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JESUE CHRIST 20. 요 7:53-8:11, 용서할 수 있는 은혜

2024.01.16 10:13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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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7:53-8:11, 용서할 수 있는 은혜, 찬 303장(날 위하여 십자가의)

우리는 가끔 힘들면 자신의 과거의 잘못을 떠올리며, “그때 그래서 이 고난을 당한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은 우리를 벌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돌이키기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 닥쳐도,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실 계획과 섭리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칠흑같은 고난의 밤이 지나면 반드시 광명한 새벽이 찾아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사랑의 주님이시며, 그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결코 낙심되지 않고,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은 그 죄가 가볍거나 심각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이 음행을 행한 여인을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나오는데,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뜻은 단순히 ‘너의 죄가 용서 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너의 죗값을 내가 대신 감당하겠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대신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그 죽을 수밖에 없는 죄를 사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라는 단어의 뜻을 보면, 이 단어는 두 가지 단어의 합성어에서 나왔는데, 그 한 단어가 ‘용서’라는 뜻입니다.

즉 죽을 수밖에 없던 내 죄를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대속해 주신 그 용서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그 깊은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누릴 때, 우리 또한 우리 가정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고, 섬길 수 있고, 더 나아가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신 주님의 그 은혜를 생각하며 내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조차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용서할 수 있는 은혜의 삶을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첫 번째로 남을 정죄하는 율법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본문 3-5절’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음을 하다가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워 놓고,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들을 돌로 쳐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본문에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음한 여인을 끌고 와서 제일 먼저 내세운 것은 모세의 율법이었습니다. 그 율법을 최고의 판단 기준으로 삼고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말씀의 본질이 아니라 형식에 메여 그 여인을 판단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기준과 판단으로 말씀으로 보고, 또 그것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고 비판했던 것입니다.

기독교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죄를 들킨 사람과 죄를 들키지 않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한 마디로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단지 누군가는 그 죄가 드러나 비난을 받고, 또 누구는 그 음밀한 죄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아가는 성도는 남을 판단하는 교만의 자리가 아니라,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과 그 은혜를 통해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은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용서의 은혜를 위해서는 ‘침묵의 순간’이 필요합니다.

‘본문 6절’을 보면 군중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할 때,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고 다만 땅에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쓰셨습니다. 성난 군중들에게 그저 침묵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도 때로는 침묵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이 사건은 ‘8장’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7장’ 마지막 절부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그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7장 53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제각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8장 1절’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7장 53절’에 ‘그들이 제각기 집으로 갔다’는 의미 안에는 ‘그들이 7장 앞에서 예수님을 잡기 위해 왔지만 아무 소용이 없이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대제사장과 바리새파 지도자들에게 큰 책망을 받게 되고,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 밤에 모여 예수님을 잡을 계획을 짜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예수님은 어디로 가셨습니까?

올리브 산, 감람산이었습니다. 이 뜻은 바로 ‘기도하려 가셨다’는 것입니다.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붙잡고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된 그 순간,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러 가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난 앞에, 나를 공격하고, 괴롭게 하는 원수 앞에, 믿음의 백성이 해야 할 신앙의 모습인 것입니다.

내게 닥친 고난 앞에, 어려움 앞에 우리는 때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기도하며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12절, 13절’을 보면 ‘사도바울’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우리 손으로 일을 하면서, 고된 노동을 합니다. 우리는 욕을 먹으면 도리어 축복하여 주고, 박해를 받으면 참고, 비방을 받으면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어떻게 욕을 먹어도 오히려 축복을 하고, 비방을 받고도 좋은 말로 응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있는 것은 나를 욕하고, 비방하는 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어떤 악도 선으로 바꾸시는 선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는 욕을 먹어도 축복할 수 있고, 비방을 받아도 좋은 말로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용서의 은혜를 받은 성도는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그 한없는 은혜를 받았다면, 정말 중요한 것은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 은혜를 입은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이 ‘가라’는 단어는 ‘돌아가라’는 뜻입니다. ‘너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라, 너의 가정으로 돌아가라, 네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그 여인에게 그곳은 두려움의 장소였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모두 알고 있는 수치의 장소, 삶이 무너진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그곳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고통의 자리에 은혜를 붙들고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이유는 단지 ‘감격’이 아니라 ‘삶의 변화’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죄의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삶을 회복하고,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의 은혜’, ‘용서의 은혜’,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성도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기는 여러분 모두는 삶의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품고, 그 은혜로 무너진 삶과 가정을 회복하고, 이웃을 회복하는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삶의 모든 상황에서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며, 무너진 가정과 삶의 회복되고, 다시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주님의 은혜로 가정의 구원과 이웃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중보 제목: (화: 목장/VIP) 목원들의 삶속에 있는 영적 싸움과 삶의 문제 가운데 평안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반드시 승리하게 하소서. 목원들의 가정 중에 믿지 않는 가족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하시고, 주변의 VIP들이 목장과 교회에 함께할 수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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