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JESUS CHRIST 43 요18:28-40 죄인의 민낯

2024.02.23 04:28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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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JESUS CHRIST 43 요18:28-40 죄인의 민낯  찬151 만왕의 왕 내 주께서

민낮이란? 가리운게 벗겨진 실체를 말합니다. 17장까지 예수님의 기도가 마치자 마자 곧바로 18장부터 예수님은 대제사장과 일행들에게 붙잡혀 밤새 매질을 당한 후 빌라도의 관저에 끌려옵니다. 이때 이들의 감춰진 죄의 민낮이 드러납니다. 그 3가지 민낯을 살펴봅시다. 

첫째 죄인의 민낮은 “불의한 자의 민낯”입니다. 28-32

 “불의한 자”란 “알면서도 의롭지 못한 죄를 짖는 자”를 말합니다. 가야바와 그 일행은 예수가 “하나님을 모욕했다”는 명분으로 그를 붙잡았지만, 사실 당시 기득권이던 자신들을 모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한은 이들이 얼마나 이중적인지 28절에 고발합니다. 요 18:28 사람들이 가야바의 집에서 총독 관저로 예수를 끌고 갔다.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그들은 몸을 더럽히지 않고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하여 관저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가야바와 그 일행은 빌라도의 관저에 예수를 넣고는 자기들은 들어가지 않습니다. 왜냐면? 더러운 이방인의 집에 들어 갈 수 없는 “정결법”을 따른 것입니다. 마치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기를 주저했던 것과 같습니다. 요한은 재미있는 장면을 풍자한 것입니다. 죄없는 자를 밤새 매질하고 죽이려는 엄청난 악을 행하는 자들이 “거룩한 척”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령 주일에 교회오면서 주차장에서 대판 싸우고 예배당에 거룩히 앉아 있는 우리의 이중성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불의는 더 커집니다. 29절부터 31절을 보면 그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를 악한일을 행한 “행악자”로 소개합니다. 이것에 대해 빌라도는 “그건 너희 유대법으로 처리해라” 했더니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습니다.” 말합니다. 이 말은 당시 로마의 식민지법으로는 사람을 죽일 수 없는 걸 말함과 동시에 이 사람은 당장 죽여야 할 정도의 대역죄인인걸 말합니다. 당시 로마가 가장 중죄로 여기는 것은 “황제에 대한 반역”이었습니다. 이 죄는 최고 형벌인 십자가에 매달아 모든 사람에게 본보기가 되게 했습니다. 말도 안되는 억울하고 답답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것을 풍자합니다. 요18:32 이렇게 하여,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인가를 암시하여 주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즉 이렇게 억울한 상황이 사실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참 위로가 됩니다. 신앙생활하다 보면 누명을 입거나, 억울한 상황에 처할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따라서 해보십시오. 하나님은 다 계획이 있다.” 다윗이 그랬고, 다니엘과 에스더,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그랬습니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걸 믿고 낙심하지 마시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둘째 죄인의 민낯은 “무지한 자의 민낮”입니다.  33-38

  무지란 “아무것도 모르고 짓는 죄”를 말합니다. 우린 가끔 “전 아무것도 모르고 했어요”라고 말할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것도 죄라고 정의합니다. 왜일까요? 빌라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33에 빌라도는 관저로 돌아와 예수를 심문하는데 33절과 37절에 “당신은 유대인의 왕이오”라고 2번 질문합니다. 이것은 빌라도가 다른 건 관심없고 오직 예수가 반역죄가 맞는지만 빨리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34절에 예수님은 중요한 말을 합니다. 그것은 당신의 생각에서 나온겁니까? 아니면 사람들이 말한걸 전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빌라도에게 기회를 주시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가령 신앙생활을 단순히 의미 없이 하는 신자에게 “당신은 진심으로 예수를 왕으로 모시고 계십니까? 아니면 “그저 주변사람 때문에 교회를 나옵니까?” 이런 질문입니다. 빌라도 당신은 진심으로 나를 왕으로 믿고 있소?” 이것은 무지한 자에게 주는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35절에 “난 유대사람도 아니고 그저 당신 동족들이 넘겨준 것이니 죄나 빨리 말하시오” 그는 기회를 날립니다. 우리의 신앙이 잘못된 것을 쫓아갈때 주님은 자꾸 본질을 생각하게 하실때가 있습니다. 그게 너의 본심이냐 아니면 사람 따라가고 있냐?” 여러분 무지속에 깨어있길 바랍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빌라도에게 한번 더 기회를 줍니다. 36절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나의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나의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오. 그러나 사실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무지한 자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려줍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37절에 “…그러면 당신은 왕이오…”. 이것은 “귀찮아 빨리 내가 알고 싶은 것만 말해” 이겁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하며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무지할때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 나라는 커녕 내가정, 내가계, 내나라가 더 급합니다. 주님의 뜻보다 내 소원이 먼저가 됩니다.

