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이긴 사람들 (사사기강해 41) 삿18:1-6 단 지파의 실패

2024.06.11 15:28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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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이긴 사람들 (사사기강해 41) 사사기 18:1-6     단 지파의 실패    찬191/427  내가 매일 기쁘게  

17장부터 21장까지 3가지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그 첫째가 17장의 미가 가정의 이야기고, 두번째는 오늘 보는 단 지파의 이야기, 그리고 세번째는 이스라엘의 내부분열의 이야기 입니다. 이 3가지 에피소드의 공통점은 갈수록 이스라엘의 죄가 관영해 진다는 점입니다. 특히 오늘 보는 단지파의 실패는 후에 단지파의 멸망으로 이어집니다. 요한계시록 7:5에 가보면 인침을 받는 144천 중에 단지파는 빠집니다. 즉 지구상에서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왜 선택받은 족속이 이런 결과를 얻었을까요? 이것은 구원받을 줄 알고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3가지 이유를 살펴 봅시다.

첫째 단 지파의 실패는 “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삿18:1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이스라엘의 지파들 가운데서 아직 그들이 유산으로 받을 땅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이 자리를 잡고 살 땅을 찿고 있었다. 여기서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란 실제로 왕이 없었던 사사시대를 말하는 것이기도 했고, 단 지파가 땅을 얻지 못한 이유가 왕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보면 왕이 없던게 아니라 “왕이신 하나님을 무시”한 것입니다. 무시란 두가지를 의미합니다. 하나는 있는줄 모르고 무시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있는 줄 알면서도 무시하는 것입니다. 후자가 더 나쁩니다. 이스라엘은 후자였습니다.

십계명중 제 3계명에 “너희는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여기서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는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의미도 있지만, ‘분명히 여기 있는데도 마치 없는 것처럼 무시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계신데도 안계신것처럼 함부로 말하고, 행동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럴때가 많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성도간에 자주 싸움이 일어나서 당회에서 결의 후에 교회 곳곳에 cctv를 설치했습니다. 왜냐면 싸울때 누가 잘못했는지 녹화영상을 보고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서 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때부터 싸움이 사라졌습니다. 왜냐면? 누군가 보고 있다는 생각에 말조심을 하게 됬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알려줬습니다.(마1:23)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무소부재, 하나님이 안계시거나 볼 수 없는 곳은 없습니다. 오늘도 왕을 무시하지 않고 의식하며 왕의 사자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단 지파의 실패는 “옮겨 다녔기 때문입니다.”

삿 18:2 그래서  지파 자손은 소라 에스다올에 살고 있는 지파의 온 가문에서 용감한 사람 다섯 명을 뽑아서 땅 정찰 임무를 맡기고, 땅을 탐지하고 살피도록 보냈다. 그들은 에브라임 산간지방으로 들어섰다가,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하룻밤을 묵었다

단지파는 용감한 다섯사람을 뽑아 정찰대로 이곳 저곳으로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미가의 집까지 이릅니다. 이것은 단지파가 떠돌이가 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들은 조금만 힘들거나 어려운일이 발생하면 언제든지 땅을 옮겨 다녔습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땅은 하나님의 약속과 기업을 상징했습니다. 땅을 떠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행위 였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이렇게 떠돌이 신세가 된 이유입니다. 1절 후반에  “유산으로 받을 땅을 얻지 못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여호수아 19장에서 아모리 땅을 분배 받았습니다. 이 땅은 매우 비옥하고 좋은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삿 1:34을 보면 그곳에 살던 아모리 사람들 때문에 밀려나 산간지방에서 살았다고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힘없는 민족이었는가? 아닙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12지파중 그 숫자와 전투력이 서열 2위로 유다지파 이후로 막강한 대표 지파였습니다. 그럼에도 약속의 말씀에 대해 믿음으로 순종하지 못하고 조금 힘들자 쉽게 그 땅을 포기하고 떠돌이 신세가 된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반드시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주어집니다.(눅 9:23) 이것은 고난과 고통의 십자가 같지만, 사실은 고 주기철 목사님의 고백처럼 “우리를 살리는 십자가”인 것입니다.(고전 1:18)

얼마 전 한 전단지에 실린 “작은 감사가 큰 행복을 낳습니다.”라는 글에 10가지 감사제목이 있었습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아침에 하루를 시작할 새로운 시간이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식사 때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일터에 가면서 내가 움직일 수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일하면서 느끼는 보람과 건강이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귀가 후 돌아 올 가정과 가족이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신문, TV를 보면서 작지만 귀한 여유가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따뜻한 잠자리가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났다면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은 감사의 제목이 몇가지나 되십니까? 감사는 믿음이 표현입니다. 땅을 유산으로 받지 못한 게 아니라 받은 땅을 모르고 받고 싶은 땅만 바라보며 살고 있지는 않나요? 오늘도 이미 받은 은혜 위에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셋째 단지파의 실패는 “자기 소견대로 산 것입니다”

자기 소견대로 산다는 것은, 자기 주장이 강해서 결국 자기 뜻대로 살아 간다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결국 미가의 집에서 머물며, 그곳에 세워진 제사장 청년에게 이렇게 묻습니다.(3-4절) 삿 18:5 그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하나님께 물어보아서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성공할 것인지 우리에게 알려 주십시오. 이것은 얼핏보면 마치 ‘하나님께 삶의 인도를 묻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결정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정말 하나님의 뜻을 묻고 싶었다면 길을 떠나기 전에 물었어야 했습니다. 가령 어느 형제가 믿지 않는 자매와 사귀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묻는데, 도무지 하나님이 응답을 안한다고 했습니다. 근데 자세히 들어보니, 이미 자기는 이 자매와 결혼하고 싶은데 자기가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으니까 계속 묻고 있었던 것입니다. 왠만한 하나님의 뜻은 이미 성경에 다 나와 있습니다. 성경만 제대로 봐도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가 나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로보트처럼 살기를 원하진 않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자유의지를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유의지를 주었다고 해서 “네 마음대로 살아라”라는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올바른 삶으로 살아가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죄로 인해 그것이 잘 안되기에 율법(성경)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도 부족하여 예수님을 통해서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요 16:8) 오늘도 바라기는 분별이 어렵고 모를때는 주님의 말씀을 구하며 바른길에 순종하는 예수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오늘도 어둠의 시대속에 빛으로 살아가는 가정과 일터가 되게 하시고 왕이신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게 하소서, 받은 말씀과 약속의 땅에서 십자가를 포기하지 않고 주가 가라하면 가고 서라하면 서는 믿음의 사사들이 되게 하소서 

중보제목: (화: 목장/목자/VIP/ 교회와 사명을 위해서)  16개의 모든 목장과 VIP와 환우들을 지켜주시고, 주님의 비젼으로 모이기에 힘쓰는 모든 목장이 되게 하소서, 이땅의 모든 교회가 영혼구원의 사명을 갖게 하시고 힘들더라도 복음을 사용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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