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JESUE CHRIST 44. 요 19: 1-16, 누가 십자가에 못 박았나?

2024.02.27 10:22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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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9: 1-16, 누가 십자가에 못 박았나? 찬 303장(날 위하여 십자가에)

본문 말씀은 예수님을 재판하는 ‘빌라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비롯해 18장부터 보면 ‘빌라도’는 세 번에 걸쳐 “예수님께서 죄가 없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손으로 예수님을 직접 죽이려하지 않으려고 예수님을 채찍질 하고, 머리에 가시나무로 만든 왕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혀 조롱하고, 뺨을 때리며 모욕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매우 끔찍한 고통을 주는 형벌이었습니다.

‘빌라도’는 ‘5절’에 유대 지도자들에게 그 모진 채찍질을 당하고, 죽음 직전에 이른 예수님을 보이면서, “이 정도면 너희가 원하는 대로 예수도 며칠 지나면 죽을 것이고, 나도 나름대로 직접 예수를 죽이지 않았으니, 이정도면 너희도 만족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유대 지도자들이 더욱 악했던 것은 그들은 예수님이 그냥 죽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들이 아니다’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를 받은 자”라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예수님을 그 저주의 나무, 바로 ‘십자가에 죽이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죽음’으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저주받은 자라는 자신들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자신의 권세와 자리가 유지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빌라도’ 역시 자신의 권력과 부귀영화를 지키기 위해, 예수께서 죄가 없으신 것을 알면서도, 유대 지도자들의 압력에 굴복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빌라도’와 유대 지도자들을 보며,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 삶의 평안과 안락과 돈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외면하는 삶 또 지금 나의 신앙생활과 믿음을 볼 때, 과연 내가 ‘빌라도’라면 ‘나는 세상의 권세와 명예와 부귀를 포기하며 끝까지 예수님을 지킬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세상의 것을 포기 못하고 ’빌라도‘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나는 끝까지 예수님을 지키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지금 나의 삶과 신앙의 모습을 보면 우리 또한 ‘빌라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 마음에 다가온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11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에 두려움에 떨던 ‘빌라도’가 예수님께서 묻습니다.

‘9절’에 “당신은 어디서 왔소?”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자, 더 불안했던 ‘빌라도’가 ‘10절’“나에게 말을 하지 않을 작정이오? 나에게는 당신을 놓아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처형할 권한도 있다는 것을 모르시오?”라고 말하면 자신의 권세를 앞세워 말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1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위에서 주지 않으셨더라면, 당신에게는 나를 어찌할 아무런 권한도 없을 것이오. 그러므로 나를 당신에게 넘겨준 사람의 죄는 더 크다 할 것이오.”

이 말은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이 말씀이 ‘본디오 빌라도’가 죄가 없고, 유대인 지도자들이 죄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결국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했기 때문에 그들의 죄는 더 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얼마든지 그 십자가 고난을 못하게도 막으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죽이려고 해도 하나님이 보호하시면 누구도 손을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11절’ 말씀은 그 십자가의 고난을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는 겁니다.

왜 그러셨겠습니까?

우리를 죄와 저주에서 온전히 건지시는 길이 그 십자가 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그 엄청나고 놀라운 사랑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놀라운 사실을 믿기만 하면, 진짜 믿기만 하면 우리의 삶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형편이 지금 어떤 처지에 있든, 얼마나 어려운 처지에 있든, 중요한 것은 지금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십자가’는 이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십자가’는 그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강력한 ’하나님의 외침’인 것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이 음성을 들을 수만 있다면, 회복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 어떤 자리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살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진짜 알게 되면 바뀝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이것을 깨닫고, 진짜 믿어지면 우리가 감당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사랑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그 비참함에 얼굴을 돌리실 수밖에 없었던 그 하나님의 절절한 심정이 어떠셨겠습니까?

또 우리를 위해 그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며 세상을 떠나셨던 예수님의 그 절절한 심정은 어떠셨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면서 너무 무감각, 무감동, 무표정으로 바라봅니다.

사순절을 지내면서도, 아무런 감격이나 은혜가 없이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무감각, 무감동으로 느끼기 때문에 그 십자가의 사랑이 나의 삶에 아무런 능력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 두려움 중에, 아픔 중에 아무런 응답도 능력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십자가의 은혜를 아무 느낌이나 감격, 아니 충격적인 은혜가 없이 믿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작 왓츠’라는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도의 삶은 날마다 예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십자가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때, 우리의 가슴을 다시 뛰게 할 때, 그 십자가의 능력이 우리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켜 나갈 것입니다.

기도제목: 주님! 제 믿음의 눈이 열리기 원합니다. 십자가의 주님의 사랑이 회복되게 하셔서 그 십자가의 사랑이 내 삶을 완전히 바뀌게 하여 주옵소서.

중보 제목: (화: 목장/VIP) 목원들의 삶속에 있는 영적 싸움과 삶의 문제 가운데 평안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반드시 승리하게 하소서. 목원들의 가정 중에 믿지 않는 가족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하시고, 주변의 VIP들이 목장과 교회에 함께할 수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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