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Jesue Christ 9. 요 4: 43-54,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십니까?

2023.12.19 09:21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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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4: 43-54,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십니까? 찬 382장(너 근심 걱정 말아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7가지 표적’의 사건 중에 ‘두 번째 표적’, 즉 기적에 대한 말씀입니다.

‘4장’의 앞부분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라는 동네의 우물가에서 남들로부터 조롱과 멸시와 천대를 받던 한 여인을 만나시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단순한 기적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가치관을 바꾸고, 삶을 바꾸고, 결국에는 사마리아 전체에 복음이 증거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사마리아 동네에 전하게 되고, 동네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어떻게 이 여인이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놀라며, ‘40절’에 예수님을 찾아가 함께 머물기를 청하고, 이틀 동안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며 말씀을 전하시는데, 참 감격스러운 것은 ‘42절’에 그들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들은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제 당신의 말 때문만은 아니오. 우리가 그 말씀을 직접 들어보고, 이분이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심을 알았기 때문이오.”

이제는 그들이 그녀의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주님을 직접 만나고, 경험하고, 복음을 들은 후 예수님이 참된 구주이심을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짜 기적’인 것입니다.

단순히 내 문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와 어려움이 오히려 복음을 드러내고 증거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진짜 기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적’이란 단어의 뜻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증거”라는 의미이며, 이것은 우리 성경은 ‘표징’이라고 말씀하는데, 이 단어의 뜻은 “의미가 담겨진 행위”라는 뜻입니다. 즉 ‘기적’, ‘표징’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주시는 성령님의 능력과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충만하다’라고 할 때, 이 ‘충만하다’는 단어의 뜻은 ‘가득 차 있다’는 뜻이 아니라, ‘넘쳐흐른다’는 뜻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임하시면, 그 은혜가 우리 가정과 주변과 삶의 자리에 흘러 넘쳐 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충만’이며, 하나님의 기적과 은혜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놀라운 일이 일어난 후, 예수님께서는 ‘갈릴리’를 향해 가십니다.

그리고 ‘46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그곳에서 자신의 아들이 죽을 병이 걸린 한 ‘왕의 신하’가 예수님께 나와 간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의 아들은 ‘가버나움’에서 병이 들었는데, 지금 ‘가나’와 ‘가버나움’의 거리는 34km 정도이니까 22마일 정도 되는 거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 머물고 계실 때, 그 소식을 듣고 그 먼 거리를 달려와 “내 아들이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가버나움으로 내려오셔서 제 아들을 고쳐 주십시오”라며 간청을 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 ‘48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표징이나 기이한 일들을 보지 않고는, 결코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그 ‘왕의 신하’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그 주변에 이 ‘왕의 신하’의 간청을 보며, 예수님께서 또 어떤 기적을 행하실까 ‘구경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향해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49절’에 그 왕의 신하가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와 주십시오.”

여기서 ‘선생님’이라고 번역된 단어의 정확한 뜻은 ‘주님’입니다. 즉 이 왕의 신하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호기심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며, 기적의 주인공이 아니라 구경꾼으로서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바라보았지만, 그 아버지만큼은 예수님을 단순히 선생님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과 그 삶을 고치시고 변화시킬 ‘유일한 구원자’로 인정하며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삶속에서 주님의 은혜와 능력과 기적을 체험하고 누리며, 그 충만한 사랑을 주변에 흘려보내는 성도의 삶의 모습입니다.

내 삶의 문제와 걱정을 보며, 혹시 ‘예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구경꾼들과 같은 삶의 모습이 아니라, 예수님을 내 삶을 유일한 구주가 되심을 고백하며, 그 주님과 함께 동행하고, 그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며 살아가는 성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라는 단어를 보면 이 단어는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내 삶의 방향을 내가 아닌 예수님께 맡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50절’을 보면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 그 왕의 신하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돌아가거라. 네 아들이 살 것이다.” 여기서 ‘살 것이다’라는 단어의 신제는 ‘현재 완료’입니다. 즉 이 뜻은 예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그 순간 ‘살았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의 뜻은 “돌아가라! 너의 아들이 지금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는 여기서 진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 왕의 신하의 믿음을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신하가 처음 예수님께 달려왔을 때, 그는 예수님께서 자신과 함께 ‘가버나움’에 가서 그 아들을 만져 주신다거나 어떤 특별한 행위를 해주시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냥 “너의 아들이 살았다. 가라”그러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 왕의 신하의 입장에서는 그 먼 걸, 하루가 더 걸리는 그 길을 애써서 달려왔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 순종하며 돌아간다는 것은 큰 믿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어떻게 합니까? ‘50절 하반절’ “그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떠나갔다’는 단어를 보니까, ‘곧바로 갔다, 망설임 없이 갔다, 뒤도 안돌아보고 갔다’는 의미로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니까, 그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절대적으로 믿고, 맡기고,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방식, 내 상식이 아닐지라도 나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으니까, 무조건 ‘아멘’하고 순종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정한 주님의 고백의 순종이 그 아들을 살리는 기적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문제와 근심의 가장 큰 원인이 여기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면서도 삶의 문제 속에서 끝임 없이 그 예수님을 의심한다는 것입니다. 내 소망대로, 내 기대대로 이뤄지지 않는 삶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순종하기를 주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시다’는 것입니다. 내 방법과 소망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주님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주님의 선한 뜻대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아버지가 예수님의 말씀에 ‘아멘’하며 믿음으로 돌아갔지만, 그 20마일이 넘는 길을 다시 돌아갈 때,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냥 기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가는 길 동안 중간 중간에 때로는 걱정도, 근심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예수님의 말씀에, 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길을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종이 결국에는 성령의 기적을 만들고, 능력을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53절’ 말씀입니다.

“아이 아버지는 그 때가, 예수께서 그에게 “네 아들이 살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바로 그 시각인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와 그의 온 집안이 함께 예수를 믿었다.”

“그와 그의 온 집안이 함께 예수를 믿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이를 왜 치료하셨을까요? 그것은 단지 그 아이 한 명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집안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관점이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단지 아들의 치료가 모든 관점을 두었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넘어 그 집안이 구원받는데 관점을 두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신 관점이며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이 필요하다면, 여러분은 왜 그 기적과 능력이 필요하십니까? 단지 그 문제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나의 관점이 아니라 주님의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우리의 문제와 걱정만을 해결해 주시는 해결사가 되길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주인으로서 이 문제를 통해, 걱정과 근심을 통해, 우리 가정이 구원받고, 내 삶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선하신 뜻을 이루길 원하십니다.

기도 제목: 예수님을 내 삶의 주님으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삶을 살게 하셔서, 주님의 선하신 뜻대로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을 누리게 하소서. 내 삶의 문제와 기도 제목을 통해 우리 가정과 이웃이 구원받게 하소서.

중보 제목: (화: 목장/VIP) 목원들의 삶속에 있는 영적 싸움과 삶의 문제 가운데 평안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반드시 승리하게 하소서. 목원들의 가정 중에 믿지 않는 가족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하시고, 주변의 VIP들이 목장과 교회에 함께할 수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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