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의 땅을 향해 47. 출 22: 16-31, 너희는 나를 섬기는 거룩한 백성이다.

2023.07.21 10:15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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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22: 16-31, 너희는 나를 섬기는 거룩한 백성이다. 찬 288장(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우리가 지난주부터 살펴보고 있는 ‘십계명’과 그 십계명의 ‘세부적인 말씀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제 7계명’ ‘간음’에 대해, ‘제 10계명’ ‘이웃의 소유를 탐하는 것’, 그리고 ‘제 1계명’과 ‘제 2계명’의 세부적인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 제 마음에 가장 깊이 다가온 말씀은 ‘31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십계명과 그에 대한 세부적인 명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와 목적이 31절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31절 앞부분’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나를 섬기는 거룩한 백성이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십계명과 그 세부적인 말씀을 왜 주셨고, 또 우리가 그 말씀을 왜 지켜야 합니까?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제를 보면, 이 말씀은 ‘앞으로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이 말씀을 잘 지켜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라’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그리고 그 구원의 약속을 믿음으로 ‘이미’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과 하나님의 명령은 아무나 지키는 법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이미 구원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지키는 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모습을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 번째는 ‘구별되고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세상과 구별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거룩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6절, 17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이 아직 약혼하지 않은 처녀를 꾀어서 건드리면, 그는 반드시 신부의 몸값을 내고,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 들여야 한다. 그 여자의 아버지가 자기 딸을 그에게 절대로 주지 않겠다고 하면, 그는 처녀를 신부로 데려올 때에 내는 값에 해당하는 금액을 치러야 한다.”

이 말씀은 ‘육신의 정결’, ‘육신의 구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당시에는 ‘약혼’은 ‘결혼’과 같은 효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약혼하지 않았다’는 것은 ‘남녀가 서로 눈이 맞아 동침을 한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남녀의 ‘결혼’이라는 하나님이 주신 남녀 간의 제도를 무시하고 동침부터 한 경우, 남자는 대가를 지불하고 그 처녀를 아내로 맞아야 하는데, 문제는 그 처녀의 아버지가 이를 거부할 때입니다. 그 때 남자는 당시에 여자를 데리올 때, 신부의 집에 ‘납폐금’이라는 결혼 비용을 지불하게 되어 있는데, 그 ‘납폐금’, 즉 돈만 그 아버지에게 지불하고 여자는 데려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엄청난 금액을 지불하게 함으로써, 약혼과 결혼의 정결함 없이 범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8절부터 20절’까지의 말씀은 ‘영혼의 정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8절’에 보면 “마술을 부리는 여자는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마술을 부리는 여자’는 ‘무당, 박수, 귀신과 신접한 자’를 말합니다. 영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을 금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19절’을 보면 입에 담기조차 거북한 말씀이 나오는데, 이것은 ‘사람이 동물과 성관계를 갖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성적 타락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같은 행위는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 살게 될 가나안의 종교, 특히 ‘바알’을 섬기는 이방신, 세상 신을 섬기는 이방 사람들의 종교 행위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바알’의 형상을 ‘소’로 만들고, 또 ‘소’와 성행위를 함으로써, ‘바알신’이 가지고 있는 힘과 능력과 축복이 자신에 넘겨져 온다고 믿었습니다. 바로 그들이 섬기는 신을 상징하는 짐승과 성관계를 통해 그 신과 함께한다는 우상숭배의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2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 밖의 다른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자는 반드시 없애야 한다.”

바로 영적 순결을 잃어버린 영적 타락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이란 ‘세상의 것과 구별되고 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 앞에 거룩하기 위해 ‘같아야 한다, 닮아가야 한다’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21절에서 24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너희에게 몸붙여 사는 나그네를 학대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몸붙여 살던 나그네였다. 너희는 과부나 고아를 괴롭히면 안 된다. 너희가 그들을 괴롭혀서,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반드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주겠다. 나는 분노를 터뜨려서, 너희를 칼로 죽이겠다. 그렇게 되면,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될 것이며, 너희 자식들은 고아가 될 것이다.”

이 말씀은 명령과 경고의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나그네를 돌아보고, 과부를 돌아보고 고아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5절, 26절’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해 말씀합니다.

“너희가 너희 가운데서 가난하게 사는 나의 백성에게 돈을 꾸어 주었으면, 너희는 그에게 빚쟁이처럼 재촉해서도 안 되고, 이자를 받아도 안 된다. 너희가 정녕 너희 이웃에게서 겉옷을 담보로 잡거든, 해가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우리가 앞에서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강한 자, 힘있는 자가 아니라 약한 자, 가난한 자, 부족한 자,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심령이 가난한 자를 돌보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돌보는 사명을 주신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2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몸붙여 살던 나그네였다.”

너희도 하나님은 은혜가 없었다면 영원한 종살이와 나그네로 살아갈 수밖에 없던 불쌍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보혈이 없었다면 죄악과 사망의 영원한 저주에서 종살이하고, 나그네로, 과부와 고아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그네였던 우리를 돌보심으로써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천국과 본향을 향해 가는 축복의 사람이 되게 하셨고, 하나님은 우리의 남편이 되어주셨고, 하나님은 고아같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셨고, 하나님은 가난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면서 우리를 부요케 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과 은혜를 받은 우리는 과거 우리와 같았던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은혜, 내가 누린 사랑을 하나님과 함께, 주님과 함께, 성령님의 은혜 안에서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이란 단지 세상과 다른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다르면서 동시에 세상가운데 하나님과 같은 모습을,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있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드려질 때’ 우리는 거룩해 집니다.

’28절부터 30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하나님께 욕되는 말을 하거나, 너희 백성의 지도자를 저주하지 못한다. 너희는 곡식을 거두거나 포도주를 빚거나 올리브기름을 짠 다음에는, 거기에서 얼마를 나에게 제물로 바쳐야한다. 너희는 맏아들들을 나에게 바쳐야 한다. 너희 소나 양도 처음 난 것은 나에게 바쳐야 한다. 처음 난 것들은, 이레 동안은 어미와 함께 있게 하고, 여드렛날에는 나에게 바쳐야 한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지도자를 욕되게, 또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단지 ‘지도자를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주신 권위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주권과 질서 아래 우리의 순종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29절’에 ‘처음 것’을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가 출애굽의 마지막 재앙이었던 ‘장자의 죽음’을 통해 살펴보았던 것처럼, ‘처음 것이라는 의미는 나의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즉 ‘처음 것을 하나님께서 드린다’는 것은 바로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드린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께 나 자신을 드리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거룩’은 하나님께 ‘드려질 때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시내산’이 다른 산보다 아름다워서 거룩한 산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 산의 원래 이름은 ‘호렙산’이었습니다. 그 뜻은 ‘버려진 땅’이란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 산이 하나님께 드려지니까,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사용하시니까 거룩한 ‘시내산’이 된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의 삶의 거룩해 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드려질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때입니다.

그러므로 ‘거룩’은 세상과 구별되고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과 떨어지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내 삶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 삶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때, 우리는 참된 거룩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레위기 11장 4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온 주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기도제목: 세상과 구별되고, 예수님을 닮으며, 내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살게 하소서.

중보제목(금: 선교지/모든 예배): 15곳의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주일/새벽/목장예배를 통해 주님의 마음을 품는 영혼구원의 신앙을 갖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예스미션을 통해 선교지와 지역교회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참가하는 모든 성도들이 큰 은혜를 받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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