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의 땅을 향해 66. 출 33: 12-23,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는 자의 기도
2023.08.31 10:19
예수인교회
출 33: 12-23,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는 자의 기도, 찬 406장(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본문 말씀은 ‘32장’에서 시작된 이스라엘 백성의 ‘금송아지 사건’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금송아지 사건으로 ‘33장 1-11절’ 말씀에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머물던 시내 산에서 떠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그들이 간절히 원했던 그 축복만은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이스라엘과 ‘함께 가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오늘 본문 ‘12- 23절’ 말씀입니다. 모세는 회막 안에 들어가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끊으시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간구하고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12절에 자신이 정말 ‘주님께 큰 은총을 입었다’면 주님께 구하는 간절한 기도를 응답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모세가 주님께 간구하는 기도의 내용을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면서 이 기도의 간구가 우리의 삶의 기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는 모세의 기도는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었습니다.
13절에 모세는 이 백성을 인도하는 사명을 하나님께서 주셨으면서 왜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시냐고 주님께 질문합니다.
그러면서 15절, 16절을 보면 이렇게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주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려면, 우리를 이 곳에서 떠나 올려 보내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면,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이나 저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저 자신과 주님의 백성이 땅 위에 있는 모든 백성과 구별되는 것이 아닙니까?”
모세의 이 간구는 ”하나님! 아무리 복된 가나안 땅이라 할지라도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 없이는 그곳에 갈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이 있을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며,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가나안 땅에 가지 않겠습니다”라는 간절함의 간구였던 것입니다.
이 고백이 얼마나 하나님을 감동시켰겠습니까?
그래서 17절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잘 알고, 또 너에게 은총을 베풀어서, 네가 요청한 이 모든 것을 다 들어 주마.”
그리고 14절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가겠다. 그리하여 네가 안전하게 하겠다.”
개역개정 성경을 보면 여기서 “안전하게 하겠다”라는 말씀을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단어는 “쉬다, 평안을 누리다, 안식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안식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참된 평안과 안식을 어떻게 누릴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고, 건강이 회복되면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잠시는 기쁘고 평안을 누리는 것 같지만, 금방 또 다른 문제로 우리는 근심과 걱정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과 동행할 때, 우리는 참된 평안과 쉼과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큰 은총을 입은 모세의 기도는 ‘주님의 백성이 구원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13절을 보면 모세는 하나님께 만약 자신이 주님께 큰 은총을 입은 것이 맞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주님의 백성’으로 여겨 달라고 기도합니다. 주님께 범죄한 이 백성을 버리지 마시고 주님의 백성을 삼으사 구원을 베풀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가 출애굽에서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때, 특히 ‘10가지 재앙’을 내리시며 이집트의 바로에게 말씀하실 때의 장면을 보면, 하나님께서 꼭 사용하시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을 바로 “내 백성, 내가 택한 나의 백성”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백성이 죄를 짓고, 거룩함을 상실하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33장 1절에는 “모세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이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내 백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는 이 말씀에 크게 놀라 13절에 이렇게 간청합니다.
“주님께서 이 백성을 주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한미다로 ‘이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삼아달라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우리의 가정과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의 아이들을 생각했습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들을 보시며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시지 않으시고 “너의 자식, 너의 아이들”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실까?
내가 “하나님! 제 아이들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 백성입니다.”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아니다. 어떻게 네가 네 마음대로, 세상의 방법대로, 세상의 성공과 출세를 쫓아서 ‘내 새끼, 내 새끼’ 하면서 키워놓고 이제 와서 그 아이들을 내 백성,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느냐?”라고 물으시면 무엇이라 변명을 할 수 있을까? 이 말씀을 묵상하며 너무 두려웠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방법대로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은혜를 입은 모세의 기도는 ‘주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18절을 보면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그 약속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간구합니다.
여기서 ‘모든 영광’이란 단어는 ‘선한 형상’이란 뜻으로 ‘하나님의 선한 능력이 나타나 하나님이 증거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다’는 것은 지금 내 삶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며, 동시에 주님의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 삶을 통해 드러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내 삶을 통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들어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내 삶에 하나님의 선하신 능력이 나타나는 삶을 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백성의 삶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이 나타나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조롱과 욕을 먹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위해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버리셨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내 삶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삶속에서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내 삶에 필요를 채우는 것에 더 관심과 집중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9절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나의 모든 영광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나의 거룩한 이름을 선포할 것이다. 나는 주다. 은혜를 베풀고 싶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불쌍히 여기고 싶은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
주님은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불쌍히 여김을 받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의 은혜와 그 긍휼을 사모하며 삶속에서 주님의 영광을 구하여 주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우리의 삶속에서 날마다 풍성하게 경험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제목: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가정과 자녀와 이웃들이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구원받고, 내 삶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능력이 나타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되게 하소서.
중보 제목(목: 지도자들): 담임 목화자/교역자/목자/서번트/사역팀장들의 성령충만과 강건함을 위해 기도합시다. 각 가정의 부모를 위해서, 나라와 민족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