 총 3번에 걸쳐 싸움을 하게 되는데, 첫 번째 전쟁을 시작하면서 분문 ‘18절’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 질문을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베델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었다. “우리 가운데 어느 지파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워야 합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질문에 하나님께서 응답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 전쟁에 유다가 먼저 올라가라” 왜냐하면 이 전쟁의 시작의 발단이 된 ‘레위인의 첩’이 ‘베들레헴’ 출신이었는데, 그곳은 ‘유다 지파’의 땅이었습니다. 즉 이 죽은 여인은 ‘유다 지파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다 지파’가 그 원수를 갚기 위해 가장 앞장 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하시면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말씀대로 ‘유다 지파’를 선두로 해서 올라갔지만 그 결과는 큰 패배로 끝납니다. ‘베냐민 지파’와의 전투에서 하루 만에 무려 22,000명이 전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먼저 유다가 나가 싸우라고 하시고는 왜 그들을 패배하게 하셨을까요?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드렸던 첫 번째 질문을 가만히 다시 한 번 묵상해 보면, “그들은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까?”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우리가 베냐민 지파와 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까? 이게 옳은 일입니까?”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마음으로 싸우기로 결정을 다하고 나서, 하나님 앞에 나와 그것에 대한 확실한 약속만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이스라엘의 11지파의 회의’를 통해 자신들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정해놓고, 자신들의 싸움을 합리화하며 결정한 후에 그저 확인 도장을 받으러 하나님께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의 모습이 우리의 기도의 모습은 아닙니까? 세상적으로 내가 하고 싶고, 원하는 일은 이미 다 정해 놓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축복해 달라’고 기도하는 우리의 모습, 내가 다 결정하고 하나님은 복만 달라며, 확인 도장을 받기 위한 기도만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우리 안에는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에 복을 받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는 순종의 믿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닐지라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며 순종하며 나아가겠다는 믿음의 결단이 기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 내 기도가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과 의지를 앞세우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본문을 보면 첫 번째 전쟁에서 패한 이스라엘 11지파는 눈물로 두 번째 질문을 하게 됩니다.

‘23절 상반절’입니다. “우리가 다시 가서, 우리의 동기 베냐민 자손과 싸워도 되겠습니까?” 그때에 주님께서 “올라가서 싸워라!”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보면 그들의 질문이 조금 바뀐 것을 보게 됩니다. 아마 그들은 생각하지 못한 큰 패배를 당하면서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 앞에 나가 다시 묻습니다.

첫 번째 질문에서는 싸우는 것은 당연하고, ‘누가 먼저 올라가서 싸워야 합니까?’물었다면, 이번에는 이제는 ‘그 싸움을 해도 되는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질문에서는 자신들을 심판자처럼 여기며 ‘베냐민 자손들’을 이방 민족과 같이 불렀다면, 이번에는 ‘우리의 동기, 우리의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결과는 패배였습니다.

‘25절’입니다. “베냐민 자손은 이튿날에도 그들을 대항하려고 기브아에서 나와서, 이스라엘 자손 만 팔천 명을 땅에 쓰러뜨렸는데, 죽은 이들은 모두 칼을 쓸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두 번째 전쟁에서도 18,000명의 사망하는 패배를 맛보게 됩니다. 그것도 이 18,000명은 전쟁에 능했던 칼을 쓰는 훈련된 군사들이었습니다. 사실 숫자적으로도 이스라엘 11지파의 군대가 ‘베냐민 자손’의 군사들보다 20배 가까이 많았고, 강력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모두 패배였습니다. 자신들이 의지했던 군사의 숫자적 우위도, 무기와 훈련된 강한 군사도 다 소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갔는데, 이번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번에도 이스라엘 11지파가 이렇게 패배하게 허락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이 의지했던 모든 것들이 얼마나 헛된 것임을 알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아무리 칼로 무장하고 훈련받은 강한 군사들이 많아도, 그들은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상관없이 시작된 이 전쟁, 처음부터 자신들의 힘으로, 자신들의 생각으로, 자신들의 마음에 옳은 대로 행동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돌이키기길 바라셨던 것입니다.

결국 두 번의 패배를 당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 나와 세 번째 질문을 합니다. ‘26절’을 보면 이들은 모두가 ‘벧엘’로 올라가서 울며 금식하며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처음부터 하나님 앞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26절부터 28절’입니다. “그러자 온 이스라엘 자손은 베델로 올라가서, 주님 앞에서 목놓아 울었다. 그들은 거기에 앉아서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주님께 화목제와 번제를 드리고, 주님께 여쭈었다.(그때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베델에 있었고, 아론의 손자이며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가 제사장으로 있는 때였다.) “우리가 또다시 올라가서 우리의 동기 베냐민 자손과 싸워도 되겠습니까?, 아니면 그만두어야 하겠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올라가거라. 내일은틀림없이내가그들을너희손에넘겨주겠다.”

여기서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번제’는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는 제사이며,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하는 제사입니다.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가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목적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전체가 이 전쟁을 통해서 새롭게 회복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의 영이 깨어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신뢰가 다시 뜨겁게 타오르기를 원하셨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돌아보고 하나님께 돌아오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응답 또한 하나님을 떠나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의 전쟁은 아무 승자가 없고 오직 패배자만이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승자가 없는 실패한 전쟁임을 아직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혹시 우리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은 그런 미움이나 싸움 그리고 다툼이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승자가 없는 패배자만 있는 싸움임을, 미움임을, 다툼임을 빨리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와 간절히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기도제목: 하나님! 나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게 하시고,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게 하소서. 그래서 내 삶이 세상의 성공보다 하나님의 승리를 이루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삶을 되게 하소서.

중보기도(수: 다음세대/지도자): 교육부, 유스, 청년들이 사명의 눈으로 하나님의 비전을 꿈꾸게 하시어, 이 어두운 시대를 깨우는 빛이 되게 하시고, 반드시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승리자가 되게 하소서. 이 땅의 다음 세대 지도자들이 일어나게 하시고, 주님의 세대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깨어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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