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가을특새 FOCUS 3 삼상2:12-26 소망에 집중하라
2023.09.28 12:48
예수인교회
20일 가을특새 FOCUS 3 삼상2:12-26 소망에 집중하라 찬302/통408 내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돋보기로 햇빛을 한점에 포커스 하면 모든걸 태우는 에너지가 발생하지만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아무리 오래 있어도 변화는 없습니다. 장벽을 무너뜨리고 시험을 이기는 힘은 집중력/ 포커스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힘과 에너지를 어디에 집중 하는가?”입니다. 자기소견대로 살아가던 사사시대에 하나님은 우리가 집중해야할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집중해야 할까요?
첫째 집중할 소망은 “어둠속에서 사무엘을 보는 것”입니다 13-21
오늘 본문 13-17절까지 말씀을 대략 정리해 보면 엘리제사장의 두아들이 저지른 죄악을 설명합니다. 그 하나가 제사를 드리고 그 제물을 삶아 고기를 나누게 되는데 이들은 고기를 삶을때 규정대로 하지 않고 가마솥에 갈고리를 던져서 먼저 걸리는 걸 마음대로 가졌다고 기록합니다. 레위기7장과 신명기18장을 보면 제사장이 먹는 부위는 하나님이 정한 넓적다리와 어깨부위 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 말씀과 질서를 무시했다는 의미입니다. 거기다 제물의 기름을 태워서 그 향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하는데 기름이 떼기도 전에 삶은 것 말고 날것을 원해서 먼저 고기를 가져가 버렸다는 점입니다. 예배의 절차와 관례와 의미 모두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12절에 한마디로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빳다 그들은 주님을 무시하였다.”로 표현했습니다. 이것을 단순히 보면 엘리제사장의 가정이 자녀교육에 실패했다는 것과 그로 인해 예배가 타락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더 확대해서 볼때, 당시 예배는 지금과 다르게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대변하는 종합적 행위였습니다. 즉 이것은 하나님의 질서와 통치를 무시하고 오직 자기 경험과 생각과 소견을 따라 사는 사사기 시대와 그로 인해 세워진 자녀세대들의 단면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혼란과 무질서의 세대속에서 전혀 다른 인물에게 집중 하는데 그것이 18절부터 등장하는 사무엘입니다. 18절 한편 어린 사무엘은 모시 에봇을 입고 주님을 섬겼다. 당시 모시 에봇은 제사장이 입어야 하는 옷인데, 옷이 무겁고 까칠해서 아이들이 입기에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거운 짐을 입고 까칠한데도 아이가 그대로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엘리의 자녀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비교를 통해서 다양한 관점을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무엇을 보는가?” 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사무엘도 엘리제사장의 자녀들과 똑같아 질 수 있었습니다. 왜냐면 엘리제사장의 집에서 그들의 교육과 그런 분위기를 보며 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랬을까요? 18절과 21절을 보면 사무엘은 그들을 보지 않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자랐다고 말합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에서 토끼가 어처구니 없이 진것은 결승골을 본게 아니라 거북이를 쳐다보며 갔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시대와 흐름에 집중하지 않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길이어도 “오직 주님께 집중 했다”고 말합니다.
또 하나는 “사무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격려가 됩니다. 엘리제사장의 가정처럼 암울하고 타락한 시대와 일상을 보면 낙심이 되고 하나님께 실망하며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하나”라며 자포자기 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때에 하나님은 사무엘과 같은 사람들을 통해 우리에게 소망을 준비하신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가끔 직장이나 학교에서 또는 교회에서 절망적인 분위기나 상황에 실망하거나 낙심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잘 찿아보십시오. 그곳에 하나님은 사무엘 같은 사람을 준비해 놓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 항상 짉흑같은 어둠속에 사무엘을 준비하신 걸 볼 수 있습니다. 우상이 만연한 갈대아 우르에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새로운 민족을 만드셨고, 타락한 애굽의 종살이를 할때에도 하나님은 갈대상자에 모세를 준비하셨고. 이스라엘의 포로기에도 고레스를 통해 소망을 만들어오셨습니다. 그 소망에 집중해야 합니다. 나의 한정된 자원과 가치를 무가치한것에 소비할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가능성에 집중할 것인가? 오늘도 그 선택의 기로에서 사무엘을 바라보는 예수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집중할 소망은 “잘못속에서 회개를 보는 것”입니다. 22-26
이것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사람을 바꾸거나 시대를 바꿀때 일으키는 것이 바로 회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늘 바른 생활만 할수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잘못을 저지를 때가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바른 생활보다 더 요구되는 것은 바로 돌이키는 것, 회개하는 것입니다. 오늘 엘리와 그의 아들들은 나중에 하나님의 큰 징계를 받고 계보가 끊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중요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주님께 잘못했고 예배와 공동체를 문란하게 만들었고 성도들을 잘 일깨우지 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근데 그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수많은 깨달음 속에서 돌이키질 않았다는 점입니다. 25절 사람끼리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중재하여 주시겠지만 사람이 주님께 죄를 지으면 누가 변호하여 주겠느냐 아버지가 이렇게 꾸짖어도 그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다. 주님께서 이미 그들을 죽이려고 하셨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들이 징계를 받은 것은 아버지가 아무리 이야기 해도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다른 잘못보다 회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두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회개도 은혜”라는 점입니다. 아무나 회개 할 수 있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내가 깨닫고 돌이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언제나 회개하면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직통계시의 말씀이 아니라 엘리아버지의 말이었다는 것입니다. 22절에 보면 엘리는 이미 많이 늙었다고 기록합니다. 영안이 흐려져 있었고 통찰력도 없고 자기몸도 잘 못가누고 제사장이기는 하지만 아무도 엘리의 말을 듣지 않는 허수아비 권위자 였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말에도 듣고 회개하면 거기 소망이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설교시간외에도 하나님은 무능력한 자녀를 통해서나, 배우자나 직장 동료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회개할때 하나님은 시대와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소망을 다시 만들어 가신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집중하는 예수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소망에 집중하는 기도: (성령을 의지하여)
어둠속에 빛을 예비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하시고 오늘도 우리의 삶과 행위를 돌아보아 돌이킬수있는 용기와 은혜를 주옵소서
중보기도:
(목: 지도자들을 위해서) 교회의 지도자들과 세상의 위정자들과 통치자들 그리고 민족의 대통령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