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Jesue Christ 10. 요 5: 1-18, 보시고, 아시고, 말씀하신다.

2023.12.20 10:18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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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5:1-18. 보시고, 아시고, 말씀하신다. 찬송가 301장(지금까지 지내온 것)

 

요한복음 5장은 너무도 유명한 본문입니다. 아마도 모두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바로 베드자다, 개역개정에는 베데스다 못 이라는 곳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예수님이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베드자다’라는 못에서 38년된 병자를 마주하십니다. 베드자다는 ‘은혜의 집, 자비의 집’이라는 뜻을 가졌지만 실제로는 그곳에 은혜가 없었습니다. 자비는 없었습니다. 결국 병자들이 1등만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무한 경쟁 속에 집어넣어놓고서는 희망고문만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곳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지 본문을 통해서 보겠습니다.

<본론>

첫째, 예수님이 먼저 찾아 오셨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1년에 3번은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와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럼 예수님은 그냥 절기니까 심심해서 산책하시다가 ‘우연히’베드자다라는 못에 가서 우연히 38년 된 병자를 만난 것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의 행동에는 분명한 목적과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못은 참 재미있습니다. 언뜻 보면 참 은혜로운 공간입니다. 병을 고쳐주니까요. 근데 자세히 보면 아닙니다. 왜냐하면 1등만 고쳐주는, 선착순인 곳이니까요. 그런데 그곳에 온 사람들은 3절에 ‘눈 먼 사람, 다리 저는 사람들, 중풍병자들’이 누워있는 곳이었습니다. 어떻게 13.5.m나 되는 곳에 뛰어내린다는 것은 자살 행위입니다. 그러기에 실제로 그곳에서 병이 고쳐졌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기에 그곳은 진짜 은혜는 없고 이름만 은혜와 자비의 집인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직접 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서 예수님이 다가 오신 것이 아닙니다. 나는 한 것이 없지만 예수님이 만나기 위해서 직접 예루살렘 옆에 있는 베드자다라는 못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보시고, 아시고, 능력의 말씀을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눈이 여기에 나옵니다.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다가갑니다. 그리고는 그 사람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오랜 세월을 그렇게 보내고 있는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큰 위로가 됩니까? 그렇기에 신앙생활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은 하나님을 속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런 행동을 하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는 묻습니다. “네가 낫고 싶으냐?” 이 질문이 얼마나 웃긴 질문입니까? 7절: 그 병자가 대답하였다. “주님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들어서 못에다가 넣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가는 동안에, 남들이 나보다 먼저 못에 들어갑니다.” 이 남자는 예수님이 병이 낫고 싶은지를 물었는데, 자신이 왜 못 들어가고 있는 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쬐끔만 도와주시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베드자다라는 못에 1번으로 들어가서 몸이 고쳐졌다고 해보면, 그 사람이 누구 때문에 고쳐졌다고 이야기 할까요? 어느 누구도 은혜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1등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모습입니다. 에수님을 앞에 두고 자신의 방법으로 도와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를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조금만 도와주시면…, 예수님 제 계획이 이런데 도와주세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8절에 예수님은 그런 그 사람에게…“바보 같은 놈, 날 못알아봐? 좋아 넌 Pass”라고 하실 것 같은데 무엇이라 합니까?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아가거라!”라고 합니다. 무엇으로요? 바로 능력의 말씀으로요. 이것은 마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와 같습니다. “일어나서 걸어라.!” 명령하셨고, 순종할 때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 병자는 이제 ‘은혜’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굳이 안식일에 병을 계속 고치고 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예수님이 우연히 무엇인가를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분명한 의도와 의지가 있으셨고, 오늘 38년 된 병자를 굳이‘안식일’에 고치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돌아다닙니다. 얼마나 기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바리새인들은 10절에 “오늘은 안식일이니,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은 옳지 않소?”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진짜 안식을 누리고 있는 것일까요? 아닐 것 같습니다. 이들은 마치 돌아온 탕자에서 돌아온 동생의 기쁨보다 자신에게는 동물을 잡아주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이 먼저인 자들입니다. 마가복음 2장 27절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38년 된 병자 외에도 많은 사람들을 안식일에 고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그러셨을까요? 아마도 그들에게도 진정한 안식함을 주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인 예수그리스도, 그 예수님이 그들에게도 안식을 주고자 의도적으로 유대인들과 적을 만들어 가면서까지도 진정한 안식을 주고자 예수님이 행동하셨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예수인교회 성도여러분>

  오늘 38년 된 병자는 무엇을 했습니까? 그는 어떤 노력을 했기에 예수님께서 이렇게까지 잘해주십니까? 없습니다. 그가 한 노력은 없었습니다. 그가 제시한 방법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예수님이 오래 전부터 그를 아셨고, 오늘 구원과 치료를 하고자 예수님께서 친히 먼저 선택하셔서 찾아 가셨습니다. 대화를 하기도 전에 보고 계셨고,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능력과 치료의 말씀으로 선포하십니다. 그 은혜를 맛본 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안식을 누리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은 준비 된 자들에게만 말씀하십니까?, 예수 믿을 준비가 다 되어서 말씀하십니까? 우리가 모두 완전한 준비가 되어 있기에 말씀하십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신 사람들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는 자들에게도’, ‘하나님께 내 인생을 전적으로 내어드리지 못한 자에게’, ‘아직도 마음을 열지 못한 자에게도’말씀이 임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우리에게 은혜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죄인이고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그것이 은혜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명령하십니다. 그 능력의 말씀으로 그 준비되지 않은 자가 일어나 걸어갑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님을 만난 자의 은혜 입은 모습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성도는 은혜를 구해서 받은 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은혜를 연구하고, 준비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노력해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이것은 차이가 큽니다. 우리는 은혜를 거저 받았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은혜를 거저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거저 받은 사람들이기에 내가 거저 받은 은혜를 감사하면서 서로에게 열린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고, 서로 헌신하고 도와주고 섬겨주며 하나님 나라까지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인 줄 믿습니다.

<중보기도>

  1. 말씀 기도: 항상 먼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소서, 예수님으로 안식하게 하소서,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다른 곳으로 흘러 넘치게 하소서.
  2. 다음세대: 교육부서, Youth, 청년부서의 예배가 회복되게 하소서, 성령을 체험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특별히 다음세대를 위하여 헌신할 자들을 세워주소서, 12월28~30일까지 수련회가 있는데 ‘즐거움을 회복하라!’를 통하여 변화되는 수련회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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