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JESUE CHRIST 24. 요 9:1-41, 네가 인자를 믿느냐?

2024.01.23 09:54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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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9:1-41, 네가 인자를 믿느냐?, 찬 435장(나의 영원하신 기업)

‘요한복음 9장’은 예수님의 7가지 표적 중 6번째 표적으로 이 표적은 다른 표적들과 다르게 표적의 사건 이후에 일어났던 일들을 자세히 설명함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는 충분히 이 눈 먼 자를 말씀으로도 고치실 수도 있었는데, 굳이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들어 그 눈에 바르고,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게 하신 것입니다.

특히 다른 복음서인 ‘누가복음 18장’을 보면 한 눈 먼 자가 구걸을 하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소리를 지르며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며 예수님께 나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말씀으로 그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사건의 차이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그들의 상황과 형편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기적을 나타내시고, 표적을 나타내시는 이유는 단순히 우리의 육체적 문제, 삶의 문제만을 해결해 주시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 기적을 통해 삶의 문제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지, 참된 구주가 누구신지를 알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눈 먼 자를 보면, 그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자신에게 조용하라고 꾸짖는 사람들의 비난에도 끝까지 예수님을 붙잡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눈 먼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자기 옆으로, 바로 옆으로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자신 옆을 지나가시면서 사람들과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도 듣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을 향해 한마디 말도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그는 자신의 인생을 포기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인생은 아무런 희망도, 바램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1절’ “예수께서 가시다가,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날 때부터’라는 뜻은 ‘만들어 질 때부터’라는 뜻으로 이것은 ‘운명’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2절’에 또 이렇게 말씀합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선생님,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이 의미는 이 질병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눈 먼 사람도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내 운명이다. 이 고통스러운 삶, 절망의 삶에서 나는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우리 주님이 먼저 다가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절망 가운데 있던 그에게 ‘당장 눈을 뜨라’고 말씀하지 않고, 그에게 맞는 방법, 단순히 육체적인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영적인 구원의 은혜를 주시기 위한 방법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그의 육체적 치료가 아니라 구원에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절대 절망을 절대 희망의 삶으로 바꾸고, 저주의 삶을 축복의 삶으로 바꾸시는, 그 운명과 같은 저주의 삶도 축복과 은혜의 삶으로 바꾸시는 참된 그리스도가 예수님이심을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본문 9장을 보면, 이 눈 먼 자에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 눈 먼 자가 앞을 보게 되고, 그 저주의 삶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는데, 오히려 그 일로 그는 사람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진짜 예수님을 만나니까, 진짜 주님을 만나니까, 그는 자신을 핍박하는 그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담대히 주님을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자세히 보면 ‘11절’에 그가 처음 고침을 받고 사람들에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자신을 고쳤다. 그런데 ‘17절’에 보면 이 예수님을 “예언자”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33절’에 가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38절’에 무엇이라 고백합니까? “주님”, “주님! 내가 믿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그 삶이 구원받고, 또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세상의 고난 앞에 서 있을 때, 바로 그때 우리 예수님께서 그 눈 먼 자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물으십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그러자 그는 예수님께 엎드려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내가 믿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적이며,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이루길 원하시는 구원의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 눈 먼 자를 고치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요,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다.”

이 말씀은 그동안 그가 가지고 있었던 저주와 실패의 가치관을 바꾸고 계신 것입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실패한 인생이다. 저주의 인생이다. 절망의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그에게 “아니다!!”라고 선포하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도 “네 앞에 있는 상황과 형편과 문제가 아니라 지금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저주의 가치관을 바꾸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27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여기서 ‘준다’는 뜻을 보면, 이 단어는 “꽃밭에 골고루 물을 뿌리듯 준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이 뜻은 주님의 평안은 기쁠 때나 풍요로울 때만 주는 평안이 아니라 슬플 때, 힘들 때, 어려울 때, 심지어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도 변함없이 주시는 평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삶에 지쳐 있고, 힘들어 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렇게 묻고 계신 것입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그 어려움 가운데, 고난 가운데 참된 평안을 주시는 주님을 믿느냐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운데 오늘 본문의 눈 먼 자와 같이 낙심과 절망 가운데 계신 분이 있다면, 오늘 이 시간 참된 평안의 주님을 만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제목: 내 삶의 문제와 고민과 걱정 가운데서 참된 주님을 고백하게 하소서. 그 삶 속에서 참된 주님을 만나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게 하시고, 그 은혜로 우리 가정과 삶이 회복되고 축복받는 은혜가 있게 하소서.

중보 제목: (화: 목장/VIP) 목원들의 삶속에 있는 영적 싸움과 삶의 문제 가운데 평안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반드시 승리하게 하소서. 목원들의 가정 중에 믿지 않는 가족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하시고, 주변의 VIP들이 목장과 교회에 함께할 수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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