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가을 특새 FOCUS 20 삼상21:1-15 실수 속의 하나님
2023.10.27 07:50
예수인교회
20일 가을 특새 FOCUS 20 삼상21:1-15 실수 속의 하나님 183장/172 빈들에 마른풀 같이
그동안 다윗은 승승장구 늘 이기는 싸움을 해왔습니다. 근데 21장부터 시작하는 다윗의 이야기를 보면 승리의 다윗이 아니라 계속 패배하고 실수하는 다윗의 비참한 모습이 등장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왜 성경은 이런 실수와 실패의 장면을 승리와 함께 다루는가?”입니다. 아브라함이 거짓말하는 장면, 야곱이 실수하는 장면,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에 거부하는 장면등, 왜 이런 장면을 여과없이 넣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모든 실수와 실패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결국 승리로 만드시는 선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등장하는 다윗의 실수속에 어떤 하나님이 계신지 살펴봅시다.
첫째 우리의 실수 속에 “긍휼의 하나님이 계십니다.”
1절 다윗은 높으로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렀다. 아히멜렉이 떨면서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물었다. 동행자도 없이 어떻게 혼자 오셨습니까? 다윗은 사울의 사위면서 군대장관이었기에 절대 혼자다니는 법이 없었는데 홀로 아히멜렉을 찿아온것에 그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근데 이 질문에 다윗이 급한대로 거짓말을 해버립니다. 2절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임금님의 명령을 띠고 길을 떠났습니다. 임금님이 나에게 임무를 맡기면서 부탁하시기를 나에게 맡기신 임무를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부하들과는 약속된 곳에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뭐죠 사울의 비밀임무를 맡고 간다고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제사장에게 거짓을 말합니다. 거기다 5-7절까지 살펴보면 그는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거룩한 빵 하나님께 드려야 할 빵까지 먹어버리게 됩니다. 사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해서는 안될일이었습니다. 간혹 우리도 급하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하나님께 드려야 할 물질이나 사명을 함부로 대할때가 있습니다. 이럴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면 이일로 아히멜렉과 그의 일가족 70여명은 22장에서 사울왕에게 죽임을 당하게 됬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거짓말로 인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여러분 “거짓의 아비는 마귀”(요8:44)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것에 대한 책임이 발생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윗의 실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8절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또 한가지를 물었다. 제사장님은 지금 혹시 창이나 칼을 가지고 계신 것이 없습니까? 저는 임금님의 명령이 너무도 급하여서 나의 칼이나 무기를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무슨말이죠 사울에 대한 두려움에 쌓이자 그는 아무 칼이나 무기를 달라 합니다. 그러나 그는 몇년전 물맷돌로 골리앗을 죽인 다윗이 아닙니까? 그는 창검을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임에도 문제속에서 대적에게 집중되니까 세상의 힘과 경험과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이 된것을 말합니다. 이런 실수속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긍휼의 하나님”입니다. 여기서 아히멜렉이 다윗의 거짓말을 몰랐을까요? 성경학자들은 짐작했을거라 말합니다. 왜냐면 7절에 사울의 수하였던 도액이 이미 그곳에 와 있었기에 1절에 아비멜렉은 다윗을 보자 떨었습니다. 다윗의 수배령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왜 알고도 다윗의 거짓을 도왔을까요? 마12장에서 예수님이 이사건을 풀어줍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에 곡식을 따먹어서 이것을 책망하자 7절에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말하면서 아히멜렉의 긍휼을 “하나님의 긍휼”로 설명해 줍니다. 긍휼이란 “불쌍한 자에게 자비를 베푼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불쌍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들이 거짓말 할때 다 알면서도 넘어가 주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기억할 것은, 우리가 두려운 나머지 실수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했어도 가끔 일이 잘풀리거나 넘어간다면 나의 거짓이나 잘못이 정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이었음을 기억하고 실수를 바로잡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히멜렉은 다윗이 무기를 필요로 하자 9절에 골리앗을 죽일때 썻던 칼을 내줍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센스가 보이는 장면입니다. 다윗은 이 칼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어릴적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 큰 골리앗도 쓰러뜨렸던 내가 지금 뭘하고 있지”라며 돌이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마치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을때 닭울음소리를 통해 깨달았던 것처럼 돌이킴을 위한 장치 였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실수속에서도 긍휼의 하나님을 바라볼때 소망이 있습니다.
둘째 실수속에 “회개의 하나님이 계십니다”
다윗은 더이상 거할곳이 없자 10절에 가드왕 아기스에게까지 갑니다. 가드는 이스라엘의 원수인 블레셋의 수도입니다. 마치 우리나라 모든 행정을 진행했던 국무총리가 대통령에게 찍혔다고 북한에 귀순한것과 같은 원리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적군에게 나라의 중요한 정보를 유출하고 나라전체를 큰 위기에 빠뜨릴수도 있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나님의 사람이 한것입니다. 왜그랬죠. 10절을 보면. 다윗이 거기를 떠나 그날로 사울에게서 도망하여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갔다. 원어표현을 보면 “사울을 두려워하여…”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사람이 무언가 (진로, 대적, 문제) 두려움에 빠지게 되면 일반적으로 4가지 단계를 거친다고 합니다. 먼저 자기 페이스를 상실합니다. 그래서 해서는 안될일을 하거나, 해서는 안될 말을 서슴없이 던집니다 두번째는 모든 관계를 깨뜨립니다. 자기 통제가 안되다 보니까 작은것에 화를 내며 가정과 교회안에 관계가 깨집니다. 세번째는 “고립 (아이솔 레이션)”입니다. 상처를 주고 떠나 고립이 되는데 이때 심각한 우울증을 앓거나 심한 경우 공황장애를 앓게 됩니다. 결국 네번째가 죽음을 고민하는 막바지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사역할때 그런 청년 몇명이 목숨을 읽었던 일이 있습니다. 마귀는 지금 다윗을 죽음으로 초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돌이켜야 합니다. 12절에 보면 다윗은 아기스의 이말을 듣고 가슴이 뜨끔햇다. 이 뜨끔했다는 원어표현속에 두려웠다는 의미도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깨달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자기의 길이 잘못됬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때 그는 갑자기 침을 흘리며 미친짓을 합니다. 그리고 그걸 통해 가까스로 그 자리를 도망쳐 나옵니다. 그리고 쓴 책이 바로 시편 34편입니다. 제목이 “아기스왕에게서 미친척하다가 쫓겨나서 지은시” 제목이 이겁니다. 시34:4-6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둘여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란에서 구원하셨다. 그는 잘못된 길을 갈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거기서 돌이킬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위대함입니다. 가롯유다와 베드로의 차이는 똑같이 실수했습니다. 그런데 가롯유다는 가던길을 계속갔고 베드로는 돌아온 것입니다. 사울왕과 다윗의 차이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울왕은 수많은 실수속에 하나님께 돌아오는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사울과 다윗의 차이를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완벽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똑같이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근데 하나님의 사인을 볼때 돌아올 줄 아는 사람입니다. 왜냐면 실수속에 하나님의 긍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반드시 일으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실수한 자녀와, 실수한 배우자, 실수한 지체들을 일으켜 주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