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이긴 사람들(사사기 강해 17) 삿6:25-40 여룹바알이 되라

2024.04.30 07:05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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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이긴 사람들(사사기 강해 17) 삿6:25-40 여룹바알이 되라 찬 502/통 259  빛의 사자들이여

사람은 쉽게 바뀌기 어렵습니다. 특히 어둠을 즐기던 사람이 갑자기 빛으로 사는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바뀔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5번째 사사였던 기드온은 우리가 잘 아는 겁쟁이에 우상숭배자 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에게 별명하나가 생깁니다. 여룹바알 “바알을 상대하는 사람” 그 뜻은 오늘날로 말하면 “바알과 싸울 수 있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어떻게 그의 삶이 180도 바뀔 수 있었을까요? 3가지를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여룹바알이 되려면 “말씀에 순종하라”.  25-29

25절 그 날 밤에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네 아버지의 외양간에서 어린 수소 한 마리를 끌어오고, 또 일곱 해 된 수소도 한 마리를 끌어오고, 네 아버지의 바알 제단을 허물고, 그 곁에 있는 아세라 상을 찍어

그날밤”이란 우리가 지난주 살펴봤던 기드온이 “여호와 샬롬”의 하나님께 부름받았던 날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날 밤 기드온에게 나타나 그에게 한가지 미션을 줍니다. 기드온의 아버지에게 있는 칠년된 숫소와 어린소를 취하고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단과 아세라 상을 찍어라” 였습니다. 이것은 기드온에게 “불가능한 미션”이었습니다. 7년이란? 그동안 미디안족속에게 압제받은 기간이었습니다. 그 기간동안 메뚜기 때같은 그들에게서 남아있었다는 것은 “생명같이 아낀 소”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평생 섬겼던 바알과 아세라상을 쪼개랍니다. 여러분 당시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와 땅의 소산을 먹는 농경사회가 됬습니다. 그러면서 하늘의 비와 바람의 신인 바알과 땅의 풍요의 다산의 신인 아세라상을 섬기게 됬습니다. 근데 한순간에 쪼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26절 그런 다음에 이 산성 꼭대기에서 규례에 따라 주 너의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잡고, 찍어 낸 아세라 목상으로 불을 살라 번제를 드려라.

그 쪼갠것으로 우상의 단을 불태워 예배를 드리랍니다. 이것은 지금말로 표현하면 “네가 지금까지 목숨처럼 붙들던 모든것을 잘라내고 불질러라” 이런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할려고 하실때 이같은 미션임파서블을 주십니다. 저는 대학 1학년때 두 주님을 섬긴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경에 나오는 주님, 또 하나는 술집에 나오는 주님입니다. 디자인과에서 술을 끊는다는 것은 친구관계만 아니라 선후배와 앞으로 진로까지 끊어질 수 있는 말도 안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때 나는 모든 것이 끊어질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건강하고 올바른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과 분명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말씀의 순종은 세상을 끊고 하나님을 붙잡는 첫번째 관문입니다. 오늘도 이 말씀을 들으며 주어지는 미션 앞에 순종으로 여룹바알이 되시길 바랍니다.

두번째로 여룹바알이 되려면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라.”  30-32

 기드온의 이 행동은 바로 다음날 터졌습니다. 30절 그래서 성읍 사람들은 요아스에게 말하였다. “당신의 아들을 끌어내시오. 그는 죽어야 마땅하오. 그가 바알의 제단을 헐고, 그 곁에 서 있던 아세라 상을 찍어 버렸소.

사람들이 이 일로 기드온을 죽이려고 온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의 시대상을 말해줍니다. 단을 훼파하자 마자 알았다는 것은 그들이 매일 아침 우상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볼것은, “우상을 깨뜨린자가 죽일자입니까? 우상을 섬긴자가 죽일자입니다.” 죄가 관영해진 어두운 시대상을 말해줍니다. 이것은 지금의 미국생활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지 못하는 상황속에서 저는 목회자로서 무력감을 느낍니다. “이런 시대속에 나의 외침이 무슨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31절 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들이 바알의 편을 들어 싸우겠다는 것이오? 당신들이 바알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이오? 누구든지 그의 편을 들어 싸우는 사람은 내일 아침에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오. 만일 바알이 이라면, 자기의 제단을 헌 사람과 직접 싸우도록 놓아 두시오

성령은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를 통해서 “바알이 진짜 신이면 바알이 기드온을 죽일테니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게 하셨습니다. 지혜로운 방법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와 관계가 끊어질 수 있는 두려운 상황에 오히려 아버지의 마음을 감동케 하셔서 가정이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점을 주목해봐야 합니다.

마치 모세가 말씀에 순종하여 바로에게 나갈때 바로의 마음을 바꾸어 주듯, 다니엘의 믿음앞에 왕의 마음이 바뀐것처럼,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여 가정에 말씀을 선포하면 결국, 그 말씀의 능력이 가정을 변화시킵니다. 저는 여기서 죄가 관영한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며 가정과 교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봅니다. 우리는 가정과 사회를 변화시킬 힘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나에게 주신 말씀에 순종 할 수 있는 힘은 있습니다. 그것을 순종할때 가정과 사회는 하나님이 변화시켜주신다는 점입니다. “여룹바알”이란 내가 바알과 싸우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바알과 싸우게 하는 자”란 뜻입니다. 오늘도 가정의 여룹바알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여룹바알이 되려면 “여호와 닛시의 기도를 시작하라”  33-40

33절 그 때에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사막 부족이 모두 함께 모여 요단 강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평지에 진을 쳤다 그때란, 가정이 변화되려고 할때 우리의 신앙이 여룹바알이 되려할때 미디안이 또 쳐들어왔다고 말합니다. 신앙생활은 항상 이렇습니다. 뭔가 되려고 할때, 어려움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이 여룹바알에게는 오히려 견고한 산성이 되게 합니다. 34절 보십시오.

34절 주님의 이 기드온을 사로잡으니, 기드온은 나팔을 불어 아비에셀 족을 모아 자기를 따르게 하고

본래는 파숫군이 나팔을 불어야 하지만 기드온이 불었습니다. 왜냐면 불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이 싸움을 준비하거나 일으킬 수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이나 목장 그리고 교회에서 누가 나팔을 불어야 할까요? 저는 이새벽에 저와 여러분이 가정의 나팔수로 세워지길 축언합니다. 근데 이때 그는 매우 “연약해 보이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것이 36-41 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잘 아는 양털에 이슬이 내리는 표적이었습니다. 그는 두번이나 이런 표적을 구합니다. 우리는 이장면을 보며 불신앙적인 기드온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내용을 자세히 보십시오

36절 기드온이 하나님께 아뢰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나를 시켜서 이스라엘을 구하시려고 하십니까?

그는 이 싸움이 미디안이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싸움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즉 출애굽때부터 가르쳐 주신 “여호와 닛시”(여호와가 나의 승리다)를 회복하고 있는 기도인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잊고 있었던 싸우는 방법을 다시 회복하고 있는 기도입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싸우는 법을 잊었습니다. 기드온은 그것을 다시 회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어두워져 가는 우리 가정에 정말 필요한 것이 이것입니다. “여호와 닛시” 오늘도 하나님이 싸우시게 하는 여룹바알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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