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이긴 사람들 (사사기강해 43), 삿 18: 13-31, 그 제안이 마음에 들어

2024.06.13 07:50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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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이긴 사람들 (사사기강해 43), 삿 18: 13-31, 그 제안이 마음에 들어 찬359장/ 통401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사사기 17장-21장은 사사기 시대가 얼마나 혼란스럽고,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 보여줍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고 있다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그들의 왕으로 여기지 않았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섬기지 않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이 기준이 되지 않고, 하나님이 주인이 되지 않았기에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자신의 옳음대로, 세상이 말해주는 기준대로, 내가 편안대로 살아가면서 타락해가고, 혼탁해져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고, 각자의 소견이 옳은 대로 행동할 때, 하나님이 주신 그 말씀을 잃어버릴 때 나타나는 모습들은 무엇이 있는 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명을 잊고 편한 것만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27-29절)

단 지파는 삼손의 지파입니다. 그 어마어마한 사사를 보유한 지파인데 어째서 아직까지도 기업을 얻지 못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아모리 사람들을 쫓아내고 그곳을 기업으로 삼으라는 미션을 주셨는데, 그곳을 하나님의 거룩한 땅으로, 나라로 만들라고 보내셨는데 오히려 역 점령을 당했습니다. 단 지파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탐꾼 다섯을 보내어 자신들이 살만한 땅을 찾아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도에서 볼 때 맨 꼭대기에 있는 땅을 발견하고 점령합니다. 그들이 발견한 땅은 ‘라이스’라는 곳인데 그곳은 27~28절에 잘 나타납니다. ‘한가하고, 평화롭게 사는 라이스 백성들, 구해주는 자가 아무도 없는 것이 멀리 떨어져 있고, 어느 누구와도 접촉이 없기 때문에’라고 나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 땅, 미션, 십자가를 잊어버리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곳, 자신들에게 편한 곳, 자신들이 돋보일 수 있는 곳을 선택하여 버립니다. 이 문제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충분히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교회에서 ‘직분’은 다 받고 싶어 하지만, ‘직책’은 다 안 하고 싶어 합니다. 영광은 받고 싶어 하지만, 희생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열매는 먹고 싶지만 씨를 뿌리며 농사는 짓고 싶지 않는 모습과 같습니다. 오늘 날 나는 어떤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가? 내 자리를 어떻게 지켜 나가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하고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나를 만드신 분을 잊고, 내가 만든 신을 믿으며 살아갑니다. (22-24절)

단 지파의 행동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남의 집에 무장한 군인을 세워두고는 주인도 없는 집에 들어가서 자신들 마음대로 물건을 가지고 나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더 문제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이스라엘 지파가 우상을 가지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제거해야 할 임무가 있는 그들이 우상을 가지고 온 것은 그들의 가치관에 하나님의 말씀과 십계명, 사랑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미가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것을 마음대로 가지고 나왔으니 당연히 좇아가서 받아 내야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24절에 “내가 만든 신상과 제사장을 빼앗아 가면서…”라고 말합니다. 미가는 무엇을 믿고 예배하고 있었나요? 바로 그들을 만드시고 창조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이 아닌 그들이 만들어 낸 신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신을 함께 예배하고 자신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해 줄 종교지도자, 목회자를 찾아서 자신의 옆에 두고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우리를 지으시고, 예수인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있으십니까? 아니면 나를 위한 하나님을 만들어 놓고 내가 필요할 때만 찾고,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교회, 내 비위를 잘 맞춰주는 교회를 찾아서 신앙생활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보다 내 마음에 드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19-21)

단 지파의 군인들은 미가의 집을 둘러싸고 그 집안의 우상들을 챙기기 시작합니다. 그 청년 제사장에게 “조용히 하고, 자신들을 따라와서 단 지파의 어른과 제사장이 되어 달라고.”제안을 합니다. 그 제사장의 입장에서는 너무 좋은 제안입니다. 한 가문의 제사장보다는 한 지파의 제사장이면 명예와 권력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그 제사장 청년은 듣는 순간 이미 마음의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20절에 “제사장은 그 제안이 마음에 들어…”라고 말씀합니다. 개역개정에서는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흡족했겠죠, 그래서 마음에 들고, 기쁨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 제사장 청년의 선택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마음’이었습니다. 어디에서 많이 듣던 이야기 아닙니까?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 기준이 되어 도덕적인 기준과 신앙적인 기준조차 무너진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사랑하는 예수인 교회 성도여러분 결론을 맺습니다.>

“개인 집과 한 지파의 제사장이 있는데, 너 어디에서 제사장 할래?” 이 문제는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선택을 해야 합니다. 선택에서 어떤 가치관, 어떤 신앙관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서 어떤 선택을 할 지 나옵니다. 우리는 누구 보기에 좋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마치 레위 제사장처럼 ‘그 제안이 내 마음에 들어’선택하고 행동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명보다는 나의 편안함을 우선하여 선택하여 행동하고 있습니까? 당장의 편안함과 명예는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앞에서는 어떻게 평가 받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하고, 그분이 어떤 분이시고, 그분의 율법이 무엇을 요구하는 줄 알았다면,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알았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진짜 율법을 하나도 몰랐을까요? 아니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자신들의 교만함과 하나님을 잊어가기에 ‘각자 생각에 옳은 대로 행동하다 보니’이제는 율법도 보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우리 ‘내 마음에 들고, 나의 편안함 보다’는 ‘하나님 보시기에’를 생각하시며, 결단하여 선택하고 행동하실 수 있는 귀한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말씀기도: “내 마음에 좋은 대로”가 아닌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을 행동하게 하소서, 하나님이 나와 우리 교회에 주신 사명을 기억하고 살아가게 하소서. 성령 하나님게서 우리의 마음을 붙잡아 주소서.

요일기도(목:지도자들/가정/위정자들): 교회 지도자들에게 ‘한 성령’을 부어주소서, 가정과 모든 부부를 회복시키시고, 말씀과 비전을 주소서, 나라 지도자들에게 바른 가치관으로 나라를 이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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