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새 Let it Overflow 4 엡 4:1-16 성령의 부르심이 넘치게 하라 1
2024.01.05 23:03
예수인교회
신년 특새 Let it Overflow 4 엡 4:1-16 성령의 부르심이 넘치게 하라1 찬413/470 내 평생에 가는 길
우리가 누군가를 부를때 이유없이 부르지 않는 것처럼 항상 부름에는 그 목적과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은 4장으로 들어와 그리스도인의 부름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1절) 이것이 교회(에클레시아)입니다. 중요한 점은 왜 부르셨는가? 입니다. 신년에 우리를 가정과 일터와 삶을 부르시는 목적이 무엇인지 찿아봅시다.
첫째 부르심이 넘치려면 “하나되야 합니다.” 1-6
3절에 성령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 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이 말씀은 중요한 교회의 존재 목적입니다. 하나가 아니었던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이것을 “나누는 자”입니다. 마귀의 스페인어 “디아블로”란 험담하는자, 참소자란 의미로 이간질 하여 “나누는 자”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친밀한 관계로 창조되었지만 마귀는 선악과 하나로 모든걸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고립된 존재로 사망을 향하게 만들었습니다.(사53:6) 이것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시 하나 되게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4-6절까지 반복적으로 부르신 목적이 하나였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문제는 이 하나됨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힘써지키다는 원어 의미는 로마 검투사들이 싸움에 나가기전에 서로에게 “살기 위해 목숨걸고 싸워”라고 말하던 말입니다. 즉 하나됨이란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어렵다는 걸 말합니다. 실제로 당시 신약교회안에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분쟁과 다툼”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성격차이, 문화차이, 언어차이, 인종차이, 등 일수도 있었지만, 바울은 그원인을 우리가 “평화의 띠”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3절). 여기서 ‘평화의 띠’란 2절에서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용서”으로 정의합니다. 먼저 겸손이란 사람앞에 낮아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겸손하게 낮아지는 걸 말합니다. 배우자와 다툴때 그사람만 보면 화가 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불러주신 주님을 바라보며 낮추는 걸 말합니다. 온유란 부드럽고 약한사람을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로 강한사람이 그 힘을 양같이 순하게 조절하는 능력입니다. 성경은 이 온유를 예수님께 배우라고 말합니다.(마11:29) 예수님의 모든 권세를 갖고 있으면서도 십자가에서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구약의 모세를 온유의 대표적인 인물로 삼습니다. 그는 고라자손이 대항 했을때도 가족들이 반기를 들었을 때도 자신의 힘으로 제압할 수 있었음에도 조용히 주님께 나가 눈물로 간구합니다. 이것이 온유입니다. 오래참음이란? 용서와 연결되는 사랑의 절정입니다. 고전13장에 사랑은 오래참음으로 시작하여 오래참음으로 마침을 말합니다. 오래참음의 다른 말은 기다림이기도 합니다. 엄마가 아이를 출산할때까지의 기다림, 조개가 모래를 진주로 만들때까지의 기다림, 기다리던 사람을 만날때까지의 기다림, 사랑은 기다림을 통해 완성됩니다. 이와 같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과 용서로 그리스도의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됨을 지켜나갈수있는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하나되지 않고 목장이 하나되지 않고 일터나 교회가 하나되지 않는 이유속에 자세히 보면 다른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평화의 띠가 없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이 평화의 띠로 하나됨을 힘써 지켜나가는 이땅의 거룩한 주님의 교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부르심이 넘치려면 “성장해야 합니다.” 7-16
중요한 영적 원리입니다. 이 말을 반대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 입니다. “목사님, 몸이 자라고 나이가 들고 배움의 수준이 달라지는데 성장하지 못한다니요?”라고 질문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되면서 육적 몸은 자라지만 영적으로는 전혀 자라지 못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모든 인간은 영적으로 무지합니다. 인격적으로는 자기중심적이며, 불순종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상담학에서는 어른아이란 말이 있습니다. 몸은 커지지만 속은 어린아이 같이 좁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영적 성장이 멈춘 우리를 하나님이 성장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 불러주셨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장하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가 ‘서로 다름을 이해해야 합니다.’ 7절을 보면 …”우리 각사람에게 주신 선물의 분량을 따라서 은혜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즉 서로의 은사가 다르고 부르심이 다르다는 말을 합니다. 부부가 다투는 것은 ‘나와 다르다’는 것을 ‘나와 틀리다’로 받아 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걸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은사는 절대로 똑같이 주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서로 ‘상호보완’하여 서로 성장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둘째는 ‘믿는일과 아는일에 하나가 되야 합니다.’ 13절을 보면 주님을 믿는일과 아는일에 하나가 될때 온전한 사람이 된다고 말합니다. 신앙생활할때 머리로는 알지만 몸이 안따라줄때가 많습니다. 가령 말씀보고 기도하고 전도해야 하는거 다 압니다. 근데 안됩니다, 사랑하고 용서 하는거 다압니다. 근데 안됩니다. 이렇듯, 안되는 간격을 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이 순종입니다. 순종을 통해 믿는일과 아는 일이 하나가 되어지면서 성장하게 됩니다. 놀라운 신비입니다. 셋째는 “우리가 어린아이인 걸 깨달아야 합니다.” 14절에 바울은 “우리는 이 이상 더 어린아이로 있어서는 안됩니다….”라고 말합니다. 어떤 학자가 교회에는 장년부 청년부가 없고 오직 교육부만 있다고 했습니다. 장로아이, 권사아이, 목사아이, 그래서 맨날 싸운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와 같이 우리가 어린아이인 걸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교회 안에 있을 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속좁고 고집스럽고 아이같은지… 이걸 깨닫고 주님안에서 세워 질 때 우린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16절을 보면 “온몸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속해 있으며 몸에 갖추어져 잇는 각 마디를 통하여 연결되고 결합 됩니다. 각 지체가 그 맡은 분량대로 활동함을 따라 몸이 자라나며 사랑안에서 몸이 건설됩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에 있을 때 우린 성장합니다. 이것이 교회로 부르신 놀라운 축복의 섭리입니다. 오늘도 우리 가정과 목장과 여러 만남속에서 예수의 성장이 흘러 넘치는 한해가 되길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주님 오늘도 가정과 목장과 사역에 하나됨을 위해 힘써 평화의 띠로 지키게 하소서, 오늘도 우리의 우리 부부관계속에, 자녀들이, 목장식구들이 우리 교회가, 영적 성장을 위해 서로다름을 인정하고 아는일과 믿는일에 하나되는 놀라운 축복의 공동체로 서게 하소서
중보제목: (금:선교지/ 모든 예배/ 신년에 주시는 비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