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감사의 회복 Rejoice 5. 빌 2: 19~30,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성도
2023.11.14 09:48
예수인교회
빌 2: 19~30,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성도, 찬 288장(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빌립보서’의 말씀은 기쁨의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성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넘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이 자신은 지금 로마의 감옥에 갇혀 빌립보 교회에 속히 가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가장 믿고 사랑했던 두 사람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교회에 보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바울’은 ‘29절’에 빌립보 교회에 이 두 사람을 보내면서 “그와 같은 이들을 존경하십시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존경하다’라는 의미는 ‘기쁨으로 높이 들어 올리다’란 뜻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를 헬라어 성경을 보면 높이 들어 올리는 주체가 ‘하나님’으로 되어 있습니다. 바로 우리를 존경받게 만드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의미 안에서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자를 하나님께서 높이신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바울’은 이 두 사람을 보내는 이유를, 오늘 본문 ‘2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에게는, 디모데와 같은 마음으로 진심으로 여러분의 형편을 염려하여 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 말은 비록 ‘사도바울’의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뻐하고 주님의 일을 감당할 사람은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단 두 사람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바울’은 본문 ‘21절’에 자신의 주변에 있는 그 수많은 사람들을 이렇게 말합니다.
“모두 다 자기의 일에만 관심이 있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여기서 ‘자기의 일’이란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일’을 의미합니다. 즉 내게 유익이 되고, 즐거움이 되는 일에만 관심이 있고, 그리스도의 일, 즉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 수고하는 것, 희생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장을 원어 성경을 살펴보면 ‘사도바울’은 ‘자기 일’은 ‘주인’으로 ‘예수의 일’은 ‘손님’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이 의미는 ‘사도바울’의 주변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일에는 열심을 다했지만, 주님의 일에는 ‘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하겠지’하는 생각으로 소홀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교회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높임 받고, 인정받는 일, 리더로 세워지는 일에는 내가 주인이 되어 열심히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일, 힘든 일, 굳은 일에는 주인 아니라 손님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신앙생활도 ‘자기의 일’, ‘자신의 유익을 위한 일’로 믿는 교인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조금 거짓말해도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요? 세상 사람들 다 그렇게 하기 때문입니다. 주일에 교회 한 번 나가지 않아도 별 마음에 부담이 없습니다. 다들 그러기 때문입니다. 전도를 안 해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왜요? 남들도 다 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다 자기 일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그들은 숫자만 많았지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이외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이 두 사람의 어떤 모습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첫 번째는 디모데는 ‘복음의 사람’이었다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2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디모데의 인품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듯이 복음을 위하여 나와 함께 봉사하였습니다.”
여기서 ‘사도바울’은 ‘디모데’를 ‘복음을 위하여 나와 함께 봉사하였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봉사하다’라는 뜻은 ‘헌신하다, 고난을 함께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교회를 오래 다니고, 신앙이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모두가 복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그 큰 은혜를 누리는 성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부담이나 어려움이 아니라 기쁨이고 감격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사람은 그 삶에서 기뻐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구원을 받은 성도가 누리는 ‘기쁨’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보면 이 뜻은 ‘펄쩍 펄쩍 뛰다’라는 뜻입니다.
바로 구원의 은혜와 감격 때문에 밖에 나가 펄쩍 펄쩍 뛰며 외친다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구원의 감격을 도저히 억제할 수 없어서,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나가서 구원의 기쁨을 외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복음이며, 성도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에바브로디도’는 하나님의 일에 함께하며 앞장서 수고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25절’을 보면 ‘에바브로디도’를 가리켜 바울은 “내 형제요 동역자요 전우요 여러분의 사신이요 내가 쓸 것을 공급한 일꾼”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에바브로디도’는 ‘바울’과 함께 하고, 빌립보 교회와 함께 하면서 그리스도를 위한 모든 일에 함께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과 ‘빌립보 교회’를 위하여 함께 헌신하고, 함께 고생하며, 함께 나누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믿음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는 ‘사도바울’이 로마에 갇혔을 때, ‘빌립보 교회’의 정성어린 선교헌금을 전하는 일에 함께 했고, ‘빌립보 교회’를 대표해서 옥중에 있는 ‘바울’을 돕는 일에 함께 하기 위해 ‘바울’과 함께 옥살이를 자청했습니다. 또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복음을 위한 싸움에 바울과 함께 했고, 재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바울의 선교사역을 위해 쓸 것을 힘써 지원함으로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30절’에 ‘에베브로디도’를 “그는 그리스도의 일로 거의 죽을 뻔하였고, 나를 위해서 여러분이 다하지 못한 봉사를 채우려고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으면 세 가지 ‘뻐’ 자가 들어가는 삶을 산다고 합니다.
바로 “기뻐지고, 예뻐지고, 바뻐진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아 기뻐지고, 은혜 받아 마음이 예뻐지며,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바뻐진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런 성도의 삶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은혜와 기쁨 가운데 사는 성도는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와 같이 하나님과 교회로부터 기쁨이 되는, 하나님이 높이시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 제목: 내 삶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복음 전도의 삶을 살게 하소서. 내 유익이 아니라 주님의 유익을 위해 살게 하소서. 우리 가정, 직장, 목장, 교회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 하나님이 높여 주시는 축복을 받게 하소서.
중보 제목: (화: 목장/VIP) 우리 목장이 주님의 일에 앞장서는 목장이 되게 하소서. 목장 마다 영적 싸움에 승리하고, 목원들의 삶 속에 주님의 기쁨이 넘치게 하소서. VIP 초청 추수감사절을 통해 목장마다 기도하는 VIP들이 목장과 교회에 함께할 수 있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