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의 땅을 향해 53. 출 25: 10-40, 그곳에서 내가 너와 만나고 말하겠다.
2023.08.09 07:31
예수인교회
출 25: 10-40, 그곳에서 내가 너와 만나고 말하겠다. 찬 268장(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출애굽기는 참 재미있는 책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참 재미없는 책입니다. 1장-24장까지는 흥분되고 재미있지만 25장부터는 이야기가 아니라 성막을 짓는 방법과 제사장 옷 등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런 내용들은 솔직히 재미도 없고 나에게 의미도 없기에 skip 하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는 이 부분들을 우리와는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부분들을 너무 좋아합니다. 왜일까요? 자신들에게는 매우 선명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이야기와 내용을 너무도 잘 알기에 매우 흥분하면서 신나게 이 부분들을 읽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잘 모르기에 지루합니다. 오늘의 성막과 성소 우리에게는 지루하지만 유대인들에게는 다르게 다가오면서 심지어 행복해 하는 이유는 뭘까요? 바로 그들이 예배하는 하나님을 만나고 제사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이야기이며 구원해주실 하나님, 그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 안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약 ‘예수인교회’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대로 지어진 교회라면, 심지어 목장을 지정해주시고, 그 목원들까지 하나님께서 지정해주셨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주일에 매우 기대와 흥분된 모습으로 누구보다 먼저 와 있을 것입니다. 또한 새로운 사람이 오거나, 자신의 지인들을 데리고 와서 아마 흥분된 목소리로 자랑하고 신나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같은 이야기를 해도 전혀 지루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막이 무엇이길래,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언약궤, 진설병, 등잔대를 놓는 것이 무엇이길래 그들은 그토록 흥분하며 기대하며 이 본문들을 읽었을까요?
<본론> 성막은 어떤 곳입니까?
첫째, 성막은 하나님이 직접 디자인해주신 곳입니다.
40절 “이 모든 것을, 내가 이 산에서 너에게 보여준 모양 그대로 만들도록 하여라.” 이 성막과 성소에 있는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보인 양식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이것이 나와 어떻게 연관이 될까요? 우리도 지금 당장 성막과 성소와 지성소를 만들어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까요? 이런 부분이 참 힘이 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는 모세 오경에 속해 있습니다.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까지입니다. 그런데 창세기는 과거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그리고 신명기는 미래 가나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아야하는 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레위기는 시간의 변화가 아닌 제사하는 방법, 거룩한 백성이 되는 방법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출애굽기와 민수기는 시제가 어떨까요? 바로 현재, 지금-여기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에서 말하는 것들을 읽을 때 과거 한 사막에서 텐트에 무엇을 진열할지에 대한 이벤트가 아닙니다. 모세가 지금 – 여기에서 예배드리고 있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그럼 이 성막과 성소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제사입니다. 그래서 성소의 큰 2가지의 의미는 1) 우리의 죄를 씻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의 역할입니다.
그럼 마태복음 1장 21절을 한 번 보겠습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아멘 또한 1장 23절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즉 출애굽기 25장에서 말하는 모든 역할을 누가 이루어 내십니까?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결국 궁극적으로 성막-성소는 예수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지금은 예수님께서 모든 죄를 대신하여 단번에 죽으심으로 해결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음으로써 주일에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의 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용서받고 우리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성막과 성소의 모든 것을 직접 디자인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하나님이 직접 디자인하셨습니다. 그럼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예배를 드리러 올 때,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까,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할까, 내가 무엇으로 예배할까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둘째는 성막은 하나님께서 만나주시는 곳입니다.
22절에 “내가 거기에서 너를 만나겠다. 내가 속죄판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할 모든 말을 너에게 일러주겠다. ”아멘 다른 종교와 우리 기독교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일까요? 다른 종교는 인간이 신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하나님이 언제나 먼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오시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직접 오셨습니다. 그리고 38년된 병자를 직접 찾아가십니다. 삭개오를 찾아가셨습니다. 열 두 제자를 먼저 찾아가십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를 선택하셔서 먼저 찾아오십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인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먼저 은혜를 베푸셨기에 우리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을 만드신 이유는 우리를 귀찮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복잡하게 만들어서 우리를 힘들게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를 만나 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친히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주시고 약속하십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하나님께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에서 ‘성막, 증거궤’가 나오면 ‘아~ 재미없다. 지루하다.’가 아니라, ‘아~하나님께서 나를 잊지 않고 부르고 초대하고 계시는 구나…’라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예배의 자리에 나오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벌써 주일이네…’‘또 교회에 가서 봉사해야 하는구나…’이런 마음이 드십니까? 나와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지 다시 한 번 꼭 확인하십시오. 예배의 자리가 기쁨과 설렘과 감사가 아니라 의무감과 버거움과 고통스러움이 있다면 내 안에 구원의 기쁨이 있는 지 다시 확인해보셔야 합니다. 교회는 억지로 오는 곳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를 만나시겠다고 초대하는 자리입니다. 은혜의 자리인 것입니다.
셋째. 성막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말씀하시겠다고 하십니다.
22절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우리가 마음 속에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여기 ‘현재’를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두 그룹 사이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이르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너무 개인 소유화 하려고 합니다. 기독교 신앙을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맞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 성경은 1차적으로 개인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공동체에게 선포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1차적으로 공동체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개인 큐티를 할 때 드는 강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 강렬한 음성이 개인의 신앙 성장을 위해서 좋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성경을 벗어나거나 교회에 유익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성령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럼 성령하나님께서 말씀을 벗어나는 음성을 주시거나, 교회에 유익이 되지 않는 말씀을 주실 수 있습니까?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나한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말씀에 맞춰지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만나기 위해서 직접 계획하시고 일하십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곳에서 만나시겠다며 우리를 초대하시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대에는 성막을 만들어서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출애굽기 오늘의 본문의 말씀을 이해할 때 무엇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까? 바로 우리가 매주 드리는 예배입니다. 약속하셨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아멘 오늘 예배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할 모든 일을 말씀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예배 마치고 ‘아~ 은혜받았어’라고 말하곤 합니다. 여러분 은혜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단순히 내가 감동받고 감정적으로 자극이 되었을 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은혜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했을 때’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매 예배 때마다 은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십니까?, 매 순간 삶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는 은혜를 받습니까? 나의 감정이 main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main입니다. 성막과 성소의 핵심도 ‘내가’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핵심인 것입니다.
글자로 만난 하나님이 아닌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깨닫고 만난다면 지루한 성소와 성막의 내용이 아닌 기쁨과 감동이 될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가득하다면 매주 드려지는 지루하고 피곤한 예배가 아닌 기쁨과 감동과 감사가 넘치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제목: 먼저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순종하는 성도가 될 수 있게 해달라고,
중보 제목: (수: 다음세대) 교육부서, Youth, 청년부서가 부흥하여 다음세대를 이끌 수 있는 리더가 될 수 있도록, 또한 세대가 악하지만 말씀으로 잘 분별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마지막으로 이들과 함께 믿음으로 가르칠 수 있는 교사와 동역자를 보내달라고 기도 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