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JESUE CHRIST 42. 요 18: 1-27, 주님! 실패했습니다.
2024.02.22 10:00
예수인교회
요 18: 1-27, 주님! 실패했습니다. 찬 338장(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요한복음 18장’부터는 ‘예수님의 고난’이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 시작으로 ‘예수님께서 잡히시는 말씀’인데,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에는 있는 ‘예수님의 땀이 피처럼 비 오듯이 흘리시는 기도의 장면’이나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예수님의 번민 또는 아픔과 같은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신성을 말씀하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8장은 메시아의 고난을 예고한 시편 27편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말씀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런 예수님의 신적인 모습을 통해, 예수님의 그 고난조차도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았다면 이뤄질 수 없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앞으로 우리가 살펴볼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시면서 그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가시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마음 아픈 일들을 겪게 됩니다.
그 중의 하나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이 그렇게 사랑하셨던 제자 ‘베드로’로부터 세 번이나 부인을 당하신 일입니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저주까지 받으신 일입니다.
이 일로 예수님께서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베드로’ 역시 많이 고통스러웠을 거라는 생각됩니다. 그렇게 자신도 순간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 모를 만큼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얼떨결에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해놓고, 그러고는 자기 자신의 그 모습이 얼마나 비참했겠습니까? 아마도 자살한 ‘가롯 유다’처럼,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비참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베드로’에게도 고통스러운 실패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이며 예수님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그런 ‘베드로’도 두려운 일이 닥칠 때 예수님을 부인할 수 있었다면, 나 같으면 어땠을까?
그런데 이 말씀에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게 끝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부정했던 그 일이 ‘베드로’의 ‘끝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의 실패의 이야기는 정말 끔찍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이처럼 아프게 할 일은 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훗날 그는 그 실패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주님의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그 실패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누가복음 22장 61절’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을 때, 예수님이 제사장으로부터 심문을 받으시다가 ‘베드로’를 돌아보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마지막에 저주까지 하는 바로 그 순간에 돌아보셨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그 말을 다 들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순간 ‘베드로’와 눈이 마주치게 되셨는데, 그 때 예수님의 눈빛은 어떤 눈이었을까요? “베드로, 그럴 주는 알았지만, 너도 나를 배신하구나!, 내가 너를 얼마나 아꼈는데 네가 이럴 수 있냐?” 그러셨을 까요?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자신을 세 번 부인할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셨고, 그런 베드로를 위해 기도까지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눈으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베드로야! 괜찮다! 걱정하지마라! 너무 낙심하지마라! 나는 너를 여전히 변함없이 사랑한다” 틀림없이 그러셨을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이 기록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사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를 어떻게 평가를 해야 할지 난감한 이야기지만, 초대교회 당시 때, 성도들은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고, 사도 중에 사도입니다. 그런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이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서 엄청난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예수를 믿으면 순교를 각오해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에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끝까지 담대한 믿음의 고백을 했겠습니까? 그러나 반대로 흔들리는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 고난 앞에, 핍박 앞에 예수님을 부인하고 돌아선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고난 때문에 예수님을 배반하고 돌아선 후, 후회를 하는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베드로’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가는 길에서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는데, 그렇다면 나도 다시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라며 용기를 얻었던 것입니다.
또 그 고난을 견디며 믿음을 지키고 있던 초대교회 성도들 역시 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보며, 그들을 정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도 지금 위대한 사도가 된 것처럼 그들도 언젠가는 반드시 주님께서 그들도 돌이키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게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신앙의 모습이었습니다.
끝까지 용서하고, 끝까지 사랑하고, 언제나 하나되고, 자기 자신의 부족함에도 낙심하고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왜 복음서에 제자들의 실패 이야기가 그대로 다 기록되었을까요?
그게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형편없던 제자들, 또 우리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변함없는 사랑이 임하시고, 성령이 임하심으로 완전히 새롭게 달라진 것입니다. 그 실패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아무리 믿음의 실패를 했어도,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39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주신 사람을 내가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이다.”
우리 주님은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으신다고 말씀합니다. 포기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부인해도 좋다, 저주해도 좋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네가 실패하고 좌절에 빠질 때 그때 나를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우리를 도저히 다시 일어설 수 없습니다. 영원한 실패자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실패의 상황에서도 여전히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주님이 우리를 다시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의 실패의 이야기는 이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한 사람이라고 예수님이 다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일으키시는 사람은 바로 예수의 십자가를 붙들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 십자가를 붙들고 다시 일어나,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주님을 위해서 순교한 ‘베드로’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바꾸십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함께하시고, 내가 그 주님을 붙들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내 가정은 변화될 것입니다. 내 직장과 사업장 그리고 목장과 우리 교회에 놀라운 주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기도제목: 내 삶의 실패 속에서도 주님과 함께하게 하소서. 내 안에 있는 ‘안 된다’는 부정과 실패의 마음을 버리고, 어떤 실패와 환경에서도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하심과 약속을 붙들어 반드시 내 가정, 직장과 사업장, 목장과 교회를 변화시켜 나가게 하소서.
중보기도(목: 지도자들): 담임목사님과 목회자들의 성령충만으로 사명 감당을 하게하소서. 교회를 섬기는 제직/서번트/팀장/목자/봉사자들의 섬김 속에 은혜와 기쁨이 가득하게 하소서. 이 땅의 위정자들이 하나님의 공의 가운데 서있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