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가을 특새 FOCUS 22  삼상 23:1-14   하나님께 묻는 자

2023.11.01 10:43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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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가을 특새 FOCUS 22  삼상 23:1-14   하나님께 묻는 자  찬545/통344 이눈에 아무증거 아니뵈어도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크고 작은 선택과 결정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결정을 하십니까? 아둘람굴에서부터 다윗은 항상 하나님께 먼저 묻습니다. 그는 삼상 30장에도 아말렉을 쫓을때에도, 삼하 5장 불레셋과 두번의 싸움에서도 그때마다 하나님께 물으며 대승을 이룹니다. 다윗의 승리에 중심에는 하나님께 물으려는 신앙의 자세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묻는 자는 3가지가 달라집니다. 

첫째, 하나님께 묻는 사람은 “보이는 것을 믿지 않는다.”

    1-2절에 그일라 지역에 블레셋이 약탈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제일 먼저 하나님께 묻습니다. 다윗에게 달라진 중요한 변화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군사들은 모두 반대했습니다. 왜냐면 그일라는 예루살렘 근교였고 사울왕이 언제든지 달려와 다윗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보이는 상황과 들리는 말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보이는 것, 들려지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상식이나 경험 또는 느낌이 너무 확실하다고 생각하면 기도하지 않고 결정합니다. 여호수아의 실패가 그랬습니다. 여호수아 9장에서 기브온 거민은 여호수아와 화친을 맺을때 보이는 행색을 불쌍하게 꾸미고 거짓말로 다가왔습니다. 여호수아는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여 그들과 화친합니다.  결국 기브온은 평생 이스라엘의 올무가 되어 찌르는 가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경비행기의 교관은 가르칠때 제일 먼저 자기 느낌으로 조종하지 말고 반드시 계기판만 보고 조종하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비행기가 하늘로 솟구치거나 회전을 하게 되면 땅과 하늘이 구분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올라간다고 느끼는데 실제로는 내려가고 있고, 내려간다고 생각하는데 올라가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비행착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계기판이 중심이 되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면 “자기착각”에 빠집니다. 내가 다 안다고 생각하여 내 감정, 느낌, 이성을 의존하려고 합니다. 인간의 느낌과 확신도 “하나님”을 대신하지 못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절대적이고 완전하다는 믿음을 갖을때 먼저 하나님의 계기판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확실해 보여도 먼저 하나님께 묻고 기록된 말씀의 계기판에 비추어 보시길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께 묻는 사람은 “사소한 것도 기도한다.”

    다윗은 그일라 사건 이후 블레셋을 무찌른후 그곳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러나 곧이어 사울왕이 알고 다윗을 치려고 모의 한다는 소식이 들립니다.(7-8절) 이때 다윗은 또다시 하나님께 묻는데 세밀한 부분까지 묻습니다. 11-12절까지 보면 “사울이 오겠습니까? 안오겠습니까?”, 그일라 주민이 나를 넘겨주겠습니까? 안넘겨주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600명의 리더로서 너무 세세한것까지 물으며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이 프리웨이로 갈까요 로컬로 갈까요? 지금 일어날까요? 나중에 일어날까요? 이런거죠. 다윗이 쓴 시편을 보면 그는 이처럼 수시로 크고작은문제를 하나님께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시 5:3)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시 25:5)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다윗의 기도는 위기의 때만이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도 기도했다 점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잠 3:6에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그가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했는데 여기서 범사가 뭐냐면 영어로 ‘trivial’이라는 말로 ‘사소한 부스러기’라는 말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사소한 일이라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왜냐면 사건은 갑자기 큰일이 터지기 보다 사소한 문제에서 시작될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1982년 4월 경남 의령에서 우범곤이라는 순경이 마을주민 56명을 총으로 살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의 발단이 정말 사소했습니다. 우순경이 낮잠을 자는데 같이 살던 동거녀가 우 순경의 가슴에 앉아 있는 파리 한 마리를 잡는다고 파리채로 가슴을 찰싹 때렸습니다. 이것이 발단되어 싸우다 우 순경이 격분하여 이런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부부관계 자녀관계 학교나 직장동료관계속에도 결국 작은 말 한마디로 초가삼간을 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소한 것도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빌 4:6에도 중요하고 큰 일만 기도하라고 말씀하지 않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합니다. 또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하고,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엡 6:18; 살전 5:17). 오늘도 사소한것부터 하나님과 대화하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께 묻는 사람은 “결과를 주님께 맡긴다”

가장 중요한 결론입니다. 원치 않는 상황에 순종했다면 결과가 좋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일로 사울왕은 다윗일행의 위치를 파악했고7-8절처럼 곧바로 그일라의 성읍으로 쳐들어 오려고 합니다. 이 장면만 본다면 다윗은 배신감과 좌절을 느껴야 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인도속에 그일라로 왔고, 그일라 사람들을 도와 줬기 때문에 그들이 다윗을 보호해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을 블레셋으로부터 도와준 다윗 일행을 보호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속에 다윗은 자신의 배신감이나 상한 감정의 영향을 받지 않고 또 다시 하나님께 묻습니다. 어떻게 보면 배신감에 그일라 사람들을 공격하고 도망칠수도 있었지만 그는 조용히 떠돌이 신세를 선택합니다.(13절) 우리도 신앙생활하다 보면 열심히 전도해서 교회에 데리고 왔는데 그사람이 나에게 상처줄때가 있습니다. 사랑으로 섬겼는데 나를 비방할때도 있습니다, 기도하고 순종했는데 상황이 어려워질때도 있습니다. 그럴때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에 대한 낙심과 원망이 찿아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주님을 신뢰하며 그 자리를 피합니다. 놀라운 점은 그의 순종을 통해 그일라 사람도 살고, 다윗도 살고, 사울왕도 범죄하지 않게 됩니다. 모두가 윈윈 하게 된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를 생각해 볼수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으로 시작했다면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주어지는 상황과 환경만 보고 성급하게 판단하기 보다는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결과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어느 분은 기도하던 좋은 집을 못사게 되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것보다 더 좋은 집을 얻게 되었습니다. 결과가 내가 원하는데로 나오지 않았을지라도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의연함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결과를 주님께 맡기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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