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이긴 사람들 (사사기강해 11), 삿4:1-10, 고질병을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2024.04.18 10:21
예수인교회
삿 4: 1-10, 고질병을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찬 289장(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우리가 쉽게 고치지 못하는 나쁜 습관이나, 후회하면서도 극복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행하는 죄를 가리켜 ‘고질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시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심각한 고질병이 있었습니다.
본문 ‘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에훗이 죽은 뒤에, 이스라엘 자손은 다시 주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악한 일을 저질렀다”
‘다시 주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악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고통을 당하면서도 고치지 못하고, 자꾸만 죄에 빠지는 고질병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을 바로 가나안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문화와 향락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민족,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와 그들의 문화와 향락과 즐거움과 쾌락을 보니까, 하나님은 ‘하지 말라, 안 된다’하셨는데, 가나안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다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은 죄라 하셨는데, 그들은 괜찮다고 합니다. 욕심과 쾌락에 빠져 살면서도, 이것이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만 가나안의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세상과 구별되지 않고, 세상의 삶의 방식과 돈만 많이 벌면 된다는 물질주의와 나와 내 가족만 행복하고 구원받으면 된다는 이기주의의 삶, 여전히 남의 허물과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랑이 없는 삶,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고질병이었고, 지금 우리가 걸려있는 신앙의 고질병입니다.
그래서 ‘2절 상반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하솔을 다스리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내주셨다.”
그런데 여기서 ‘내주셨다’는 단어의 보다 정확한 뜻은 ‘파셨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출애굽’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대속해 주셨다’ 즉 ‘값을 치르고 사셨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파셨다’는 것은 그 반대의 의미로, ‘그 구원이 취소되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써의 ‘출애굽이 아닌 다시 죄의 종이 되고, 세상의 종이 되는 반출애굽의 삶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나안의 삶을 살면서 ‘그래도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함을 상실하고 세상과 똑같이 살아가는 너희는 더 이상 나의 구원의 백성이 아니다”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가나안의 삶, 세상의 죄악된 고질병을 고치고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겠습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을 믿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해야 합니다.
본문 ‘3절, 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야빈은 철 병거 구백 대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하게 억압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께 울부짖었다. 그 때에 이스라엘의 사사는 랍비돗의 아내인 예언자 드보라였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살면서 겪게 되는 최대의 위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솔 왕 야빈’은 이스라엘을 진멸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진 군대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철 병거가 구백 대’라고 말합니다. 당시 철 병거는 전쟁에서 최강의 무기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당시 아주 강한 군대 장관 ‘시스라’를 앞세워 이스라엘 민족을 진멸하려고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절대적인 위기의 순간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 바로 ‘드보라’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여자였습니다. ‘4절’에 보면 ‘랍비돗의 아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녀는 ‘한 가정의 주부였다, 아내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에 여자는 이스라엘을 이끌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연약한 자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뤄나가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당시 지도자로서 자격을 갖출 수 없었던 ‘드보라’를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그녀가 ‘말씀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5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에브라임 산간지방인 라마와 베델 사이에 있는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앉아 있으면,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와 재판을 받곤 하였다.”
이 말씀은 ‘드보라’라는 여인은 ‘사사’로 세움 받기 전부터 ‘말씀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억울함이나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드보라’라는 이름은 ‘꿀벌’이라는 뜻인데, 이 단어의 어원이 ‘말하다’라는 의미에서 나왔습니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늘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위기의 순간 이스라엘의 그 수많은 잘난 남자들이 아닌 연약한 여자이며 가정 주부였던 그녀를 선택하셨고, 그녀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의 역사를 이뤄나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본문은 ‘드보라’와 대조적인 한 남성을 이야기 합니다.
본문 ‘6절, 7절’입니다.
“하루는 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납달리의 게데스에서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불러다가, 그에게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분명히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너는 납달리 지파와 스불론 지파에서 만 명을 이끌고 다볼 산으로 가거라.
야빈의 군지휘관 시스라와 그의 철 병거와 그의 많은 군대를 기손 강 가로 끌어들여 너의 손에 넘겨 주겠다.’”
이 말씀을 보면 사사 ‘드보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락’이라는 장군에게 전쟁에 나가 싸울 것을 명령합니다. 그러나 이 ‘바락’이라는 장군이 볼 때, 이 상황은 절대 불가능하게 보였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농사나 짓던 오합지졸인데, 적은 강력한 철 병거 900대로 무장한 막강한 정예부대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입니다.
그래서 ‘8절’에 ‘바락’이 이렇게 말합니다.
“바락이 드보라에게 대답하였다. “그대가 나와 함께 가면 나도 가겠지만, 그대가 나와 함께 가지 않으면 나도 가지 않겠소.”
‘바락’은 지금 이 현실과 상황을 보았을 때 이건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머리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을 보면 이것을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힘으로 할 수 없으니, 하나님의 사람인 드보라 당신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드보라’라도 있어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바락’은 하나님의 말씀만으로는 온전히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믿고, 말씀은 붙들고 살고 싶지만, 정작 삶의 상황 보고, 철 병거 같은 세상을 보면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먼저 주님의 능력을 보여주시면, 먼저 이 문제부터 해결해 주시면, 그때부터는 정말 말씀대로 믿고 실천하며 살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락’과 같은 신앙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9절, 10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자 드보라는 “내가 반드시 장군님과 함께 가겠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시스라를 한 여자의 손에 내주실 것이니, 장군께서는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하고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갔다.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를 게데스로 불러모았다. 바락이 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쳐올라갔고, 드보라도 그와 함께 떠났다.”
‘바락’이 온전히 말씀을 붙들지 못하고 나갔을 때, 비록 그가 전쟁에서는 승리하지만 그 영광의 주인공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실컷 전쟁을 치렀지만 그 상급을 놓쳤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상황과 환경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나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야할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말씀을 믿고, 말씀을 붙잡고 이 하루를 살아가야 하지만, 그리고 그렇게 살고자 하는 마음은 있지만, 정작 삶의 문제 앞에 서게 되고, 상황 앞에서 서게 되면, 말씀보다는 세상을 더 크게 바라보며, 말씀을 온전히 붙들지 못하고, 흔들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1장 37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오늘, 이 하루를 살아가면서 이것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비록 아직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눈에 보이는 ‘시스라’의 철 병거와 같은 힘도 없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와 오늘도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일어서기만 하면 내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이 내 삶을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위기의 순간 하나님에 택한 사람은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녀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고, 비록 그녀는 아무 힘도 없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말씀의 능력이 있었기에 이스라엘을 20년의 깊은 고통과 절망에서 구원해 내는 위대한 사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기는 우리의 삶 또한 비록 지금 내 삶의 상황과 모습은 어렵고 힘들다할지라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의 능력을 믿고 순종하여, ‘드보라’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능력의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제목: 하나님의 말씀보다 눈앞에 있는 세상의 상황과 형편을 더 크게 보는 바락이 아니라 비록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오직 말씀만을 붙들고 살아가는 드보라와 같은 삶을 살게 하소서. 드보라와 같이 나를 통해 위기의 가정, 자녀, 직장, 목장, 교회, 삶의 터전을 회복시켜 주소서.
중보 기도(목: 지도자들): 담임목사님과 목회자들의 성령충만으로 사명 감당을 하게하소서. 교회를 섬기는 제직/서번트/팀장/목자/봉사자들의 섬김 속에 은혜와 기쁨이 가득하게 하소서. 이 땅의 위정자들이 하나님의 공의 가운데 서있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