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이긴 사람들 (사사기강해 40) 삿17:1-13 미가의 행복론
2024.06.07 11:19
예수인교회
어둠을 이긴 사람들 (사사기강해 40) 삿17:1-13 미가의 행복론 찬 191/통427 내가 매일 기쁘게
오늘 보는 17-18장은 이전이나 이후에 삽입된 것으로 사사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중요한 것은 17장에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가 “복”이란 점에서 미가의 가정이 그 만큼 복을 바라는 가정이었다는 걸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미가의 가정을 통해서 어둠의 시대에 우리가 찿아야 할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첫째 “미가의 어머니의 행복론” 1-2
삿17:1 그가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누군가 은돈 천백냥을 훔쳐갔을때에 어머니는 그 훔친 사람을 저주하였습니다. 나도 이 귀로 직접 들었습니다. 보십시오 그 은돈이 여기 있습니다 바로 내가 그것을 가져 갔습니다. 그러자 그이 어머니는 도리어 이렇게 말하였다. 얘야 주님께서 너에게 복 주시기를 바란다.
미가의 집은 에브라임 지파의 가정인데(1절)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가정으로 큰 부자였던것 같습니다. 돈을 잃어버렸는데 무려 “천백냥”이랍니다. 개역개정은 천백세겔이라고 해석했는데, 이걸 10절에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당시 노동자의 “110년 품삯”입니다. 즉 매우 큰 부자였던 걸 말합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훔친 사람에 대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를 퍼부은 것 같습니다. 근데 재미있게도 범인은 그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아들은 엄마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하니까 마음에 찔린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자수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엄마는 곧바로 “얘야 주님께서 너에게 복주시길 원한다.”라고 축복해 줍니다. 이것은 방금 저주했던 저주가 아들에게 내릴까봐 곧바로 축복했던 것입니다. 당시 고대 문화속에 저주는 축복으로 푼다는 전통이 있었기에 엄마는 아들을 위해서 축복해 준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가의 엄마의 행복 기준입니다. 그녀에게 행복은 “나에게 손해가 되는가?, 이익이 되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나에게 손해가 되면 저주하고, 나에게 이익이 되면 곧바로 축복해 주는 공식인 것입니다. 이것이 미가 어머니의 행복론이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의 행복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각자 상황과 이유는 달라도 나에게 이득이 많아 질때, 행복합니다. 손해가 심하고 이익이 없을때 우리는 저주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은 그런 물리적인 질량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풍성함에 있는 걸 알아야 합니다. 가령 욥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분명 저주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42장에서 저주를 통해서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는 “복”을 얻습니다. 오히려 그는 “고난과 손해”를 보면서 “복”을 얻은 셈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고난당함이 나에게 유익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도 가정과 일터안에 하나님의 진정한 복을 구하는 믿음의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미가의 행복론입니다.” 3-13
미가의 엄마는 그렇게 되찿은 돈 천백냥을 주님께 드려야겠다고 합니다.(3절)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이 돈으로 우상을 만들어 바치겠다는 말을 합니다.(3절 후반) 그리고 그녀는 천백냥을 드리기로 해놓고서 고작 200냥으로 우상을 만들어 자신의 집에 장식을 해놓습니다. 거기다가 그의 아들에 대한 소개가 이어집니다.
삿 17:5 미가라는 이 사람은 개인 신당을 가지고 있었다. 에봇과 드라빔 신상도 만들고 자기 아들 가운데서 하나를 제사장으로 삼았다.
에봇은 이스라엘 제사장의 가슴에 둠빔과 우림의 돌을 넣어둔 주머니인데, 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물어볼때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드라빔은 가나안 지역의 가정마다 모셨던 토속신으로 똑같이 뜻을 묻거나 집안을 보호하는 수호신 입니다. 이 둘을 동시에 모셨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십자가와 불상을 함께 놨다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7-12절까지 보면 떠돌이 레위 청년을 제사장으로 임명하여 가정에 들입니다. 그런데 제사장은 레위인 중 아론의 후손만 될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모세의 후손’으로 제사장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삿18:30) 한마디로 목회자라고 다 같은 목회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의 결론입니다. 삿 17:13그래서 미가는 자기가 이제 레위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았으니 주님께서 틀림없이 자기에게 복을 주실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이처럼 열심히 산당도 차리고 에봇과 드라빔도 갖춰 놓고 제사장까지 구색을 맞춰 놓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복”이 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 정리해보면 미가 가정의 행복이란 나에게 이익이 되고 모든 것이 갖춰질때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반대로 나에게 손해가 되고 무언가 게속 부족함이 느껴질때는 불행하다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행복론에 대해 6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삿 17:6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대로 하였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행복론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복”의 단어로 사용하는 “바라크와 아쉐르”가 있습니다. 바라크는 선물이라면 아쉐르는 그 선물을 주는 존재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어느 것을 받겠습니까? 당연히 두번째 입니다. 왜냐면 선물을 주는 존재와 함께 할때 그 선물까지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먼저 그나라와 그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여기서 먼저라는 말은 다른 것이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라 순서를 말합니다. 다른걸 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면 이 모든걸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에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어떤 부족함이나 고난을 마주하고 있습니까? 바라기는 그 부족함과 고난과 손해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풍성함의 비밀을 깨닫게 되는 진정한 복의 근원이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