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그리스도 JUSES CHRIST 47. 요 20:1-10 "빈무덤 앞의 믿음"
2024.03.01 08:27
예수인교회
예수그리스도 JUSES CHRIST 47 요 20:1-10 빈무덤 앞의 믿음 찬269/통 211 그 참혹한 십자가에
그동안 제자들은 예수님께 부활에 대해 듣고 배웠음에도 막상 마주한 빈 무덤 앞에서 십자가 못지 않은 충격과 두려움에 빠집니다. 왜그랬을까요? 가끔 인생에 기도했던 것과 다른 결과의 빈 무덤을 만날때가 있습니다. 비어있는 재정, 비어있는 관계, 비어있는 상황을 보면 약속의 말씀보다 두려움이 먼저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빈 무덤 앞에서의 여러 믿음을 통해 부활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첫째 빈 무덤 앞에서 “은혜 받은 자의 믿음” 1-2
요한은 예수님의 첫번째 부활의 아침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요20:1 주간의 첫 날 이른 새벽에 막달라 사람 마리아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 어귀를 막은 돌이 이미 옮겨져 있었다. 이날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인류 첫번째 주일입니다. 이때 이른 새벽부터 주일의 문을 연 사람이 수제자 베드로나 요한이 아니라 일곱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 였다고 기록합니다. 그녀는 시신에 향료를 바르는 유대 문화를 위해 안식일이 끝나자 마자 예수님의 무덤 앞에 온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당시 시간의 개념은 동이 틀때 하루가 시작됩니다. 마리아는 정확히 동틀때 무덤에 도착하기 위해서 한숨도 안자고 나온것입니다. 그만큼 주님을 열렬히 사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했던 마리아도 빈 무덤 앞에 큰 충격에 빠집니다.(2절) 분명히 닫혀 있어야 할 무덤이 열려 있고 예수님의 시신마저 사라진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마 28장에 기록되었듯 마리아가 도착하기 바로 전, 지진과 함께 무덤이 열렸고 병사들은 도망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전후 사정을 모르는 마리아는 충격에 빠진 것입니다. 우리도 이럴때가 있습니다. 평상시 많은 은혜와 기적의 간증이 있음에도 막상 내가 기도했던 것과 다른 빈무덤의 결과를 볼때 어떻습니까? “나와야 할 성적이 나오지 않고, 재정이, 사람이, 질병이 낫지 않고, 해결이 되지 않을때” 우리의 믿음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집니다. 그런데 사실 마리아가 성급히 무덤을 떠나지 않고 면밀히 살펴봤다면, 그녀는 빈무덤이 아니라 부활한 예수님을 발견했을 것입니다.(11절) 우리도 갑자기 마주한 빈무덤 때문에 성급히 낙심하고 불평할때가 많습니다. 그때 불평보다 감사를 고백해 보십시오. 감사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가령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짜증날때 “캘리포니아에 필요한 비를 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면 “주님의 은혜”가 보입니다. 차가 막히는 답답한 상황에서도 “여유있게 운전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백하면 “주님이 주시는 여유”가 보입니다. 빈무덤 앞에서 불평이 아니라 감사할때 부활한 주님이 보일 것입니다.
