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의 땅을 향해 54. 출 26: 1-37,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막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2023.08.10 10:09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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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26: 1-37,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막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찬325장(예수가 함께 계시니)

성막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막의 말씀이 중요한 것은 그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시길 원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깨졌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막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이 성막의 이야기는 단순히 성막을 짓는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로 죄악과 사망에 있던 온 인류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하셔서 그 관계를 회복시키시는 것과 같은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처럼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시키는 개념이 이 성막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26장은 그 성막의 전체적인 구조물을 어떻게 세워 나가고 만들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부터 14절’을 보면 ‘성막 위를 덮는 덮개를 만드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을 보면 이제 성소와 지성소를 천막으로 덮게 하시는데, 이것을 네 곁으로 덮게 하셨습니다.

‘1절, 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열 폭으로 성막을 만들어라. 그 천은, 가늘게 꼰 모시 실과 청색 실과 자주색 실과 홍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놓아 짠 것이라야 한다. 각 폭의 길이는 스물여덟 자로 하고, 너비는 넉 자로 하되, 폭마다 그 치수를 모두 같게 하여야 한다.”

이것은 네 개의 덮개 가운데 ‘첫 번째 덮개’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모시 실과 청색 실과 자주색 실과 홍색 실로 정교하게 수놓아 짜서 만든 덮개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어 덮개를 덮는데, ‘1절’에서 ‘정교하게 수를 놓는다’는 것은 엄청난 수고와 헌신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온 정성과 노력을 다해 아름답고 정말 정교하게 수를 놓은 작품을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성막으로 덮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연결하기 위해서 덮는 첫 번째 덮개야 말로 온갖 정성을 다해 만들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정성이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자랑거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랑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의 귀한 것으로 정성을 다했다하더라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다른 인간에 대한 자랑거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본다고 하면서 정작 남들이 알아주지 못하면 섭섭해 하고, 시험 들고, 그만 두는 것이 우리의 섬김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는 정성이 아니라 보이지 하나님을 향한 정성을 다함으로써 보이는 사람에 대한 정성까지도 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휘장 덮개에서 중요한 것은 이것을 ‘연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열 폭의 덮개를 연결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6장’을 보면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이어서 만들라’는 단어입니다. ‘연결해서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연결하는 고리와 갈고리의 숫자와 위치까지도 정확하게 말씀해 주시는 이유는 바로 그것을 완벽하게 연결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위치에 정확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에서 ‘죄’라는 단어의 어원은 ‘벗어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날 때, 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녀로서의 위치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죄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위치를 벗어났기 때문에 죄 가운데 있게 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의 위치를 지키며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붙들며 사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기도 안에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확한 삶의 위치에 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고,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목장이, 우리의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온전히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15절부터 30절’의 말씀을 보면 이제 ‘성소와 지성소를 세우는 벽채를 만드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본문을 보면 성소의 기둥의 벽채는 하나가 아닌 48개의 널판을 가지고 그 밑에 은받침을 두어 중심을 잡게 합니다. 그런데 ‘은’이란 ‘진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소의 기둥이 은받침 위에 놓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의 삶 역시 은받침과 같은 ‘진리 위에 놓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럴 때,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널빤지를 ‘아카시아 나무’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성막의 기구들이 ‘아카시아 나무’, 즉 ‘조각목’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조각목’에 ‘금’을 입히게 됩니다. ‘조각목’은 광야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가장 흔하고 가치가 없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가치 없는 것에 가장 가치가 있는 금을 입히시고, 가장 귀한 성막의 기둥으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날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가치 없고, 볼품없고, 인정받지 못한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금보다 더 값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어주시고, 이제는 그 어떤 것보다 존귀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31절부터 37절’까지는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는 ‘휘장’에 대한 말씀인데, 여기서 ‘휘장’이란 영어로 ‘커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떻게 보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열면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잘 알고 있듯이 이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만은 누구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셨을 때,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이 찢어지는 것이 예수님의 마지막 구원의 완성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로 이제는 누구나 하나님의 지성소,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가 믿음의 백성을 향해 ‘왕 같은 대제사장’이라고 말한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에, 이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대제사장과 같이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 가운데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그 임재와 은혜 가운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과 같은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묵상하는 이 성소의 재료들이 이제는 그 하나 하나가 믿음의 성도임을 기억하고 가치 없는 조각목에 금을 입혀 존귀한 존재로 삼으신 것처럼, 우리 또한 우리의 삶이 가치 없는 삶이 아니라, 의미 없는 삶이 아니라, 단지 고난과 어려움가운데 있는 삶이 아니라, 그 삶을 하나님 앞에 거룩히 드릴 수 있는, 그래서 그 삶에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 하시고, 은혜가 함께 하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감격과 은혜가 넘쳐나,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 제목: 우리의 삶이 세상의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며 살게 하소서.

중보 제목(목: 지도자들): 담임 목화자/교역자/목자/서번트/사역팀장들의 성령충만과 강건함을 위해 기도합시다. 각 가정의 부모를 위해서, 나라와 민족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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