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예수 No Other Gospel 01. 갈 1: 1-10,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2024.03.12 10:20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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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1: 1-10,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찬197장(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예전에 한 집사님께서 평소에 친한 친구가 이단인 ‘구원파’를 다니는데 상담을 한 번 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그 친구 분을 만나 복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이미 마음의 문을 꽉 닫고 나오셔서, 제가 아무리 성경과 복음에 대해 말을 해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그 분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자신도 주변에 걱정과 염려를 잘 안다. 그런데 자신은 그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조금 다른 게 뭐가 그렇게 큰 문제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상담을 끝내고 사무실에 들어와 책상에 앉았는데, 계속해서 제 귀를 떠나지 않는 한 마디가 있었습니다. “조금 다른 게 뭐가 큰 문제냐?”

‘조금 다르다’고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그 조금 다름이 엄청난 차이와 변질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우리가 살펴볼 ‘갈라디아서’는 이 복음의 진리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정확하게 다시 한번 강조하는 말씀합니다.

‘사도바울’은 ‘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를 이 악한 세대에서 건져 주시려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바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오직 ‘예수 밖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사도바울’이 ‘갈라디아 지방’에 있던 교회들에게 보낸 이 편지 ‘갈라디아서’는 다른 서신들과는 다르게 시작합니다. 다른 대부분의 서신들은 그 편지를 받는 그 독자들을 향해서 안부를 묻고, 지금까지 함께 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드립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리고 굉장히 격한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합니다.

그 이유는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이 ‘사도바울’이 전한 순수한 복음을 버리고 교회 안에 들어와 있던 ‘히브리파 유대인들’, 즉 ‘율법주의자들’이 전한 거짓된 복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 지역’은 지금으로 말하면 ‘터키 지역’으로 도시가 아니라 큰 지역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LA카운티’와 같이 그 안에 여러 도시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는 한 교회가 아니라, 그 지역에 있던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바울’은 ‘1차 전도 여행’ 중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풍토병인 ‘말라리아’에 까지 걸리면서도, 목숨을 걸고 그곳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다른 지역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떠나자,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와 ‘사도바울’의 복음이 잘못된 것은 아닌데, “그 복음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의 백성은 율법도 함께 지켜야 한다.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거짓 교훈들을 섞어서 함께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더구나 그들은 자신들이 ‘예루살렘’에서 왔으며, ‘사도바울’은 진정한 사도가 아니다라고 말하면,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이 아니라 자신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믿고 따라야 한다고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듣게 된 ‘사도바울’은 자신이 목숨을 바치며 복음을 전한 그곳에 거짓된 교사들이 들어가 그들에게 거짓된 복음을 전하는 것에 크게 분노를 하며,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거짓에 속지 말고 복음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며, 인사조차 할 여유가 없이 바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세 가지를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권면하며 강조합니다.

첫 번째는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다”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를 시작하는 ‘1장 1절’부터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시켜서 사도가 된 것도 아니요, 사람이 맡겨서 사도가 된 것도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고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임명하심으로써 사도가 된 나 바울이,”

여기서 ‘사람이 시켜서가 아니다’라는 말은 그 사도권의 기원을 말씀하는 것으로 “그 사도권이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다’라는 것은 “사도직은 특정한 사람들에게 인정 받아 임명받는 직분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즉 ‘사도바울’은 사람이 세우고, 사람이 인정하는 사도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정하는 사도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임명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바울’이 강조한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 공로로 구원을 받았고, 주님의 거룩한 일을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가정, 직장, 사업장, 삶의 모든 자리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신 사명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본문 ‘4절’을 다시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를 이 악한 세대에서 건져 주시려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바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건져낸다’는 단어의 뜻은 ‘선택하다, 구해내다’라는 뜻입니다. 즉 ‘악한 세대에서 건져 주셨다’는 것은 단지 ‘그곳에서 구출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우리를 선택하셨고, 구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KJV 성경’은 이 단어를 ‘인도한다’로 번역했습니다. 즉 “주님께서 이 악한 세상에서 우리를 인도하신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부른 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환경에서도 심지어 풍토병에 걸려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에서도 그 부르심에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구원받은 믿음의 성도는 바로 나는 사명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믿음의 변질을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거짓 교사들에게 믿음이 흔들리고 변질된 갈라디아 지역의 성도들을 이렇게 책망합니다.

“여러분을 [그리스도의]은혜 안으로 불러 주신 분에게서, 여러분이 그렇게도 빨리 떠나 다른 복음으로 넘어가는 데는,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빨리 떠나”라는 뜻은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을 “즉시 버렸다”는 말입니다. 그 삶에서 복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떠나”라는 단어는 현재 시제로, 그 의미는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의 잘못된 신앙행태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에서 떠났을 뿐 아니라, 거짓 교사들에게 빠져 그 거짓 진리를 계속해서 따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서도 끝임없이 복음을 벗어나고, 진리를 배반하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것이 곧 ‘죄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안에 성령충만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닌 성령의 충만함으로,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과 노력으로는 이 죄와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판 ‘가롯유다’를 보면, 처음에는 그의 마음에 사탄이 예수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넣었다라고 말하지만, 나중에는 그 마음에 사탄이 들어갔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고 십자가를 붙들며 살아가지 않는다면, 그 마음에 사탄이 주는 죄와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언제나 깨어서 기도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르는 것만이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길인 것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본문 ‘1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습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온 ‘율법주의자들’은 참된 복음의 진리인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전했습니다. 거기에 할례와 율법을 함께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이란 그 큰 은혜는 그렇게 쉽게 얻은 것이 아니다”라며 복음의 진리보다는 자신들의 생각과 전통과 관습을 강조하며, 세상의 시선, 즉 유대인들의 눈을 더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지금 누구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살고 있느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묻고 있는 말씀입니다.

과연 우리는 오늘 누구를 기쁘게 하며 살아가길 원하십니까?

본문에서 ‘기쁘다’는 단어는 “만족시킨다. 함께한다. 복종한다, 따라간다”는 뜻입니다. 즉 ‘사람을 기쁘게 한다’는 것은 “세상의 만족을 위해, 함께 하고, 복종하며, 따르는 삶”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이처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아니다’라는 의미 안에는 ‘거짓이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사람을 기쁘게 하며, 세상의 만족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그리스도 종이 아니다. 그 ‘믿음은 거짓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5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바로 구원받은 믿음의 백성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들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자임을 기억하고, 성령 충만 가운데 복음을 붙들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기도 제목: 나의 어떤 삶의 상황 속에서도 오직 십자가의 복음을 붙들고 담대한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그곳에 보내셨다는 사명을 잊지 않게 하소서. 그래서 성령님께서 나를 통해 그 곳을, 그 사람을 변화시켜 나시기고, 하나님이 영광이 드러나는 축복의 사람과 장소가 되게 하소서.

중보 제목: (화: 목장/VIP) 목원들의 삶속에 있는 영적 싸움과 삶의 문제 가운데 평안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반드시 승리하게 하소서. 목원들의 가정 중에 믿지 않는 가족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하시고, 주변의 VIP들이 목장과 교회에 함께할 수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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