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Jesue Christ 15. 요 6: 41-59, 예수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

2023.12.28 10:59

예수인교회

조회 수231

요 6: 41-59, 예수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 찬 436장(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요한복음 6장’의 말씀 전체는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라는 엄청난 기적을 행하신 사건과 모두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이 기적의 사건으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며, 단지 빵을 먹는 것만 생각하고 예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흩으시고 그들을 피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정말 우리에게 주시고 싶은 것은 ‘먹는 빵’이 아니라 ‘영혼을 살리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영혼을 살리고, 영원한 생명, 영생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41절’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에 사람들은 매우 당황스러워 합니다. ‘42절’을 보면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부모를 우리가 알지 않는가? 그런데 이 사람이 어떻게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는가”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십니다. ‘51절’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그리고 그 말씀에 무리들은 ‘52절’“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에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줄 수 있을까?”라며 수군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계속해서 ‘53절’“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또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는 생명이 없다”라고까지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 사람들이 당황스러워하고, 예수님을 이상한 사람처럼 생각합니다. “도대체 자기 살을 어떻게 먹으라는 것인가? 자기 피를 어떻게 마시라는 것인가?”라며 ‘66절’을 보면 많은 제자들과 대다수의 무리들이 예수님을 떠나 버립니다.

이 말씀을 보면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적을 보았다고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면, 그렇게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도 결국에는 예수님을 떠나 버렸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삶에서 능력과 기적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담대하게 합니다. 그러나 기적만 바라는 신앙은 잘못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삶의 문제 해결, 기적만을 바라보는 믿음은 결국에는 그 삶이 어려워질 때 주님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초대교회 중에 가장 부자교회였던 ‘라오디게아 교회’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7절’에 말씀합니다.

“너는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지만, 실상 너는, 네가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육신의 형편’이 있고, ‘영적인 형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산다고 그 영혼도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영혼은 비참한 상태에 있는데,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세상의 것만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와도 꼭 ‘먹을 것’,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 ‘좋은 집 가지는 것’, ‘돈 많이 버는 것’ 그런 것에만 온통 관심이 있고, 그것만 붙들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복 받는다”고만 생각하고 믿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복은 ‘세상의 빵’이 아닙니다. ‘영생의 복’입니다.

영영 죄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또 다시 사셔서 이제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 그리고 그 은혜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이 바로 예수를 믿어 받는 가장 큰 복인 것입니다.

이보다도 더 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로 이런 은혜를 깨달은 것, “내가 이런 은혜를 받았구나!” 그것을 깨닫는 순간 그 영혼이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정말, 정말 믿어지는 사람이 바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우리의 육신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물론 분명히 우리의 육신의 배고픔에 대해서도 주님은 관심이 있으십니다. 주리고 목마른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진짜 관심은 바로 ‘영혼의 구원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죄사함 받고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놀랍고 엄청난 은혜를 받았지만, 여전히 세상의 삶에 묶여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은 단지 나중에 천국에서만 잘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 은혜로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답게, 천국 백성답게 살라고 주신 새 생명인 것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었다는 것은 ‘새 생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면, 성격이 조금 좋아지고, 생활 태도가 조금 바뀌고, 말이 달라지는 이런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생명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내 옛 사람을 죽고, 이제는 예수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바로 ‘예수로 새 생명을 얻었다’면 ‘그 믿음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 안타까운 것은 분명히 예수님을 영접했는데도, 새 생명으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면 삶속에서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내 안에 계신 예수님, 성령님의 인도하심 없이, 내 뜻대로, 내 의지도 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생명이 되시고, 지금 내 안에 계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세상만 바라보고 세상의 환경과 상황에 따라 흔들리며 사는 것입니다. 세상의 근심, 염려, 두려움이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56절’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여기서 ‘먹고’, ‘마시라’는 것은 ‘예수와 함께 살라’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안에 예수가 함께 하심을 잊지 말라,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시겠습니까?

주님과 함께 사아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주님 손 꼭 붙잡고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제목: 내 삶속에서 영원한 생명에 대한 은혜가 넘치게 하소서, 내 삶이 항상 예수와 함께 동행하며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 되게 하소서

중보기도(목: 지도자들): 담임목사님과 목회자들의 성령충만으로 사명 감당을 하게하소서. 교회를 섬기는 제직/서번트/팀장/목자/봉사자들의 섬김 속에 은혜와 기쁨이 가득하게 하소서. 이 땅의 위정자들이 하나님의 공의 가운데 서있게 하소서.

댓글 쓰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