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이긴 사람들 (사사기강해4) 삿1:22-28 빛이 꺼질때
2024.04.05 09:25
예수인교회
어둠을 이긴 사람들 사사기4 삿1:22-28 빛이 꺼질때 찬546/통399 주의 약속하신 말씀위에서
빛을 켜면 어둠은 순식간에 떠나갑니다. 그래서 빛이 어둠보다 강해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이즈’입니다. 가령 그 빛을 꺼보십시오. 금새 어두운 세상이 됩니다. 즉 빛가운데 어둠이 있는게 아니라 항상 어둠속에 빛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계속 빛을 내지 않으면 언제든지 어둠에 함몰 된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오늘부터 보는 장면에 이 문구가 반복됩니다. “그 땅의 거민을 쫓아내지 못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빛의 사람들이 빛을 내지 못했다.”란 의미와 같습니다. 사실 이것은 오늘 어두운 세상속에서 빛을 내지 못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오늘 이어지는 요셉 족속의 실패를 통해서 “빛이 빛을 내지 못할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살펴봅시다.
첫째 빛이 꺼질때 “다시 돌아갑니다.”
. 삿 1:22-24 요셉의 집안 역시 베델을 치러 올라갔다.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다. 요셉 가문이 베델을 정찰하였는데, 그 성읍 이름이 전에는 루스였다. 정찰병들이 그 성읍에서 나오는 한 사람을 붙들고 말하였다. “성읍으로 들어가는 길이 어디인지 알려 주십시오.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요셉 지파란 창세기48장에 나오는 요셉의 두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말합니다. 에브라임은 나름 침착하게 루스라는 지역을 정복해 갈때 정탐꾼을 사용해서 그 성의 입구를 알아낸 후 곧바로 공격 했습니다. 이때 도움을 준 한 가정을 살려 주게 되는데, 이 장면이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습니까? 여호수아서에 등장하는 기생라합의 이야기입니다. 어찌 보면 그를 도와준 것이 당연한 것 같지만 이것은 가나안의 “계약위반”이 됩니다. 지난번 살펴본 것처럼 가나안에서 외부인이 동거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그 은혜로 들어 올 수 있습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때 기생라합은 “내가 상천하지에 여호와 같으신 분을 본적이 없다”는 신앙고백을 했기 때문에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이처럼 분별력 없는 그들의 결정이 어떤 나비효과를 만드는지 보십시오. 삿1:26그 사람이 헷 사람들의 땅으로 가서 한 성읍을 세우고, 그 이름을 루스라 하였는데, 오늘날까지도 그 이름으로 불린다. 잘보십시오. 어렵게 루스를 정복했는데, 에브라임이 살려준 사람이 가서 또 “루스”를 만든 것입니다. 훗날 이스라엘이 이곳을 다시 정복한 후 이곳의 이름을 벧엘(하나님의 집)로 세웁니다. 잘보십시오. 하나님의 집인 벧엘이 빛을 분명하게 나타내지 못하자 다시 루스가 된 것입니다. 루스의 뜻은 ‘길을 잘못들다’. 죄를 상징합니다. 중요한 영적 원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끔 세상에 빛을 낼때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할까봐 제대로 나타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가령 믿지 않는 가족이나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의 이름이나 교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전하는 이가 없으면 어찌 들으리요.” 우리는 계속 빛을 내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다시 어둠이 돌아올 수 있습니다. 힘들더라도 조금 부담 되더라도 빛을 내야 할때 분명한 빛을 낼 수 있는 하루가 되고록 기도합시다.
둘째 빛이 꺼질때 “말씀이 변질 됩니다”
삿1:27므낫세 지파가 벳산과 그 주변 마을들과, 다아낙과 그 주변 마을들과, 돌과 그 주변 마을들과, 이블르암과 그 주변 마을들과, 므깃도와 그 주변 마을들에 사는 주민을 몰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사람들은 그 땅에서 살기로 마음을 굳혔다.
므낫세의 싸움을 보면 더 답답합니다. 그들은 대부분의 싸움에서 거주민들을 쫓아내지를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말씀을 잘 지키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보면, “므낫세는 정말 힘들었나 보다. 정말 약했나 보다” 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 개역 개정으로 28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즉 그들은 그동안 약해서 그들을 쫓아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번역으로 보면 정확하게 해석 됬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강성해진 다음에도 가나안 사람을 모조리 몰아내지 않고, 그들을 부역꾼으로 삼았다.” 그들은 나중에 강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일부러 쫓아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왜일까요? “쫓아낼것까지는 없어”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꺽은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들을 종으로 삼아서 사역을 시키려고 남겨놓은 것입니다. 즉 나의 이익을 위해서 말씀을 변질 시킨것입니다. 이것은 마귀가 잘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 등장하는 뱀은 하와에게 “정말 먹으면 죽는다고 하더냐 죽을까 하노라” 라는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트위스트 시켰습니다. 말씀을 언제든지 내상황과 환경에 맞게 편리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만약 말씀을 듣고 깨달음이 있었다면, 그 즉시 행하는 습관을 갖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이 트위스트 될수있습니다. 어떻게요? 나에게 편리한대로, 나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변질 될수있습니다. 왜냐면 “빛이 꺼졌기 때문입니다.” 어둔 세상에 빛이 꺼지면,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마음이 들어옵니다. 이 마음이 말씀을 나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변질 시키는 것입니다. 오늘도 가정과 일터와 삶속에서 나에게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증인된 빛을 빛으로 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