   여러분 영적 무지가 왜 죄가 되는지 보십시오. 무지한 자들에게도 수 없는 앎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런데 자신의 의지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지했던 빌라도는 영영 사도신경에서 죄인으로 낙인이 찍히게 된 것입니다. 바라기는 사순절에 우리의 신앙이 점검되고 중심이 회복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모든 죄의 결과 39-40

이런 불의한 자들과 무지한 자의 결과를 보십시오. 39절에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죄명을 찿지 못하자 그를 놓아주려고 모든 유대인들에게 “무죄”로 판결합니다. 그리고 마치 우리나라 “광복절 특사”처럼 유월절마다 죄수 한명씩 석방해 주는 관례로 예수를 풀어주려 합니다. 그랬더니 유대인들이 외칩니다. 40절에 “…그 사람이 아니오. 바라바를 놓아주시오…” 요한은 여기에 한마디를 남깁니다. 바라바는 강도였다.” 즉 빌라도와 유대인들은 죄에 눈이 멀어서 선을 행 할 수 있는 순간에 최악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말이 안되지만 우리는 종종 이런 장면을 봅니다. 어느 교회에서 한 장로님이 교회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이유인즉 자신이 당회에서 자주 큰소리로 소란을 피워서 당회에서 정직을 준 것입니다. 이것에 화가 나서 소송을 걸었습니다. 큰 교회였는데 성도들이 시험들어서 약200여명이 떠났답니다. 어떤 분은 교회에서 불미스런 일이 벌어지자 자기가 그동안 헌금한 돈이 아깝다고 환불을 요청했습니다. 이해는 되지만 헌금에 대한 이분의 생각은 잘못됬습니다. 헌금이란 어떤 자선기관에 후원하는게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 의미가 퇴색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예수 대신 바라바를 달라고 외쳤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도 곰곰히 민낯을 까보면 예수 대신 어처구니 없는 바라바를 찿을 때가 많습니다. 예수 대신 물질을, 예수 대신 건강을, 예수 대신 문제해결을, 예수 대신 인생 성공을 찿고 있는 나를 보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민낯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순절은 우리의 다양한 민낯을 마주하는 절기입니다. 이걸 통해 나의 숨겨졌던 죄가 들춰지고 무지하고 외면했던 신앙의 본질인 십자가를 마주하게 됩니다. 바라기는 이십자가를 피하거나 감추는게 아니라 이 십자가에서 나는 죽고 예수로 부활하는 예수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사순절을 통과하며 나의 민낯을 보게 하시고 부끄럽지만 돌이켜 신앙의 부활을 경험하게 하소서, 예수외에 바라바를 원하고 하나님나라보다 나의 나라가 시급한 우리를 용서하여 주소서

중보제목: (금: 선교지/모든 예배/ 초원모임/예삶아카데믹) 16곳의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에게 영적 부흥을 주소서, 이번주 주일/새벽/목장예배속에 십자가와 부활을 깊이 경험하게 하소서, 이번주 초원모임과 예삶아카데믹을 통해 신앙의 성장과 부흥을 경험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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