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이긴 사람들 (사사기강해38) 삿16:1-22 죄의 무서움
2024.06.05 07:23
예수인교회
어둠을 이긴 사람들 (사사기강해38) 삿16:1-22 죄의 무서움 찬 268장/통 202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우리는 오늘 ‘죄’에 대하여 보려고 합니다. 죄는 얼마나 무섭고 강하기에, 그렇게 생생하게 경험한 하나님을 잊게 만들 수 있을까, 과연 내가 죄를 이겨낼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입니다. 우리는 사사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와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무엇으로 무너집니까? 바로 ‘죄’였습니다. 삼손이라는 사사가 있습니다. 능력으로 따지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랬던 그 사사 삼손이 오늘 본문에서 ‘죄’ 때문에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죄의 무서움’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죄는 내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1절/ 4절)
삼손의 이야기에서 사건마다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여인’이었습니다. 삼손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여인이 3명입니다. 아무래도 삼손은 여자를 너무도 좋아했던 인물로 생각이 듭니다. 죄가 무서운 이유는, 죄는 내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죄는 내가 마음을 두고 있는 것으로 유혹이 들어오고 나를 무너뜨리는 도구로 사용이 됩니다. 그러기에 삼손이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에 약하다는 것을 알고 사단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람인 삼손을 ‘여자’로 유혹하고, ‘여자’를 이용하여 무너뜨리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죄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나의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나의 마음을 잘 지킨다는 것은 ‘내가 보고 듣는 것’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는 집요하기에 조금의 틈만 있어도 파고 들어서 나를 죄의 자리에 앉혀 놓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나를 죽여야 하고, 날마다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지 않으면 우리는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사단은 만만한 자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과 욕심을 알고 접근합니다. 그리고 단번에 크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먼저 나의 눈과 나의 귀로 접근합니다. 그래서 내가 보는 것, 내가 듣는 것으로부터 흔들면서 다가옵니다. 마치 삼손 눈앞에 계속 여인을 보여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둘째. 죄는 죄에 익숙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16-17절)
우리 사람들은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실수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삼손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욕에 빠져서 어찌할 줄도 모르는 모습의 삼손입니다. 그렇다면 왜 삼손은 이런 실수를 반복하고 있을까요? 정말 단순히 정욕 때문일까요? 그것은 삼손이 ‘익숙해져버렸기 때문입니다.’삼손은 이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블레셋으로 아내를 찾으러 왔을 때 상황에 화가 나서 나귀의 턱뼈를 가지고 1,000명을 죽입니다. 그렇게 창녀를 또한 만나게 되었고 또 다시 위기를 멋지게 헤쳐 나갑니다. 그리고 들릴라에게 3번을 거짓으로 이야기 했지만 멋지게 모두 물리쳤습니다. 어떻습니까? 삼손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내가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익숙해져 버립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에게는 놀라운 능력이 있고, 이런 상황을 몇 번 겪어 봤기에 여자에게 비밀 정도를 말해준다고 해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죄는 그렇습니다. 한 번이 힘들지 두 번, 세 번부터는 크게 죄책감도 없고, 딱히 자신에게 별일도 없고 오히려 편하고, 재미있고, 즐거워 져 버립니다. 그렇게 합리화까지 해버리면 이제 더 이상 죄가 죄가 아닌 것이 되어 버립니다. 이제는 각자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해버리는 시대가 되어 버립니다. 노아 시대에 성경은 ‘죄의 관영함’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무엇일까요? ‘죄가 죄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죄가 죄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갈 수 있습니다. 죄가 익숙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알아야 하고, 그 말씀을 기준으로 죄를 분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둔감하게 만듭니다. (19~21절)
삼손의 이름은 태양과 연결된 이름입니다. 들릴라는 ‘밤, 어둠’과 관련된 이름입니다. 빛의 아들인 삼손이 어둠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죄의 결과는 하나님이 떠나 간 것조차 모르고 있다가, 능력도 없고, 눈이 뽑혀 앞을 보지 못하고 사슬에 묶여서 같은 자리를 돌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무서움입니다. 죄의 무서운 점은 하나님과 관계를 단절 시킨다는 것에 있습니다. 죄는 우리를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들어 버립니다. 죄는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 그곳이 바로 우리에게 가장 큰 벌입니다.
<사랑하는 예수인교회 성도여러분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입니다. 은혜라고 하는 것은 ‘무조건적’입니다. 조건의 공식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관계에서만 비롯되는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과 사랑으로 자녀 된 우리입니다. 22절에 “그러나 깎였던 그의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하였다.” 아멘. 성경은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며 이번 단락을 마무리합니다. 그 이전에 삼손의 어떠한 행동이 있었나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은혜로 다시 우리를 살리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떤 것도 하나님의 구원의 조건은 안 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일 뿐 입니다. 그렇게 값없이 받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 율법인 것이지, 율법을 지켜야 구원시켜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를 시켜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매일 점검해야 할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한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어떤지를 매일 점검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진심으로 지금 그분을 사랑하고 있는지,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고 있는 행동인지, 아니면 여전히 나의 욕심과, 나의 쾌락, 나의 정욕 때문에 하고 있는 것이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죄’, 우리의 힘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 이 시간 죄로 넘어지지 않기를 원합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관계가 깨지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날마다 나를 죽이며, 날마다 죄의 자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믿음으로 거룩한 자녀의 삶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말씀기도: 죄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죄의 고리를 끊어내게 하소서, 하나님의 자녀의 삶의 풍성함을 누리며 살게 하소서.
요일기도(수:다음세대): 교육부, Youth, 청년부에 성령을 부어주소서, ‘말씀과 기도운동’이 일어나게 하소서, 다음 세대 지도자들이 일어나게 하소서, 예배와 기도가 회복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