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이긴 사람들 (사사기강해 34), 삿 14: 1-9, 이러면 빛에서 어둠으로 갑니다.
2024.05.29 09:30
예수인교회
삿 14: 1-9, 이러면 빛에서 어둠으로 갑니다. 찬 263장(이 세상 험하고)
사사기 14장부터는 본격적으로 ‘삼손’의 삶이 그려지게 됩니다. 그런데 참 흥미로운 것은 ‘삼손’이라는 인물이 등장하자마자 나온 이 첫 번째 사건은 ‘삼손’이 어떤 인물인지, 또 그의 삶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가 왜 그렇게 비참하게 인생을 끝낼 수밖에 없는지를 마치 예고편처럼 다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분문에서 발견되는 ‘삼손’의 치명적인 잘못들이 무엇인가를 살펴봄으로써, 그가 처음에는 하나님의 빛의 사람이었으나 어둠으로 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삶과 신앙을 돌아보고, 어둠을 이기는 믿음의 삶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오늘 본문에서 발견되는 삼손의 치명적인 잘못은 “자기 눈으로 보기에 좋은 대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삼손’이 ‘딤나’라는 지역에 갔다가, 거기서 한 여인을 만나 첫 눈에 반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와서 그 블레셋 여인과 결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떼를 쓰는 장면이 오늘 본문의 배경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반대를 하니까, ‘3절 하반절’에 ‘삼손’이 이렇게 말합니다. “꼭 그 여자를 색시로 데려와 주십시오. 그 여자는 첫눈에 내 맘에 쏙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삼손’이 말한 “첫눈에 내 맘에 쏙 들어왔다”는 표현은 ‘사사기 17장 6절’에서 당시 ‘타락한 이스라엘 사회’를 한마디로 표현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래서 ‘사사기 17장 6절’의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라는 말씀을 직역하면 “자기 눈에 좋은 대로”라는 뜻입니다. 바로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왜 그렇게 극심한 타락의 자리에 빠졌느냐면 그것은 ‘자기 눈에 좋은 대로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절’에 “그 여자가 첫눈에 내 맘에 쏙 들어왔다”는 말씀도 직역을 하면 “그 여자가 내 눈에 좋았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삼손’은 ‘자기 눈에 좋은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시 사사기 시대 사람들과 똑같은 삶의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눈에 좋은 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도 그렇지 않습니까? 눈에 좋은 대로 사는 시대가 아닙니까?
그래서 ‘요한일서 2장 16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에서로부터 온 것이라” 여기서 ‘안목의 정욕’이란 단어를 직역하면 ‘눈의 욕망’이란 뜻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눈에 보이는 욕망을 채우며 살아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도 눈에 보이는 욕망을 통해 사탄의 유혹에 빠지고, 타락하고,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임 없이 우리를 유혹하고 시험하는 사탄의 ‘눈의 욕망’, ‘눈에 보이기 좋은 대로 사는 삶’을 이기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열왕기하 6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아람 나라(시리아)’와 전쟁 중에 있을 때, ‘아람 나라’의 대군이 ‘엘리사’를 잡기 위해 ‘성읍’을 에워싸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자 ‘15절’을 보면 ‘엘리사’의 ‘젊은 시종’이 새벽에 나와 그 모습을 보고 크게 놀라 두려움에 ‘엘리사’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 때 ‘엘리사’가 ‘열왕기하 6장 16절, 1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엘리사가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들의 편에 있는 사람보다는 우리의 편에 있는 사람이 더 많다” 그렇게 말한 다음에 엘리사가 기도를 드렸다. “주님, 간구하오니, 저 시종의 눈을 열어 주셔서, 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러자 주님께서 그 시종의 눈을 열어 주셨다. 그가 바라보니, 온 언덕에는 불 말과 불 수레가 가득하여, 엘리사를 두루 에워싸고 있었다”
그 시종이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두려움과 걱정뿐이었는데, ‘하나님의 눈’으로 보게 되니까, 세상보다 더 강력한 하나님의 군대를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부르짖어도 우리의 눈이 바뀌기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두 번째로 ‘삼손’이 ‘빛에서 어둠으로 가게 되는 치명적인 잘못’은 그는 ‘감춰진 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면 ‘삼손’의 신분은 ‘나실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실인’으로서 지켜야 할 것은 ‘사사기 13장’에서도 말씀하였고, ‘민수기 6장’에도 나오는데, 그것은 ‘포도나무의 소산과 포도주와 독주를 먹거나 마시지 말고, 머리를 자르지 않고, 죽은 것을 만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삼손의 이야기’를 보면 ‘삼손’은 이 셋 중에 딱 한 가지만은 꼭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바로 머리를 자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손’에게 치명적인 잘못은 오늘 본문 ‘9절’에 나옵니다. “그는 손으로 꿀을 좀 떠다가 걸어가면서 먹고, 부모에게도 가져다 주었으나, 그 꿀이 사자의 주검에서 떠 온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본문에서 ‘삼손’이 자신이 죽인 사자의 시체에서 얻은 꿀을 자신도 먹고 부모에게도 주면서 그 사실을 말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삼손’ 또한 그것이 ‘부정한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꿀과 같은 달콤함을 얻기 위해 자신이 부정한 것을 만진 것을 숨긴 것입니다. ‘삼손’은 머리에 자르지 않는 모습을 통해, 자신은 ‘나실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였지만,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또 다른 금지 사항들을 자기 눈에 보기 좋은 대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죽은 사자의 시체에서 꿀을 먹는 것이 부정되며 안 되는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 달콤함을 얻기 위해 그 부정을 행하고, 또 그것을 숨기며 남들이 모르면 괜찮다는 생각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삶보다 누구도 보지 않는 삶을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3장 4절, 5절’에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지금 너는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오랜 친구’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끝없이 화를 내시는 분이 아니다. 언제까지나 진노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면서, 온갖 악행을 마음껏 저질렀다.” 겉으로는 하나님과 친밀함을 표현하면서 “하나님!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며 친구십니다라고 고백하지만, ‘예레미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의 실제의 삶은 이고백이, 이기도가 가식적인 습관적인 입술의 고백에 불과하다는 것을 하나님은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같이 말하여도, 이같이 기도하여도 그것이 네 욕심을 이루려는 악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온갖 아름다운 말과 찬양으로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다 할지라도, 정작 우리 안에 아직 들키지 않고 숨기고 있는 죄가 있다면, 또 그것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제물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윌로우크릭 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님’이 쓴 책 중에 이런 제목이 있습니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모두 경건합니다. 열심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것입니다. 진짜 나의 모습은 거기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3장 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그래서 저는 우리가 이 ‘사사기’의 말씀을 새벽마다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끝임 없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 바로 이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서, 어둠에서 빛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가 하나님이 외면하시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응답하시는 능력의 기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제목: 내 삶의 모든 상황과 형편을 세상이 안경이 아닌 주님이 주신 십자가의 안경으로 보게 하시어, 내 가정, 자녀, 남편, 아내, 삶의 문제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게 하소서.
또 아직까지 숨겨진 죄가 있다면, 그 모든 죄에서 벗어나 우리의 기도가 능력의 기도가 되게 하소서.
중보 기도(다음세대): 교육부, 유스, 청년들이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시어, 이 어두운 시대를 깨우는 빛이 되게 하소서. 이 땅의 다음 세대 지도자들이 일어나게 하시고, 주님의 세대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깨어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