둘째 빈무덤 앞에서 “주저하는 믿음, 달려가는 믿음” 3-6
3절에 마리아의 이야기를 들은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쏜살처럼 달려옵니다. 여기서 다른 제자란 요한을 말합니다. 이때 요한과 베드로의 다른 믿음을 봅니다. 요한은 무덤에 먼저 도착합니다. 그런데 그는 무덤앞에 주저합니다. 이것에 대해 학자들은 길을 알고 있었던 그가 먼저 도착했지만, 베드로에게 양보했다는 학자도 있고, 죽은 주님을 만지면 부정하여 악영향을 미칠까 두려워 했다는 학자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주님의 부활앞에 주저했다는 점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2절에서 그가 자신을 소개할때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란 표현입니다. 그토록 주님이 사랑했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 해로움과 헌신이 요구될때는 주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상입니다. 그에 반해 베드로는 도착하자 마자 곧바로 무덤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참 감동적입니다. 베드로는 몇일전 계집종의 고발로 십자가에서 예수를 3번이나 저주 했고 도망쳤습니다. 예수님을 볼 낮짝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문제라면 주저함 없이 달려 들어간것입니다. 참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아무리 실수해도 돌이키고 돌아오길 원하지, 부끄러워서 도망치길 원하지 않습니다. 사순절에 우리는 이 믿음에 주목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베드로처럼 십자가를 마주 할 때마다 도망치는 사람이고 늘 실수하여 죄를 짖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의 깨달음과 음성이 들릴때, 요한처럼 주저 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 주님께 달려가 보십시오. 기뻐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셋째 빈 무덤 앞에서 “보이는 것만 믿는 믿음” 7-10
요한은 빈무덤 안의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는데, 여기서 예수가 부활한 중요한 증거 두가지를 기록합니다. 하나는 “무덤안의 삼배와 수건”입니다. 6-7절을 보면 시신을 감쌋던 삼배(세마포)와 머리 두건이 가지런히 따로 개여 있었습니다. 새번역이 원어를 잘 해석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일어나 두건과 몸의 세마포를 풀러서 개어 놓은 것입니다. 당시 무덤가에는 귀중품을 훔쳐가는 강도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만약 강도가 시신을 훔쳐갔다면 삼배와 두건이 흐트려져 있거나 값나가는 세마포를 두고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즉 이것은 예수가 스스로 부활했다는 정확한 증거인 것입니다. 또 다른 증거는 “성경 말씀”입니다.9절에 “아직도 그들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반드시 살아나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수없이 자신의 십자와 부활을 가르쳤습니다. 요한도 이것을 후에 깨닫고 증거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들은 말씀이 현실속에 적용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린 이럴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느 성도가 목장에서 가슴 통증을 호소해서 함께 기도했는데, 그 주에 가슴통증이 싹 사라진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정작 본인은 자기가 운동을 해서 사라졌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대해 주님이 응답했다는 걸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주님은 말씀한 데로 우리 삶에 많은 기적을 행해주시지만 정작 우리가 적용하지 못할때가 많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런 믿음을 8절 후반에 “보고 믿었다.”고 정의 합니다. “본것만 믿는 사람”이란 것입니다. 이런 신앙은 주님의 부활앞에서도 어떻게 될까요? 10절입니다. 요20:10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기적의 현장에서 옛 불신의 삶으로 돌아간 것을 말합니다.
한 신학자는 오늘날 제 3세계 국가에서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지만 선진국에서는 기적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기적이 안 일어나는게 아니라 우리가 기적을 믿지 않는 것이다”라고 정의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기적의 현장에 들어가지 않고, 기적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며, 기적의 사역에 동참하지 않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여러분이 부활의 기적을 볼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빈무덤 앞에서 감사해 보십시오. 그리고 빈무덤 앞에서 주저하지 말고 뛰어들어가 보십시오. 그리고 다시 빈무덤 같은 가정과 일터를 보더라도 약속의 말씀을 떠올려 보십시오. 여러분은 빈무덤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지금도 함께 하시는 예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기도제목: 오늘도 내 인생의 빈무덤을 보며 나의 신앙을 돌아보게 하소서, 빈무덤이 나에게 증거가 되게 하시고 빈무덤이 나에게 믿음의 확신이 되게 하소서,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행하며 말씀의 부활을 꿈꾸게 하소서
중보제목: (선교지, 모든 예배/주일/새벽/목장, 예삶아카데믹, 서번트모임, 사순절을 위해) 16곳의 선교지가 잘 정리되고 선교지마다 필요들이 채워지게 하소서, 이번주 모든 예배를 지켜주시고 진행되는 예삶과 모든 모임과 사순절의 은혜가 충만케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