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이긴 사람들 (사사기강해3)  삿1:16-21 빛 가운데 사는 법

2024.04.05 09:23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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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이긴 사람들 사사기강해 3  삿1:16-21  빛 가운데 사는 법  269/통 219  그 참혹한 십자가에

  미국에서 렌트 생활을 할때 한국과 다른 점 중 하나는 계약을 한 당사자 외에 다른 사람은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 가족만 계약했는데 갑자기 친척이 왔다고 함께 동거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발각되면 퇴출 됩니다. 가나안 땅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민 33:51-53을 보면 가나안 땅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이스라엘만 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두종류의 동거인들을 소개합니다. 이걸 통해 어둠의 시대에 빛으로 살아 갈 수 있는 두가지 방법을 함께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빛 가운데 살아가려면  “믿음으로 살아 갑니다.” 16

삿1:16 모세의 장인은 겐 자손인데, 그의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인 여리고로부터 아랏 쪽에 있는 유다 광야로 옮겨와서, 유다 광야 백성 가운데 자리잡고 살았다  성경은 갑자기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의 종족이 종려나무 성읍인 여리고 근방에서 살게 된 이야기를 꺼냅니다. 사실 이것은 불법 거주였습니다. 왜냐면 이드로는 미디안의 이방신을 숭배하던 제사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말로 말하면 불교의 스님이 교회 사역을 맡은 꼴입니다. 이드로가 차지한 여리고 지역은 종려나무가 많이 자랄 만큼 물과 지리적 풍토가 좋은 최고의 명당이었습니다. 그래서 훗날 이스라엘에서 가장 무역이 활발했던 무역 도시가 됩니다. 삭개오가 이곳 세리장(텍스콜렉터)으로 돈을 어마어마하게 모은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이방인이면서도 이런 축복을 얻었을까요? 이것을 이해하려면 출애굽기 17장으로 가야 합니다.

당시 모세와 이스라엘은 출애굽 이후에 광야를 지나며 아말렉과의 전투가 일어났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처음 겪은 전쟁이었고, 무기도 없었던 상태에 이들을 이끌었던 여호수아는 모세의 발을 닦아주는 시종이었습니다. 반면 아말렉은 광야의 최고 전투 부대였습니다. 중요한 점은 그런 아말렉을 상대로 이스라엘이 이겼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모세의 기도 손 하나로 승리했습니다. 바로 이때, 이스라엘의 진영에 장인 이드로가 찿아 왔습니다. 모세는 흥분되어 자기가 경험했던 하나님을 밤새 간증했는데, 그걸 듣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출18:11-12 이스라엘에게 그토록 교만히 행한 그들에게 벌을 내리시고 치신 것을 보니, 주님이 그 어떤 보다도 위대하시다는 것을 이제 나는 똑똑히 알겠네.”그리고 나서,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하나님께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바쳤다. 아론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모두 와서, 하나님 앞에서 모세의 장인과 함께 제사 음식을 먹었다  

그는 자신의 신보다 하나님이 더 위대하다고 찬양하며, 모세와 함께 예배에 참여하여 성만찬까지 한 꼴이 된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고향 미디안으로 돌아가서 자기 민족전체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다 데리고 마치 아브라함처럼 갈바를 알지 못하고 이스라엘과 함께 광야길을 합류하여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아브라함보다 더 큰 믿음일 수 있습니다. 왜냐면 그는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적도 없고 그저 모세의 믿음을 쫓아왔기 때문입니다. 근데 평생 처음하는 광야생활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먹을 것도 입을것도 불편했습니다. 거기다 가나안에 오면 젖과 꿀이 흐르고 다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와보니 목숨걸고 전쟁해서 차지해야 했습니다. 불평과 원망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 하나님을 믿고 여기까지 온 끝에 가장 좋은 가나안의 팬트하우스를 선물로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이드로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원래 이스라엘의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믿음이 생겨서 여기까지 따라온 이방인입니다. 처음 교회만 나오면 모든게 만사형통 행복시작이라고 들었지만 신앙생활을 그렇지 않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때론 광야생활에 때론 영적싸움에 지치고 두려울때도 많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걸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 이드로를 보란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가다 보면 결국 이드로처럼 천국 백성이 될것입니다. 오늘도 이 믿음으로 간구하는 새벽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빛가운데 살아가려면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갑니다.”

  이후에 유다지파들은 계속해서 가나안 땅의 남은 잔재들을 제거해 나가는데 두 종류의 남은 동거인들을 발견합니다. 하나는 에그론 거민입니다

삿1:19 주님께서 유다 지파 사람들과 함께 계셨으므로, 그들은 산간지방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낮은 지대에 살고 있는 거민들은, 철 병거로 방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쫓아내지 못하였다. 에그론 거민은 철병거 때문에 남겨놨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훗날 이스라엘을 두고 두고 괴롭히는 블레셋이 됩니다. 작은 죄의 습관들이 그렇습니다. 간혹 매스컴에서 믿음의 거인들이 쓰러질 때를 보면, 뭔가 큰 살인사건이나 범죄로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작은 거짓말, 작은 불신, 작은 게으름, 작은 성욕과 두려움이 쌓여서 무너 진것입니다. 이것을 철저하게 관리 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거민은 여부스입니다. 삿1:21 베냐민 자손이 예루살렘에 사는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오늘날 까지 예루살렘에서 베냐민 자손과 함께 살고 있다  베냐민은 12지파중에 가장 연약한 지파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여부스 사람들을 몰아내지 못하고 그들과 다윗왕때까지 수백년을 공존합니다. 이 외에도 종종 남겨지는 종족들이 발생했는데, 대부분은 이유가 똑같습니다. 상대의 전력이 너무 강하거나, 이스라엘이 너무 약해서 그냥 함께 산 것입니다. 이걸 보면 우리는 무엇을 느끼나요? “그래 국력이 힘이다. 힘을 길러야 해! 돈이 더 많아야 해, 경력과 스펙을 더 쌓아야 해, 미국이니까 영어가 부족해서 그래, 외모가 부족해서 그래”라고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깊게 생각해보면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이런 것으로 싸워오지 않았습니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여기까지 온것입니다. 이들은 광야에 아무것이 없어도 재정도, 신발도 옷도 해이지 않고 먹을 양식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왔습니다. 심지어는 아말렉과의 전쟁도 기도로 이겨습니다. 그들의 싸움 방식은 오직 “하나님”이었습니다.

여호수아 17장에 이미 가나안에 철병거가 있다는 것을 미리 안 여호수아는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랬던 그들이 “철병거를 무서워한다?” 이것은 그들이 싸움 방식이 ‘하나님의 힘’에서 “자신의 힘”으로 바꾸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린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다. 이 은혜를 믿고 오늘도 어둠의 세상속에서 재정의 철병거, 사람의 철병거, 건강의 철병거, 수많은 문제의 철병거를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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