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예수 NO OTHER GOSPEL 03. 갈 2: 1-10,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
2024.03.14 10:14
예수인교회
갈 2: 1-10,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 찬292장(주 없이 살 수 없네)
성경을 보면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외부로부터도 많은 박해와 고난을 당했지만, 교회 안에서도 많은 도전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마다 사도바울은 담대함으로 그 어려움을 이겨났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본문 ‘9절 상반절’에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래서 기둥으로 인정받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인정하고, 나와 바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서, 친교의 악수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
‘사도바울’이 그 많은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쓰러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담대히 이겨나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네 안에 있는 은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그 은혜가 있었기에, 그 감격이 내 삶에 가득했기에, 그 은혜가 내게 닥친 고난과 문제보다 더 크고, 더 감격스러웠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담대히 믿음 안에서, 십자가를 붙들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며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주신 은혜 안에 살아가는 신앙’을 어떤 삶이겠습니까?
첫 번째로 ‘문제 가운데 하나님의 행하심을 바라보는 신앙’입니다.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사도바울’이 지금 예루살렘으로 온 이유는 거짓 교사들과의 할례와 율법에 대한 논쟁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이방 교회를 대표했던 ‘안디옥 교회’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디도’를 ‘예루살렘 교회’에 보내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최초의 ‘예루살렘 회의’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에 큰 도전과 공격을 받고, 그것을 확인받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만약 잘못되면 10년이 넘게 자신이 전했던 복음이 한 순간에 모두 무너지고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위기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갈라디아서 2장 2절 상반절’을 보면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거기에 올라간 것이 계시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계시’가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올라갔다. 예루살렘으로 왔다’는 겁니다. 지금 ‘사도바울’은 선교를 하는데 큰 문제가 생기고, 장애가 생겨서 ‘예루살렘’으로 온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이것을 ‘하나님의 계시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셔서 간 것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문제가 생긴 겁니다.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의 말이 맞느냐,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이 맞느냐를 결정 짖는 매우 중요하고 큰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이것을 문제로 보지 않고, ‘하나님이 역사하길 기회’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를 주시기 위해 이 일을 행하시는구나”라고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일을 ‘하나님의 계시’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성도의 신앙의 삶 또한 모든 상황과 환경이 하나님의 계시임을 믿고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문제 가운데서도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과정이며, 나를 들어 사용하시는 순간임을 믿고, 말씀대로 담대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내게 있는 문제는, 내게 있는 질병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축복의 과정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신앙입니다.
오늘 본문의 초대교회 당시 거짓 교사들은 성도들에게 믿음의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율법과 할례를 강요하였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듣고 믿고 ‘구원의 자유함을 누리는 삶’이 아니라 ‘율법에 눌리는 삶’을 살게 했습니다.
그래서 ‘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몰래 들어온 거짓 신도들 때문에 할례를 강요받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자 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자유를 엿보려고 몰래 끼여든 자들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안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데, 거짓 교사들은 몰래 복음을 가장해서 자꾸 예수를 믿는 것 외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과 믿음을 노예처럼 눌리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진짜 경험한 사람은 참된 자유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잠시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진리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가 항상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생명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 사랑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참된 자유를 누리고,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자유는 하나님 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 은혜 가운데 누리는 자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는 아무 것이나 마음대로 다 하는 자유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자유는 무엇이든지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이 교회와 성도 간의 신앙과 사랑에 덕이 되지 않는다면 하지 않겠다는 자유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그것을 포기할 수 있는 자유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주님이 주신 은혜 안에 살아가는 성도의 신앙은 ‘이웃을 기억하는 신앙’입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다만, 그들이 우리에게 바란 것은 가난한 사람을 기억해 달라고 한 것인데, 그것은 바로 내가 마음을 다하여 해 오던 일이었습니다.”
구원의 은혜로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모습은 바로 그 받은 사랑과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증인의 삶’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 사랑을 정말 누리면 살아간다면, 그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가난한 사람’이란 의미는 ‘비참함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에서 나온 단어로, 이것은 삶의 궁핍함을 말하지만, 또 ‘영혼의 갈급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즉 삶의 어려움과 궁핍가운데 있는 이웃을 돌보는 것도 증인된 성도의 신앙의 삶이지만, 또 영혼의 갈급함으로 죽어가는 세상 속에 있는 가족과 이웃을 살리는 것도 증인된 그리스도인의 사명인 것입니다.
기도 제목: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항상 누릴 수 있는 성령충만을 부어 주소서. 그래서 내게 있는 문제와 어떤 상황에서도 참된 자유함을 누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선한 계획과 목적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통해 복음의 증인의 삶을 살게 하소서.
중보 기도(목: 지도자들): 담임목사님과 목회자들의 성령충만으로 사명 감당을 하게하소서. 교회를 섬기는 제직/서번트/팀장/목자/봉사자들의 섬김 속에 은혜와 기쁨이 가득하게 하소서. 이 땅의 위정자들이 하나님의 공의 가운데 서있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