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이긴 사람들 (사사기강해 27), 삿 11: 1-11,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사람

2024.05.16 09:24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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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 11: 1-11,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사람. 찬 373장(고요한 바다로)

‘사사기’를 보면, 위기의 순간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능력을 주시고, 사용한 사사들을 보면, 그들은 모두가 연약한 자들, 부족한 자들, 사회적으로 약자였고,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8번째로 나오는 ‘입다’ 역시,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사’로 세우신 장면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입다’를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수많은 약한 자, 부족한 자들 중에서 ‘입다’를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첫 번째로 그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그 악을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1절, 2절’ 말씀입니다.

“길르앗 사람 입다는 굉장한 용사였다. 그는 길르앗이 창녀에게서 낳은 아들이다. 길르앗의 본처도 여러 아들을 낳았는데, 그들이 자라서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말하였다. “너는 우리의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여인의 아들이므로, 우리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을 수 없다.”

‘입다’는 창녀의 아들이었습니다. 술집에서 몸을 파는 여자를 통해 얻은 아들이 ‘입다’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환영받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이나 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태어났는데, 그것이 그의 삶을 철저히 버림받는 인생으로 살아가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2절’을 보면 ‘길르앗’의 본처의 아들들이 “너는 우리의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여인의 아들이므로, 우리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을 수 없다”라며 ‘입다’를 쫓아냅니다. 그러나 그 형제들의 이런 행동은 ‘레위기’에 나오는 율법에 의하면 불의한 행동이었습니다. 불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모든 아들들은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 받은 자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불법이 일어났는데도 아무도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의 억울함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7절’을 보면, ‘입다’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달려온 장로들에게 ‘입다’는 자신의 아버지의 집에서 쫓겨날 당시 자신이 겪었던 아픔을 이렇게 서술합니다.

“그러나 입다는 길르앗의 장로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이 나를 미워하여, 우리 아버지 집에서 나를 쫓아낼 때는 언제이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고 해서 나에게 올 때는 또 언제요?”

이 말은 ‘입다’가 그렇게 자신이 억울하게, 또 불법적으로 형제들로부터 아버지의 집에서 쫓겨날 때, 마땅히 그것을 하나님의 법대로 판단하고 도와주어야 할 장로들이 철저히 ‘입다’를 외면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경이 참 재밌는 것이, ‘1절’을 보면 ‘입다’를 ‘굉장한 용사’였다라고 표현합니다. ‘입다’는 개인적은 힘과 능력이 뛰어났던 인물이었기에 사람들이 그를 ‘큰 용사’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마음만 먹으면 ‘아비멜렉’처럼 형제들을 다 죽이고 권세를 차지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상반되는 두 단어를 통해, ‘입다’가 “스스로 그 불의와 불법, 악으로부터 떠났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래서 입다는 자기의 이복형제들을 피하여 도망가서, 돕이라는 땅에서 살았는데, 건달패들이 입다에게 모여들어 그를 따라다녔다.”

여기서 ‘도망하다’는 단어의 뜻은 ‘물러서다, 지나가다, 통과하다’는 뜻입니다. 즉 그 ‘스스로 물러섰다’는 것입니다. 앞에 나온 ‘아비멜렉’처럼 그 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권력을 차지한 것이 아니라, 그 악을 떠나 ‘돕’이란 땅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돕’이란 땅은 ‘길르앗’의 북동부에 있는 땅이었는데, 그 ‘돕’이라는 단어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돕’이라는 단어를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토브’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단어인데, ‘좋다, 선하다, 옳다’라는 뜻인데,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마다 기쁨이 가득하셔서 하셨던 말씀,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할 때, 이 ‘토브’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바로 ‘입다’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그곳을 떠나 ‘돕’으로 간 것을, “하나님은 그것을 옳게 여기셨고, 선하게 여기셨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오히려 그 악을 떠난 ‘입다’를 하나님의 선한 계획, 승리의 도구로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입다’는 자신의 삶의 주권을 하나님께 맡겼던 사람이었습니다.

‘입다’가 어떻게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그 악을 떠나 선으로 바꾸는 삶을 살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그가 특별한 믿음의 사람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도 우리처럼,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뒤에 나오지만 순간의 불안과 걱정으로 잘못된 서원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그의 딸이 죽는 비극적인 일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그에게는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 삶의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9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이 나를 데리고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울 때에, 주님께서 그들을 나에게 넘겨주신다면, 과연 당신들은 나를 통치자로 받들겠소?”

바로 ‘입다’는 이 전쟁의 주체, 이 전쟁의 승패는 나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손에 달렸다고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세상을 붙들며 살다가 ‘입다’를 찾아온 장로들의 모습은 점점 초라해지고, 하나님을 붙들며 살아가던 ‘입다’의 모습은 점점 높아짐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6절’을 보면 장로들이 처음 ‘입다’를 찾아왔을 때는 “와서 우리의 지휘관이 되어 주시오”라며 명령형으로 말합니다. 단순히 전쟁의 용병이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8절’에는 “통치자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1절’에는 “입다가 통치자와 지휘관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자신들이 조롱하고, 멸시하고, 쫓아냈던 ‘입다’가 결국에는 그들의 통치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약함 가운데서도, 부족함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딱 붙어있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붙어있는 사람은 결코 찢어지지 않습니다. 무너지지 않고, 쓰러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붙어있는 자를 통해 세상의 악을 이기고, 승리케 하십니다.

기도제목: 내 삶이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그 악을 떠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자리에 있게 하소서.

내게 있는 삶의 모든 문제 가운데서도 항상 내 삶의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하게 하시어, 항상 하나님께 동행하며 하나님께 붙어 있는 삶을 살게 하소서.

중보 기도(목: 지도자들): 담임목사님과 목회자들의 성령충만으로 사명 감당을 하게하소서. 교회를 섬기는 제직/서번트/팀장/목자/봉사자들의 섬김 속에 은혜와 기쁨이 가득하게 하소서. 이 땅의 위정자들이 하나님의 공의 가운데 서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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