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이긴 사람들 (사사기강해 32), 삿 13: 1-14, 구별된다는 것
2024.05.24 08:57
예수인교회
삿 13: 1-14, 구별된다는 것, 찬 289장(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손’의 태어나는 배경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본문 ‘1절’을 보면 변함없이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주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악한 일을 저질렀다.”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는 ‘주님 앞에서 행한 악이 무엇일까요?’
구약을 보면 하나님 앞에 저지른 악을 크게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하나님이 거하신 땅을 더렵히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민수기 35장 3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 곧 내가 거주하는 땅을 더렵히지 말라” 이 말씀을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이 하나님이 함께 계신 곳이라는 말씀합니다. 그래서 ‘무죄한 자’의 피가 흘릴 때, 그 피로 더러워지는 것을 그 땅이지만 그 땅은 곧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웃에게 가해지는 폭력 혹은 착취와 억압을 하나님은, 그것을 하나님에 대한 모독으로 여기시고 악으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 신구약에 일관된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 주변을 보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런 악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부자가 왜 지옥에 갔느냐?”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부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악한 일을 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또 부자와 ‘아브라함’과의 대화를 보면 이 부자는 분명 하나님을 알고, 믿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죽어 지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 성경은 그가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살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내 것이니까, 내 맘대로, 나를 위해, 내 가족을 위해 살면서, 주변의 굶주린 자, 연약한 자, 소외된 자를 외면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것을 악으로, 죄로 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은 은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섬김을 위한 사명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 첫 번째 악행을 가능케 하는 뿌리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끝없이 사회적 약자를 지극히 귀하게 여기라고 말씀하는데, 이방의 우상들은 우리에게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내 욕망, 내 행복, 내 풍족함을 더 누리기 위해 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우상을 숭배한다는 것’과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것’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많은 영성학자들은 오늘날의 우상은 물질이라고 말합니다. 돈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귀하게 섬기기 때문에, 돈이 우리의 우상이 되어 다른 사람들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악행의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번째 우상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계속해서 다시 악을 행했다”는 말씀은 이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은 ‘삼손의 이야기’의 서론으로 짧지만, 우리를 향한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1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셨다”
그들의 악함으로 하나님께서 ‘블레셋’에게 그들을 넘기셨는데 그 기간이 무려 40년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40’이라는 의미는 한 세대를 의미하는 단어로, 한 세대동안 온전히 그 핍박과 억압에 눌려 살았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블레셋’은 당시 철기 문화를 가진 해양 민족으로 성격이 거칠고, 해적과 같이 전투적이었으며, 포악했습니다. 그런 민족에게 억압과 착취를 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오랜 세월 그 억압에 살다보니까,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익숙히 여기며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동안의 ‘사사기’의 이야기를 보면, 분명한 패턴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죄악에 빠지고, 그 결과 그들이 이방 민족에게 억압을 받고, 그 억압에 고통을 받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울부짖게 됩니다. 그러면 그 부르짖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긍휼이 여기사 사사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이 없습니다. 그 긴 세월, 그것도 가장 포악한 ‘블레셋’의 억압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들은 부르짖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 긴 세월 동안, 블레셋 억압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 되었고, 이방의 우상과 죄악의 삶이 습관화 되면서 하나님마저도 멀어지고 잊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세월을 지내면서, “이것은 어쩔 수 없지”라며 무력함과 그 억압과 죄악 앞에 순복하며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것마저도 잊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상징하는 표현이 ‘2절’에 나옵니다.
“그 때에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가운데 마노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임신할 수 없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임신할 수 없어 자식을 낳지 못한 여자”입니다. 한 마디로 ‘불임 여성’입니다. 당시 여성이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은 최고의 수치였고, 가장 큰 절망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도 부르짖지 않습니다. 바로 이 모습은 당시의 모든 희망의 끈마저 놓고 세상의 죄악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시대를 ‘불임의 시대’, 즉 ‘생명이 없는 시대’, ‘희망이 없는 시대’, ‘암흑의 시대’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생명이 없고, 희망조차 없던, 그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임 여성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현실을 보여주시면서, 그 여성이 아이를 갖고 그 아이를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사로 세우심으로써,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다시 세워나가시는 역사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붙잡을 힘조차 없던 그 백성을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지쳐 하나님을 잡을 힘조차 없다할지라도, 하나님은 자신이 잡은 그 손을 절대 놓지 않으십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 말씀을 계속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여인을 통해 이 어둠의 시대를 이기기는 하나님의 사람 ‘삼손’을 잉태케 하시면서, ‘나실인’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 ‘나실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 ‘희망이 없는 삶’, ‘절망의 삶’에서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시는 두 가지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첫 번째는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듯이, “부모의 믿음이 자녀에게 흘러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 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님의 천사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 말하였다. “보아라, 네가 지금까지는 임신할 수 없어서 아이를 낳지 못하였으나, 이제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조심하여,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말아라. 부정한 것은 어떤 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
본문을 보면, “포도주나 독한 술, 부정한 것을 먹지 말라”고 누구에게 말합니까? 바로 그 어머니였습니다. ‘삼손’을 잉태한 그 어머니부터 먼저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부모가 먼저 그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모습은 본문 ‘5절’의 ‘나실 사람’, 즉 ‘나실인’이란 의미안에 있습니다.
‘나실인’이라는 뜻의 ‘구별된, 헌신된’이란 의미입니다. ‘구별된 사람, 헌신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헌신’이라고 하면, 먼저 ‘행동’의 떠올립니다. ‘헌신’이라고 하면, ‘교회에서 봉사하고 섬기는 것’을 ‘헌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나실 인’이란 단어가 나온 ‘나지르’라는 단어는 ‘동사적인 행동’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라, 이 단어는 ‘수동형 명사’로 ‘존재’를 의미합니다. 즉 ‘헌신’이란 ‘행동’이 아니라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 의미는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은 행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어떤 존재인지를 인식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단지 교회에서 봉사하고, 섬기는 것으로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 아니라 나의 삶의 모든 순간마다 “나는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이다.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백성이다‘라는 존재 의식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순간, 모든 상황에서 ‘나는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이라는 존재임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존재’에서 헌신의 행동이 나오는 것이며, 섬김과 사랑과 감사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어떤 상황에 있다할지라도, 어떤 문제 가운데, 어떤 질병 가운데, 여러분의 자녀가 어떤 상황 가운데 있다할지라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입니다.
이것을 붙들며 오늘도 담대히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고난 중에도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참된 믿음을 품게 하소서
이 세상과 다른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임을 잊지 않게 하시어,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살게 하시어, 우리 가정과 목장과 교회 그리고 삶의 자리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중보기도(예배/선교지): 주일 예배, 목장 예배, 모든 모임 가운데 성령 충만을 부어 주셔서, 어두운 이 시대를 변화시키는 주님의 구별된 백성이 되게 하소서. 선교사님들의 선교지와 사역 가운데 함께 하소서. 이 땅 가운데 주님의 이름으로 드려지는 모든 예배와 모임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