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Jesue Christ 7. 요 3: 22-36, 주님만으로도 행복하십니까?
2023.12.14 09:07
예수인교회
요 3: 22-36, 주님만으로도 행복하십니까? 찬 408장(나 어느 곳에 있든지)
“주 선한 능력으로”라는 찬양의 작사로 잘 알고 있는 ‘본헤퍼 목사님’께서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살아가면서 항상 ‘나는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한가?’를 점검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고백은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만난 성도만’이 할 수 있기 고백이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제 천국 복음을 전하시기 시작하시고,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세례요한’의 제자들의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에게 달려와 ‘26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말하였다. “랍비님, 보십시오. 요단 강 건너편에서 선생님과 함께 계시던 분 곧 선생님께서 증언하신 그분이 침례를 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에게로 모여듭니다.”
이 말 속에는 ‘시기심’과 ‘분노’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마치 뭔가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 든 겁니다.
그러자 ‘세례요한’은 제자들의 그 말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면서 ‘27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 예수가 그리스도시며, 나는 그분보다 앞서서 보냄을 받은 사람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는 기쁘다, 그 말을 들으니까 나는 너무 기쁘다” 그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본문 29절’을 보면 “마치 결혼식 때 신랑의 들러리가 신랑에게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사람들이 신랑에게로 몰려가는 것을 보고 신랑의 들러리가 기뻐하는 것처럼 자신은 꼭 그런 마음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28절’에 제자들에게 “이제는 너희들이 그 증인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자기에게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신을 버리고 예수님에게로 몰려드는 것을 보고 이렇게 기뻐하기만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세례요한’이 오직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이 진짜 그리스도이신 것을 정말, 정말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높아지시고, 예수님에게로 사람의 관심이 몰려가는 것을 보면서도 오히려 그것이 기쁨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어떻습니까? 이 모습이 정말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의 모습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세례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알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경험한 것이 아니라, 단지 ‘세례요한’으로부터 그분이 누구신지, 어떤 분이신지를 들었을 뿐, 만나지 못하고 믿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조차도 자신들의 경쟁 대상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도 이와 같습니다.
‘세례요한’과 같은 믿음이 있고,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같은 믿음이 있습니다.
분명 똑같은 예수님을 믿는 것 같아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있고, ‘세례요한’의 제자들처럼, 실제로 자신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니고 들어서 예수를 믿는 사람, 전해준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들어서 알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누리는 참된 기쁨이 뭔지를 절대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기쁨은 세상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쁨과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체험하지 못한 사람의 신앙도, 믿음도 항상 삶의 모든 초첨이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내 마음에 드는 것, 내가 잘 되는 것, 내 문제가 해결되는 것’, 모든 초첨이 내게 있어서 나를 중심으로 잘 되면 행복합니다.
내가 잘되고, 내 가정이 축복받고, 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핵심이며 이유입니다. 그래서 나하고 상관이 없으면 아무리 그것이 예수님의 일이어도 나에게는 의미가 없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자기중심으로 믿기 때문에, 내 교회만 좋고, 우리 교회 목사님들만이 최고고, 어찌 되든 나만 잘되면 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중심의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예수님이 내 기쁨이 되는 은혜를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세례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이 그렇게 마음에 시기질투하고 불평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시라고 소개를 해줬는데도 예수님을 진짜 아직 모르는구나!”
그래서 ‘본 헤퍼 목사님’은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하냐? 예수님의 일이 기쁘냐? 내 일이 기쁘냐?”를 항상 점검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반드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들어서 믿는 것으로 끝나서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을 한 번 만난 감격이 아니라, 오늘도, 내일도, 내 삶의 모든 가운데 그 예수님과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30절’에 ‘세례요한’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그런데 진짜 이 말씀, 이 ‘세례요한’의 고백은 진짜 예수를 만난 사람, 그 예수님과 항상 동행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면 고백할 수 없는 고백입니다. 여기서 ‘흥한다’는 뜻은 ‘성장한다’, ‘높이 날아오른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흥해야 한다’ 이건 좋은 말씀입니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아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쇠하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진짜 이렇게 된다면 ‘아멘’하고 기뻐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쇠한다’라는 뜻은 ‘그냥 약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비교급’입니다. 그래서 그 뜻은 “~보다 못하다, ~보다 낮아지다”라는 뜻입니다.
즉 ‘나는 쇠하여야 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일을 위해서는 내 일이, 내 삶이 낮아져야 한다.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삶이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삶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바로 주님을 진짜 만나고 그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살 수 있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고백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고백하게 하시는 것이며, 그 은혜로 그런 삶을 살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진짜 예수를 만나면 이것은 부담이 아니라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짜 주님을 만나는 삶, 그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소망하고, 갈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빌립보서 4장 23절’에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예수님의 은혜와 평강”이 우리의 심령 가운데 함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제목: 주님! 내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또 그 주님과 함께 동행 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그래서 나는 쇠하고 주님이 높아지는 삶이 되게 하셔서, 결국에는 주님이 나를 높이시고, 우리 가정을 높이시고, 우리의 삶을 높이시는 은혜와 평강과 기쁨과 감사의 축복을 누리게 하소서.
중보기도(목: 지도자들): 담임목사님과 목회자들의 성령충만으로 사명 감당을 하게하소서. 교회를 섬기는 제직/서번트/팀장/목자/봉사자들의 섬김 속에 은혜와 기쁨이 가득하게 하소서. 이 땅의 위정자들이 하나님의 공의 가운데 서있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