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JESUE CHRIST 32, 요 13: 1-20,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2024.02.06 08:53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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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3: 1-20,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찬 304장(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본문 1절’을 보면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보면, “어떻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사랑하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본문 1절에 “유월절 전”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뜻은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기 바로 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는 장면에서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정말 한심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건조하고 사막 기후의 날씨라 샌들을 신고 밖에 다니면, 발이 금세 더러워집니다. 그래서 집에 들어오면, 그 집의 가장 낮은 하인이 나와서 발을 씻겨줍니다. 그러나 그 집에 하인이 없거나, 그 일을 할 사람이 없으면, 그 집에 들어간 무리 중에 가장 낮은 사람이 발을 씻겨주게 됩니다.

그런데 복음서를 보면, 오늘 본문의 말씀이 있기 전, 제자들 사이에는 “누가 더 높으냐?”는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마지막 만찬’을 위해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는데, 그 누구도 자신을 낮추며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더구나 그 자리에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길 ‘가룟 유다’까지 있었습니다. 바로 이 상황에 오늘 본문의 모습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셨겠습니까? 이제 몇 시간이 지나면 그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셔야 하는데, 믿었던 제자들마저 자신들의 유익만을 바라보고 싸우고 있으니, 그 예수님의 아픈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그 상황에서, 그 순간에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여기서 ‘끝까지’라는 단어의 뜻은 ‘시간적인 끝’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공간, 상황의 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것은, ‘어떤 상황, 어떤 환경, 우리의 어떤 형편에서도 변함없이 영원히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을 배반한 ‘가룟 유다’까지도 예수님께서는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여기서 ‘본’이라는 뜻은 ‘모형, 본보기, 증서, 증거’라는 뜻으로 ‘법적인 증거’를 의미합니다. 또 ‘보여 준다’는 뜻은 ‘주다, 넘겨주다, 인계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본을 보였다’는 뜻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시고 증거가 되어 이제는 우리에게 그것을 맡겨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사랑을 할 수 있겠습니까?

조금이나마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사랑을 닮을 수 있겠습니까?

첫 번째로 ‘나의 부르심’을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본문 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분명한 이유와 사명을 아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은 성도 역시 이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왜 내게 이 가정을 주셨는지, 왜 이 가정에 남편과 아내, 부모 그리고 자녀를 주셨는지 분명히 하나님의 부르심의 이유를 알 때, 우리는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황과 환경이 바뀐다고 우리가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황과 환경이 아니라 내 생각, 내 관점이 바뀌어야 합니다. 바로 부르심을 깨달을 때, 우리의 삶을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 예수님의 사랑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물질의 문제가 해결되고, 남편과 아내와 자녀의 문제와 단점이 고쳐진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 삶에 있는 ‘주님의 부르심’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가정에 문제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이 가정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회복시키기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때, 우리의 가정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회복되어질 것입니다.

두 번째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기 위해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쉽게 말해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다.”

예수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상징적인 의미는 “결단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의 믿음이 사랑이 온전히 회복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몰라서 못하는 것’보다는 ‘알면서도 안 하는 것’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를 일어나는 결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말씀을 보고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없기 때문에, 피곤하기 때문에 결단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그럼에도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힘이 들어도 그럼에도 말씀 중심, 시간이 없어서도 그럼에도 기도의 삶을 사는 것이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결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한 결단이 아니라 삶의 작은 것부터 시작되는 결단입니다. 바쁜 중에도 잠시라도 기도하고, 잠시라고 말씀을 묵상하고, 잠시라도 주님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나눌 수 있는 결단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 작은 결단들을 통해 주님께서는 우리 가정을 변화시키시고, 우리의 삶과 목장과 교회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7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그대로 하면, 복이 있다.”

기도제목: 삶의 모든 상황에서 문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선한 뜻을 이루고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결단하고 섬기는 삶을 살게 하소서. 그래서 그 사랑과 은혜가 나를 통해 주님의 사랑이 내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 그리고 목장과 교회에 흘러가게 하소서.

중보 제목: (화: 목장/VIP) 목원들의 삶속에 있는 영적 싸움과 삶의 문제 가운데 평안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반드시 승리하게 하소서. 목원들의 가정 중에 믿지 않는 가족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하시고, 주변의 VIP들이 목장과 교회에 함께할 수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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