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5 눅 23:44-46 십자가에 달린 사람

2024.03.29 09:31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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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5  눅 23:44-46  십자가에 달린 사람   찬269/통 211 그 참혹한 십자가에

예수님은 드디어 우리를 십자가 위, 자신의 죽음의 현장으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이룬 그 죽음의 의미를 묵상하게 하십니다. 마지막 날 주님의 음성을 통해서 우리가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 그리고 그 죽음이 의미하는 바를 함께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반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눅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어 말씀하셨다. “아버지, 내 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는 숨을 거두셨다.

십자가에 죽은 사람이란, ‘내 인생을 주님께 맡긴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이런 사람이 갖는 첫번째 반응은 염려 걱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각 할때 사실 여기서 끝난게 아닙니다. 이 후에 다리가 꺽이지 않게 무덤에 들어 갔다가 온전한 모습으로 부활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 시체의 훼손이나 문제가 발생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온갖 걱정이 태산이었을 것입니다.저 병사가 내 다리를 꺽으면 어떻게 하지 누군가 내 몸에 헤꼬지 하면 어쩌지, 아… 나 이대로 진짜 죽으면 어쩌지,,, 아 미치겠다.” 근데 예수님은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이것이 ‘내 영혼을 주님께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날씨가 안좋을때 특히 폭풍과 천둥까지 치는날이면 비행기를 타는게 두렵습니다. 그런데 스튜어디스나 조종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륙합니다. 왜일까요? 비행기가 ‘성층권’에 도달하면 거기는 구름도, 비와 바람도 없는 해가 찬란히 빛나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은 순간 우리의 인생은 ‘성층권’으로 진입한 것입니다. 또 하나,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예수가 죽은 뒤 라도는 예수의 죽음을 확인했습니다(막15:44). 안 죽었으면 다리를 꺽기 위해서 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자꾸 우리를 건듭니다. 왜요? 진짜 죽었나 안죽었나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우린 매일 ‘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 말합니다. 그런데 정말 죽었습니까?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건들어 보면 압니다. 시체는 꼬집어도, 험담을 해도, 미워해도 반응을 못합니다. 근데 죽은 척 하는 사람은 조금만 꼬집어도 ‘아야야’ 합니다. 조금만 험담해도 금세 반응이 옵니다. 왜죠? 아직 자아가 죽지 않은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운명하셨다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운명”이란 에크프네오로 더 이상 몸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내영혼을 맡기게 된 것은 우리의 육체가 더 반응하지 않는 상태가 됬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십자가의 죽음이 체험되는 예수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십자가에 달리 사람은 “장벽을 넘어가는 사람”입니다.

눅23:45 는 빛을 잃고, 성전의 휘장은 한가운데가 찢어졌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음을 선언하자, 예루살렘 성전안의 성소 휘장이 찢어 졌습니다. 성소에 휘장을 쳐놓은 이유는 죄인을 돌격하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구약부터 죄인이었던 인간은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오직 대제사장만 들어가게 되어있었습니다. 이 휘장은 출애굽기에 보면 절대로 찢어지지 않는 소재로 두깨만 약 15cm로 만들어 졌습니다.

   근데 이것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이 직접 휘장을 찢었고, 예수의 피를 통해서 이제는 누구라도 하나님께 나올 수 있는 은혜를 얻었다는 의미 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가지 더, 예수님의 보혈은 하나님과의 관계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이 누군가와 사이가 안좋아질때 그 관계에는 휘장이 쳐집니다. 절대로 갈라지지 않는 휘장입니다. 이 휘장을 열수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보혈, 그 피의 ‘사랑과 용서’가 부어질때 갈라집니다. 그래서 먼저 용서해보십시오. 놀라운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휘장을 갈라주신 것입니다. 이시간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가서 예수의 이름으로 휘장을 제거하는 은혜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셋째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부활을 소망하는 사람”입니다.

막 15:46 요셉은 삼베를 사 가지고 와서, 예수의 시신을 내려다가 그 삼베로 싸서, 바위를 깎아서 만든 무덤에 그를 모시고, 무덤 어귀에 돌을 굴려 막아 놓았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신 후 돌무덤에 장사 되었습니다. 이 돌무덤은 조금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어둠과 절망의 공간”입니다. 나오고 싶어도 돌문이 꽉막혀서 어떻게 보면 죽음보다 더 깊은 절망의 공간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무덤에서 나올 수 있는 단 하나의 암호키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볼까요. 요 5:28 이 말에 놀라지 말아라 무덤속에서 있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음성을 들을때가 온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반응하는 존재가 될때 무덤에서 나올거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 예수님은 나인성과부의 죽은 아들을 말씀으로 살려냈고, 무덤에 죽었던 나사로도 말씀으로 나오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무덤에서 나올 수 있을까요? 하나는 “주님의 말씀에 반응 할 수 있을 때”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을때마다 아멘 하며, 반응하게 될때, 매주 목장에서 말씀대로 사는 것을 훈련 할때, 주님의 말씀에 그대로 살아가는 훈련을 할때, 그때 무덤에서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하나는 “나의 완전한 죽음이 선언될때 “입니다, 예수님은 장사한지 사흘의 시간을 무덤에서 보내셨습니다. 이시간은 이스라엘의 완전한 죽음을 말하는시간 입니다. 우리안에 나의 죽음이 선언될때 우리에게 지금까지 주셨던 나의 십자가를 알고, 예배를 회복하고, 십자가의 열심과 사랑, 그리고 겟세마네 기도를 계속해 갈때 더이상 반응하지 않는 죽은 자가 될때 그때 돌문은 열릴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에 우리가 제대로 죽지 않고 무덤문이 열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도 문제가 될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문제들이 단순히 빨리 지나가길 소원하기 보다는 먼저 우리가 십자가에 제대로 죽어야 함을 돌아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번 사순절 우리가 정말 십자가에 죽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오늘도 주님의 계획을 믿고 염려하지 말고 반응하지 말고 맡기 싶시오. 그리고 모든 장벽을 넘어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일어나는 훈련으로 새롭게 부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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