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Jesue Christ 5. 요 2: 13-25, 예수께서 왜 진노하셨을까?

2023.12.12 09:20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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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2: 13-25, 예수께서 왜 진노하셨을까?, 찬 420장(너 성결키 위해)

오늘 본문은 마음이 무겁게 느껴지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처럼 화를 내시며 진노하시는 장면은 성경에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다른 복음서들은 이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장면이 뒷부분에 나오는 반면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사역 앞부분에 기록함으로써 성전을 성결케 하는 것이 얼마나 예수님의 사역에서 중요한 것인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럼 도대체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진노를 하셨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겉과 속이 다른 신앙의 삶’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을 보면 당시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고, 환전을 하던 사람들은 다 하나님 앞에 제사를 잘 드리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면 흠이 없는 소와 양과 비둘기를 드려야 하는데, 멀리서 오는 사람은 아무리 집에서 흠이 없는 짐승을 가지고 왔더라도 예루살렘까지 오는 중간에 그 짐승이 다치거나 흠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성전 틀에서 돈만 가져 오면, 이미 제사장들에게 흠이 없는 짐승으로 허가를 받은 짐승들을 팔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려면 성전세를 내야하는데 멀리 외국에 살던 사람들이 외국돈을 편하게 성전에서 사용하는 돈으로 바꿔주는 일을 함으로써, 이들 모두는 다 하나님께 제사를 잘 드리도록 도와주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은 겉으로는 하나님께 제사를 잘 드리도록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탐심이 가득해서 다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그 일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기가 막힌 탐욕을 채우는 도구가 되고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모습에 진노하신 겁니다.

당시 성전은 우리가 ‘출애굽기’를 통해 살펴보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인간이 타락한 다음,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던 그 백성이 하나님께 나와 회개할 수 있고, 예배할 수 있고, 제사드릴 수 있었던 곳이 바로 성전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16절’에 예수님께서 이 성전을 “아버지의 집”라고 말씀하셨고, ‘마가복음 11장 17절’에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곳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성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곳이고,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는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성전이 타락했다’는 것은 그 ’구원의 길이 막혔다는 것’을 의미하며, ‘은혜의 길이 막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성전은 예수님을 예표하는 상징이었습니다. ‘구원의 문’, ‘은혜의 문’이 예수님을 통해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 그 예수님을 대신 했던 곳이 바로 성전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그러니 성전이 타락한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진노하셨던 것입니다.

성전 타락의 핵심은 겉과 속이 다른 겁니다. 겉으로만 하나님을 믿지, 속으로는 세상을 섬기고 탐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형식적인 신앙생활, 예수를 믿어도 내 행복을 위해 믿는 것, 겉만 크리스찬인 삶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교회도 나오고, 예배도 드리고, 헌금도 하고, 교회 봉사도 하고, 겉으로는 하나님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 중심’입니다. 마음의 중심이 정말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 주인되시는 삶을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거짓의 아비가 마귀입니다. 그래서 속은 마귀가 지배하고 탐심이 가득하면서,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진노를 하신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그럴싸한 성도 같은데, 정작 직장과 사업장과 가정에서는 하나님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우리 가족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고 있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가 겉과 속이 다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이사야 1장 11-16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기가 지겹고, 나는 이제 수송아지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싫다. 너희가 나의 앞에 보이러 오지만, 누가 너희에게 그것을 요구하였느냐? 나의 뜰만 밟을 뿐이다! 다시는 헛된 제물을 가져 오지 말아라. 다 쓸모 없는 것들이다. 분향하는 것도 나에게는 역겹고, 초하루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으며, 거룩한 집회를 열어 놓고 못된 짓도 함께 하는 것을,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나는 정말로 너희의 초하루 행사와 정한 절기들이 싫다. 그것들은 오히려 나에게 짐이 될 뿐이다. 그것들을 짊어지기에는 내가 너무 지쳤다. 너희가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를 한다 하여도 나는 듣지 않겠다. 너희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다. 너희는 씻어라. 스스로 정결하게 하여라. 내가 보는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려라.”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교회 직분으로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라고, 장로, 권사, 집사라고 그 직분으로 천국 가는 게 아닙니다.

겉과 속이 같은 자가 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주님을 절대 속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만약 이 ‘요한복음 2장’의 성전을 청결케 하신 주님이 오늘 우리 교회에 오신다면 무엇을 물으실까요? “2023년도 성도는 얼마나 늘었냐? 주일 예배는 얼마나 모이냐? 헌금은 많이 들어왔냐? 교회 성전 시설을 한 번 보자! 다음세대를 위한 프로그램은 뭐가 있냐? 행사는 뭐가 있냐?” 이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묻으시는 것은 “정말 그 마음에 예수를 품고 예수와 함께 사는 사람이 누구냐?”를 묻으실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마음의 중심입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성전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중심의 성전을 보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바라기는 오늘 주신 말씀을 다시 한 번 우리의 마음에 새기며, 우리의 겉과 속이 모두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과 같은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제목: 내 신앙생활이 늘 예수님이 함께하시는 겉과 속이 똑같은 삶이 되게 하소서.

중보 제목: (화: 목장/VIP) 목원들의 삶속에 있는 영적 싸움과 삶의 문제 가운데 평안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반드시 승리하게 하소서. 목원들의 가정 중에 믿지 않는 가족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하시고, 주변의 VIP들이 목장과 교회에 함께할 수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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