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Jesue Christ 3. 요 1:35-51. 예수님과 함께 하려면

2023.12.07 08:56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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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 35-51, 예수님과 함께 하려면, 찬 436장(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낙심하고 실망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사실 환경 때문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께 원하는 것과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다르지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내 상황과 형편과 처지를 바꿔달라고, 능력을 보여 달라고 하지만, 정작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대화하길 원하시고, 함께 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정작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삶보다는 나의 필요를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갈망을 가지면 됩니다. 삶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기 위한 간절함이 있으면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은 특별한 사람이 누리는 삶이 아니라, 그 삶을 갈망하는 사람, 그 삶을 살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갈망을 가지고 드디어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안드레’입니다.

오늘 ‘본문 35-42절’을 보면 ‘세례 요한’의 두 제자, 즉 ‘안드레’와 ‘요한(이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는 ‘베드로’가 아니라 ‘안드레’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며, “보아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라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 갑니다.

그러자 ‘38절’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찾고 있느냐?”

그때에 ‘안드레’가 답하기를 “랍비님!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라고 대답합니다.

이 ‘안드레’의 대답의 의미는 “예수님! 예수님 당신을 원합니다. 예수님과 함께하고 싶습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말씀으로 설명하지 않으시고, “와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의미는 ‘그래! 같이 살아보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그것은 지식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와 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요한복음’ 첫 번째 말씀에서 살펴보았지만,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아기 예수’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동방박사의 이야기도 없습니다. 오직 ‘말씀’과 ‘빛’으로 말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예수님은 과거에 오셨던 아기 예수가 아니라,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내 삶 속에, 내 가정 가운데 말씀과 빛으로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내 삶에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가정 가운데 주님을 갈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삶에 변화가 없습니까? 우리 가정의 믿지 않는 가족들이 아무리 말씀을 전해도 변화도 없고, 은혜도 없습니까? 그렇다면 그 가정에서, 삶에서 예수님을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정에, 나의 삶속에 주님이 함께 하시길 기도하고, 생각하고, 갈망하며 매 순간 주님과 함께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사람은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안드레’의 형제입니다. 그래서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나고, 그 분이 참된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을 깨닫는 순간 그의 형제 ‘시몬’에게 달려갑니다. 진짜 복음을 들어가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가족 구원의 간절함이, 열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드레’는 ‘시몬’에게 가서 “우리가 메시아 만났다”고 전합니다. 이 의미는 평소 ‘안드레’와 ‘시몬’은 메시아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고 즉시 ‘시몬’에게 달려가 “그토록 우리가 찾던 메시아를 만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몬’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데 ‘42절’을 보면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이 의미는 예수께서 ‘시몬’을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아버지를 안다’는 의미는 ‘너의 근본을 알고, 네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갑자기 일방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 ‘42절’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는 너를 게바라고 부르겠다”(‘게바’는 ‘베드로’ 곧 ‘바위’라는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일방적인 선포라는 것입니다.

원래 ‘시몬 베드로’는 어떤 사람입니까? 성격은 과격하고 다혈질입니다. 또 가볍고, 혈기가 왕성하고, 감정의 기복도 크고, 겁도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는 너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단다. 그러나 그 연약하고 부족한 너를 바위 같이, 반석 같이 흔들리는 않는 자라고 부를 것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보실 때 중요한 것은 그의 현재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연약한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장차 이뤄나갈 미래의 비전을 바라보신 것입다. 그리고 이 ‘시몬’을 향한 예수님의 선포가, 그를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로, 교회의 반석으로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6장 16절’을 보면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위대한 신앙의 고백을 하게 되고, 또 ‘18절’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는 놀라운 축복과 언약의 성취를 이루는 위대한 사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대로, 그 말씀을 붙잡고 나갈 때, 반드시 그 말씀을 성취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사람은 ‘나다니엘’입니다.

본문 ‘4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빌립’을 만나서 그에게 “나를 따라오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45절’ 말씀에 빌립은 자신의 친구 ‘나다니엘’을 찾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가 율법 책에 기록하였고, 또 예언자들의 기록한 그분을 우리가 만났습니다. 그분은 나사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입니다.”

그러자 ‘나다니엘’은 ‘46절’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라고 말합니다. 이 의미는 ‘나다니엘’이 예수님을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유대에서 ‘나사렛’이란 지역은 가장 소외되고 버림받은 열악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말 중에 “나사렛에는 선한 것이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비꼬고 낮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했던 말이 “나사렛 예수여”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나다니엘’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 “성경에 분명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어떻게 나사렛에서 메시아가 나올 수 있느냐?”고 묻는 겁니다. 이것은 그가 평소에도 메시아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러자 ‘빌립’이 뭐라고 말합니까? “와서 보시오” 개역 개정은 “와 보라”고 말씀합니다. 바로 복음은 전하는 겁니다. 그러면 역사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47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드디어 ‘나다니엘’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그런데 ‘5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늘이 열리는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하늘이 열린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너의 삶 가운데 이제 하나님의 함께 하신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나다니엘’에게 이런 놀라운 약속을 해 주셨을까요?

그 이유에 대해 ‘47절’을 보면 예수님은 그를 향해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진짜 하나님과 동행하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47절’에 예수님께서 ‘나다니엘’을 가리켜 “거짓이 없다” “앞뒤가 똑같다, 속과 겉이 똑같다”는 의미입니다. 한마디로 그의 신앙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니라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메시아와 함께 하기 위해 갈급한 심령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늘이 열리는 하나님의 임재의 축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하늘이 열리는 은혜와 임재를 경험하는 하나님을 나의 삶의 왕으로 모시고, 예수님과 동행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제목: 내 삶속에서 주님을 갈망하고,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그래서 내 삶과 그리고 우리 가정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가정과 삶이 되게 하소서.

중보기도(목: 지도자들): 담임목사님과 목회자들의 성령충만으로 사명 감당을 하게하소서. 교회를 섬기는 제직/서번트/팀장/목자/봉사자들의 섬김 속에 은혜와 기쁨이 가득하게 하소서. 이 땅의 위정자들이 하나님의 공의 가운데 서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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