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JESUE CHRIST 30. 요 12: 20-36, 하나님의 영광, 세상의 영광

2024.01.31 23:42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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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2: 20-36, 하나님의 영광, 세상의 영광, 찬 448장(주님 가신 길을 따라)

본문 ‘23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그런데 당시 상황에서 이 말씀은 오해하기 딱 좋은 표현입니다. 우리는 이 ‘영광’의 의미가 ‘죽음의 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십자가의 길’임을 알고 있지만, 당시 제자들과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들으며, 아마도 “아! 예수님께서 이제 본격적으로 왕이 되고자 하시는 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장면을 보면,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실 때, ‘12장 13,14절’에 백성들이 종료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에게 복이 있기를! 이스라엘의 왕에게 복이 있기를”하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장면은 마치 왕의 행렬과 같았습니다. 더욱이 ‘19절’을 보면 예수님을 죽이려 하던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틀렸소, 보시오, 온 세상이 그를 따라갔소” “우리가 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20-22절’을 보면, 이제는 이스라엘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리스 사람, 즉 당시 헬라지역의 이방 사람들까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찾아옵니다.

그런 상황가운데 예수님께서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고 하시니, 제자들과 주변의 사람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세상적인 영광을 받으시는 구나”라고 착각하기 딱 좋은 장면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만, 예수님의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는 말씀은 이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3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자기가 당하실 죽음이 어떠한 것인지를 암시하려고 하신 말씀이다.”

바로 ‘인자의 영광’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십자가의 영광’을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4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여기서 ‘열매’라는 단어의 또 다른 뜻은 ‘결과, 성취’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3절’에 예수님께서 “영광 받을 때”라고 말씀하실 때, 이 “때”라는 단어는 ‘단순한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라 ‘특정한 시간’, ‘정해진 시간’을 의미하는 말씀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시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시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의 상식과 지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의 높임을 받고, 칭송을 받는 것이 영광이지, 어떻게 핍박을 받고, 조롱을 받으며, 심지어 그 비참한 십자가의 죽음이 영광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역설’입니다.

세상의 ‘조롱거리’, ‘고난’과 ‘고통’과 ‘죽음의 상징’인 십자가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과 ‘감격’과 ‘은혜의 십자가’로 바뀌게 된 것이 바로 ‘복음의 역설’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이런 ‘십자가의 영광’의 말씀은 알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삶에서는 그것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 세상에서 주는 영광을 더 바라보고 사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김구원 교수님’이라고 ‘개신대학교’ 구약학 교수님이 계신데 이 분의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세상과 사탄은 자꾸 우리를 작게 만들려고 한다. 겨우 나 한 사람 먹고 살고, 내 한 가족 먹여 살리는 삶이 우리의 목표가 되게끔 세뇌한다. 그러나 이런 일 인분의 삶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은 복음이 가르치는 십자가의 역설을 절대로 실천하며 살 수 없으며, 또 그 십자가의 영광과 능력도 결코 맛볼 수 없다.

우리의 삶에 참된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이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십자가의 역설’, 하나님의 영광을 믿지 못하고 세상의 영광만을 바라보고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십자가가 아니라 내 삶, 내 가족, 내가 잘되는 것이 신앙의 우선순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끝임 없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세상의 영광을 바라보며 살아라”

성경을 보면 ‘세상의 영광’을 기대하고 바라보며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향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열광하던 그 사람들이 나중에 그 영광이 자신들이 기대하던, 세상의 영광이 아니니까 어떻게 변합니까?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를 죽여라’, ‘십자가에 못 박아라’고 외치는 폭도로 변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세상의 영광’, ‘나 중심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본문 2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여기서 “자기의 목숨을 미워한다”라고 할 때, ‘미워한다’는 뜻은 ‘집착하지 않는다, 집중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삶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삶의 전부인 것처럼, 모두인 것처럼 살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생명’이란 헬라어 단어와 뒤에 ‘영생’, ‘영원한 생명’이라는 할 때 ‘생명’이라는 단어는 다른 단어입니다. 앞의 ‘생명’은 ‘육체적인 생명’, ‘세상에서의 생명’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생명’은 ‘영원한 생명, 참된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25절’의 말씀은 “네가 육체적인 생명, 세상의 것을 사랑하면 그 육체적인 것도 잃어버릴 것이요, 육체적인 생명의 것, 세상의 것을 미워하면, 집착하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 참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뜻은 “예수를 따르는 사람, 예수가 계신 곳에 있는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그런데 ‘본문 26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를 섬기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있는 곳에는, 나를 섬기는 사람도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높여주실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나를 섬기겠다, 나를 믿겠다’라고 하는 사람은 ‘내가 있는 곳으로 오라’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이 어디계십니까?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곳에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어디에 있어야 하겠습니까?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주님이 계신 ‘십자가의 사명과 영광’의 자리입니다.

오늘 ‘26절’의 말씀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 비록 그곳이 십자가일지라도 그곳에 있는 성도를 하나님께서는 높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려놓음’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성도에게 자신의 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삶을 단념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귀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십자가의 삶을 붙드는 것은 세상의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붙잡는 것입니다.

기도제목: 내 신앙생활이 세상의 영광만을 구하는 삶이 아니라 십자가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십자가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높이시는 영광의 삶을 살게 하소서. 우리 가정, 남편과 아내와 자녀들이 어떤 삶의 환경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십자가의 영광을 바라보고 그 문제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중보기도(목: 지도자들): 담임목사님과 목회자들의 성령충만으로 사명 감당을 하게하소서. 교회를 섬기는 제직/서번트/팀장/목자/봉사자들의 섬김 속에 은혜와 기쁨이 가득하게 하소서. 이 땅의 위정자들이 하나님의 공의 가운데 서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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