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가을특새 FOCUS 18  삼상19:8-24  안전지대

2023.10.27 07:40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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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가을특새 FOCUS 18  삼상19:8-24  안전지대    찬438/통495 내영혼이 은총입어.

   1979년 10월 26일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고박정희 대통령 암살이 일어났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자리에는 육군참모총장, 대통령 경호실장등 대한민국에서 최고권력가들이 함께 있던 이른바 가장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가장 권력자인 대통령이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어이없이 죽은 사건입니다. 세상에 완전한 안전지대가 있을까요? 오늘 다윗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다윗이 어디를 가도 사울은 언제나 쫓아오는 이야기 입니다. 마치 우리 이민생활 같습니다. 이번에 잘 피했다 싶으면 또 문제가 생기고, 자녀문제가 끝나면 배우자문제, 교회문제, 목원문제 등등 우리의 인생에 어떻게 안전지대를 만들어 갈 수 있는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그것을 보길 원합니다.

첫째 안전지대는 “하나님의 보호를 보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합니다. 문제는 우리의 시선이 늘 ‘부정적’이란 점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들을 부정적으로 해석해 봅시다. 오늘9절에 “사울은 또 다시 악신이 들면서 다윗을 모든 신하앞에서 죽이려고 창을 던졌습니다.” 사울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그렇습니다. 매번 기대해도 안 바뀝니다. 이럴때 우리는 좌불안석이 됩니다. 다윗은 본능적으로 안전지대를 찾습니다. 11절에 “사울의 딸 미갈과 함께 있는 집에 있으면 괜찮겠지?” 그러나 사울은 거기도 부하를 보내서 죽이려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또 다른 안전지대를 찾았는데 그곳이 18절에 사울이 가장 두려워 하는 사무엘 선지자가 있는 ‘라마나욧’이었습니다. 설마 여기까지 쫓아올까?”했는데 거기도 사울은 무려 3번씩이나 암살자들을 보내서 죽이려고 하는 것이 바로 오늘의 이야기입니다. 이 만큼 했으면 뭡니까? 사울이 지배하는 이스라엘 어디에도 ‘안전지대’는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비참한 우리의 인생이야기 같습니다. 어떻게든지 잘해 보려고 이것, 저것 해보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또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는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럴때 내속에 ‘왜 신앙생활은 이렇게 힘든걸까?’, ‘도데체 하나님은 뭐하시는걸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똑같은 사건이지만 대적을 보지 마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보면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해석됩니다.

     10절에 사울이 창을 던졌는데, 하나님은 다윗을 피하게 하셨습니다. 12절에 사울이 미갈의 집에 병사를 보낼때도 하나님은 도망치게 해주셨습니다. 18절에 라마나욧에서도 세번이나 암살범들이 왔고, 사울까지 출동했지만 전혀 다윗은 털끝하나 손대지 못했다는 이야기로 마칩니다. 사실 이 사건을 부정적으로만 보면 “어디를 가도 안전지대가 없는 다윗”의 이야기 같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어디를 가도 하나님의 보호가 안전지대를 만든다”는 은혜의 말씀이 됩니다. 어느 여집사님이 직장때문에 힘들어 했는데 갑자기 교통사고까지 나서 직장도 못나가고 차수리 때문에 골치아프게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나님 왜 되는게 없습니까?” 했는데 갑자기 하나님이 “감사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도데체 이상황에 뭘 감사하라는 건가?’ 고민중에 찾아보니 그래도 차가 크게 망가졌는데 자기 몸은 말짱해서 감사했답니다. 그리고 덕분에 억지로라도 직장을 쉬게 되어 감사했고, 차수리비까지 나오게 되어 감사했답니다.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를 생각해 보니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고 계셨습니다.”라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광야같은 이민생활을 하며 늘 삶이 불안정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주님의 보호하심을 바라보십시오 그나마 주님이 보호하시기에 이 정도인줄 믿습니다. 주예수와 동행하면 그어디나 하늘나라”란 주님의 보호와 동행을 바라봐야 보이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께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두번째 안전지대는 “라마나욧이 되게 하라”

    불안과 두려움속에 다윗은 안정감있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그곳은 18절에 사무엘이 거하는 ‘라마나욧’이란 곳입니다. ‘라마’란 선지자 사무엘이 태어난 고향의 지명이고 “나욧”이란 공동체 마을이란 의미로 풀어보면 “선지자들의 집”이란 의미로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곳까지 다윗을 죽이려고 3차례나 살기등등한 병사들을 보냈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21절 사람들이 사울에게 이 소식을 알리니 사울이 다른 부하들을 보냈으나 그들도 춤추고 소리치면서 예언을 하는 것이었다. 사울이 다시 세번째로 부하들을 보내니 그들도 마찬가지로 춤추고 소리치면서 예언을 하였다.” 사울이 살기 등등한 암살병들을 무려3번이나 찿아왔는데 모두 성령충만해져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가 가정과 목장과 교회와 선교지에 있길 바랍니다. 라마나욧은 누구라도 들어오면 변화받고 회복되어 가는곳 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라마는 “선지자”라는 뜻이고 나욧은 “집”이라는 뜻입니다. 즉 선지자 들의 집이란 뜻으로 사무엘이 제자들을 키우는 곳이었습니다. 지금말로 표현하면 성령충만한 신학생들이 가득한 신학교나 기도자들이 가득한 기도원 같은 곳이었습니다. 이런 영적분위기속에 악한 병사들이 들어간 것입니다. 유럽의 한 학자가 연구한 결과 자녀들이 책을 읽게 하려면 “책을 읽어라”라고 말하기 전에 “책읽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라고 말했습니다. 거실에 TV대신에 책을 두고 가족이 모두 책읽는 분위기를 만들면 자녀는 자연스럽게 책을 읽게 된다는 것입니다. “분위기와 문화”가 사람을 바꿉니다. 다시 본문을 보십시오. 이번에는 가장 미움과 악신이 들어있던 사울왕이 직접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라마나욧으로 찾아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됩니까? 24절 사무엘앞에 이르러서는 옷까지 벗어버리고 춤추고 소리치면서 예언을 하고 나서 그날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쓰러져 있었다. 모든 갑옷과 무기를 버리고 무장해제 완전히 악신이 떠나고 자유와 평안과 은혜가 충만해진걸 말합니다. 은혜의 장면입니다. 어떤 괴수나 죄인이 와도 씻겨지고 자유케 되는 곳, 이곳이 그리스도인의 가정이고, 목장이고, 교회가 되야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여전히 가정에 와도 목장에 가도 교회에 가도 안정감이 없고 평안함이 없습니다. 왜그럴까요? 라마나욧이 되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있는 곳을 라마나욧이 되게 하면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가 나타납니다. 내가 서있는 부부관계의 대화 분위기를 바꾸어 보십시오. 일터와 만나는 사람들의 영적 분위기를 라마나욧이 되게 해보십시오. 그때 하나님의 나라가 만들어 질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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