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감사의 회복 Rejoice 8 빌 4:1-7  기쁨을 지켜내는 사람

2023.11.17 09:33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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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감사의 회복 REJOICE 8  빌4:1-7  기쁨은 지켜내는 사람   찬 370  주안에 있는 나에게

    빌립소서의 4장은 “기쁨에 굳게 서서 지켜내는 법”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1절에 “굳게 서라”는 표현은 군인이 초소를 지킬때 적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굳게 그 자리에 서서 지킨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날마다 기쁨을 주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기쁨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런점에서 어떻게 기쁨의 삶을 지켜내는지에 대한 3가지 방법을 보겠습니다. 

첫째 기쁨을 지켜내려면 “서로 돕는자가 되라.”  1-4

    빌립보교회의 한가지 문제는 2절에 기록된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다툼’이었습니다. 이 교회는  자주 장사 루디아에 의해 세워져 여성의 역할이 컷던 터라 이 두명의 다툼은 교회에 안좋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3절을 보면 이 둘은 복음에 힘썻고 생명책에 기록된 구원의 확신이 있는 성령충만한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즉 신앙이 좋은 사람도 언제든지 갈등에 휘말려 교회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갈등이란 단어의 “갈”자는 칡나무를 뜻하고 “등”은 등나무를 뜻하는데 둘다 덩쿨나무류로, 하나는 왼쪽으로 다른 하나는 오른쪽으로 돌며 올라가다가 서로 부딧혀서 결국 말라죽게 되어 이 단어가 만들어 진것입니다. 실제로 갈등이 발생하면 항상 해결은 없고 싸움만 일으키다가 결국 둘다 자멸합니다. 마귀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 입니다. 처음 시작은 옳고 그름의 문제 같지만, 지나보면 너도 나도 함께 죽고, 공동체도 어려움을 겪게 만드는 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아무리 기쁨이 넘치는 교회나 성도라도 이런 갈등을 피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쁨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바울은 중요한 말을 합니다. 3절에 “나의 진정한 동지여 이들을 도와주라”. 나의 동지란 바울을 도와주고 있는 빌립보교회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도와 줄 수 있을까요? 여기서 돕는자란 “파라클레토스”로 흔히 성령의 역할을 지칭할때 씁니다. 즉, 일반적인 도움이 아니라 이들이 주님을 바라 볼 수 있도록 성령의 역활을 해주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는 집사님 부부가 싸움을 합니다. 그럼 남편의 말을 듣는 분은 남편을 위로한답시고 아내를 나무랍니다. 아내의 말을 듣는 분은 아내말을 듣고, ‘옳거니’ 하며 맞장구 쳐줍니다. 이건 불난집에 기름을 붓는 것입니다. 진정한 도움은 이 부부가 주님을 바라 볼 수 있도록 권면 하는 것입니다. “아무개 집사 그 마음도 충분히 알지만 우리 함께 기도해봅시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육이 아닐 수 있어,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도하자.” 여러분 기도하면 이사람 저사람이 아니라 주님이 이깁니다. 이민사회에 매일 같이 수많은 분쟁이 있습니다. 회사를 가봐도 가정을 봐도 심지어는 교회에도, 그때 우리는 어떻게 돕고 계십니까? 오늘도 주님을 바라보게 도웁시다.

두번째 기쁨에 굳게 서려면 “서로 관용하는 자가 되라” 입니다. 5

   5절을 보면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바울은 관용을 알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관용의 뜻은 한마디로 “양보하다, 마음을 넓게 쓰다”는 말인데 넓은 마음으로 손해를 감수하고 양보하는 걸 말합니다. 예를 들어 줄설때 내가 먼저지만 서로 양보하는것, 도로에서 내가 먼저지만 다른사람이 먼저 가도록 양보 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근데 그럴려면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정말 가진게 많던가 아니면 가진 건  없어도 마음이 넓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성격 좋은 사람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이어지는 말을 보면, 엉뚱하게 “주님이 가까이 오셨다”는 말을 합니다. 이것은 두가지를 생각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는 “종말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가령 어떤분이 회사동료가 이런저런 편한 일을 낚아채가고 불이익을 받게 해도 웃으며 양보를 합니다. 이유 인즉, 이분이 다음달 회사를 그만 둔답니다. 또 어떤분은 가계를 운영하는데 갑자기 손님의 편의를 막봐주고 직원들도 쉬엄쉬엄 일하게 하고 가끔 물건도 공짜로 나눠줍니다. 알고 보니 다음달에 가계를 클로즈 한다는 것입니다. 종말을 보는 사람은 양보가 쉽습니다. 다른 하나는 주님의 심판을 보는 사람입니다. 어떤 불이익이나 손해를 당해도 그것에 궂이 맞서서 싸우거나 항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왜냐면 주님이 오시면 선악간에 심판하실텐데 궂이 내가 나서서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며 그동안 수많은 사건과 사고를 만났는데 지금에야 조금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란 점입니다. 내가 잘못하든 남이 잘못하든 각각 시간차는 있지만 기억 할 것은 반드시 그것에 보응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믿고 오늘도 어떤 상황을 만나도 기쁨을 유지하며 관용 하시길 바랍니다. 

셋째 기쁨에 굳게 서려면 “ 서로 감사하는 자가 되라”입니다. 6-7

 바울은 결론으로 이 말씀을 합니다. 빌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일에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문맥으로 이해할때. 먼저 주님이 오실날이 얼마남지 않았기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염려는 주님의 뜻이 아니다’란 것입니다. 실제 염려란 원어 의미는 ‘마음이 나누어지다’는 뜻인데 이것은 마귀의 디아볼로란 단어의 뜻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염려하는 것의 통계를 내보면 약 96%가 쓸데없는 염려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 6장의 산상수훈에서 ‘염려가 네 키를 한자나 더 할 수 있냐?’ 말씀합니다. 여기서 키는 몸의 키도 되지만 생명을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고민해도 더 나아지겠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벧전 5:7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기도는 주님께 어려움을 맡기는 시간입니다. 이것은 상담학에서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치유와 회복을 만듭니다. 왜죠? 고백할때 마음의 짐이 듣는 사람에게 전가되면서 가벼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냥 기도가 아니라 “감사하는 기도”라고 말합니다. 이게 비결입니다. “감사”란 내가 고민하는 그문제가 잘되든 못되는 주어진 결과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감사하는 걸 말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진로나 건강을 위해 기도할때 염려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대학이나 직장에 못 갈까봐 또는 질병이 낫지 않을거란 부정적 결과 때문입니다. 그런데 감사란 어떤 결과에도 그것이 최선이란걸 믿는 신앙의 최고봉인 것입니다. 이런 감사를 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평화” 라는 단어는 신구약 통틀어 여기만 쓰인 아주 희귀한 표현입니다. 왜냐면 천국의 기쁨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염려 앞에서 하나님께 맡기고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면 하늘에서 경험 할 수 있는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신 화상을 입었던 이지선씨에게 ‘다시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때 어떤 모습으로 살길 원하느냐?’ 질문했을때 ‘이 모습 이대로 좋다’고 했습니다. 이 고백은 이 땅의 고백이 아닙니다. 결과가 이렇듯, 저렇듯 중요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인생입니다. 이런 사람의 기쁨을 누가, 그 무엇이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있는 이 기쁨을 오늘도 감사함으로 지켜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오늘도 우리안에 기쁨을 굳게 세우도록 주님의 권면을 나누는 가정이 되게하소서 주님의 관용으로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서로 나누며 사랑하고 세워가는 가정과 일터가 되어 주님의 기쁨을 충만케 하는 복된 하루가 되게하소서

중보제목: (금:선교지/모든예배/추수감사절) 16곳의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모든 예배(주일/새벽/목장)를 위해서, 이번 감사절에 초대된 VIP들이 주님을 만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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