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의 땅을 향해 43. 출 21: 1-11,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2023.07.14 10:37
예수인교회
출 21: 1-11,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찬 286장(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십계명’을 비롯한 우리가 살펴볼 모든 하나님의 ‘언약법전’의 중심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향한 하나님의 백성의 사랑’이 율법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백성 앞에서 공포하여야 할 법규는 다음과 같다”
여기서 ‘법규’라는 단어는 단순히 ‘법’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라 ‘언약을 이루는 법’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이 주신 법은 지키기 위한 법이 아니라 언약을 성취하기 위한 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말씀하신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법이 ‘종’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이례적인 말씀이었습니다. 당시 고대근동의 대부분의 법전의 종에 대한 법은 가장 마지막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종은 그만큼 큰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언약법전’을 선포하시면서 ‘종’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법의 핵심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약한 자, 소외된 자, 멸시 받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2절부터 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종살이를 해야 하고, 일곱 해가 되면, 아무런 몸값을 내지 않고서도 자유의 몸이 된다. 그가, 혼자 종이 되어 들어왔으면 혼자 나가고, 아내를 데리고 종으로 들어왔으면 아내를 데리고 나간다. 그러나 그의 주인이 그에게 아내를 주어서, 그 아내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으면, 그 아내와 아이들은 주인의 것이므로, 그는 혼자 나간다. 그러나 그 종이 ‘나는 나의 주인과 나의 처자를 사랑하므로, 혼자 자유를 얻어 나가지 않겠다’ 하고 선언하면, 주인은 그를 하나님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의 귀를 문이나 문설주에 대고 송곳으로 뚫는다. 그러면 그는 영원히 주인의 종이 된다.”
이 말씀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될 때, 어떤 사람은 많은 것을 얻고 누리며 살겠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삶의 문제로, 건강의 문제로, 여러 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 빚을 지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빚을 갚기 위해 그 집에서 일을 하며 종으로 살게 될 때, 중요한 것은 아무리 갚을 빚이 많다하더라도 6년이 지나면 반드시 그를 그 종의 신분에서 풀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노예나 영원한 종으로 살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종’의 관한 법을 말씀하시는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법의 목적은 빚진 자가 빚을 갚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빚을 져야 할 만큼 삶의 형편이 힘들고 어려워 스스로의 능력으로 살아갈 수 없는 지극히 약한 사람들, 그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생계를 위해 종으로서 받아들여 그들을 보호하는데 더 큰 목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15장 12절부터 15절’을 보면 종에 대한 법을 다시 한번 언급하는데 이렇게 말씀합니다.
“당신들 동족 히브리 사람이 남자든지 여자든지, 당신들에게 팔려 와서 여섯 해 동안 당신들을 섬겼거든, 일곱째 해에는 그에게 자유를 주어서 내보내십시오. 자유를 주어서 내보낼 때에, 빈 손으로 내보내서는 안 됩니다.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대로, 당신들의 양 떼와 타작 마당에서 거둔 것과 포도주 틀에서 짜낸 것을 그에게 넉넉하게 주어서 내보내야 합니다. 당신들이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한 것과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을 거기에서 구속하여 주신 것을 생각하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오늘 이러한 것을 당신들에게 명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종을 안식년이 되어 풀어줄 때, 그냥 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주인에게 베푸신 은혜와 축복만큼, 그 주인 또한 그 종에게 넉넉히 베풀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빚을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빚을 받는 것보다 오히려 그들이 빚에 허덕이는 삶에서,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 벗어나는 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은 약자를 돌보고, 그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근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신명기 말씀을 보니까 “너희가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것을 하나님께서 거기서 구원하신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도 이집트에서 종 되었던 때에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너희도 내 집에 있는 종들을 어떻게 함부로 대하며, 일꾼들을 어떻게 함부로 대하며 그들의 억압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전적인 은혜로 종에서 구원하신 것처럼, 너희도 그들을 돕고, 그들의 그 고난과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법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오늘 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영원히 사망의 메여 사탄의 종노릇하며 멸망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죄인이었던 우리가 오로지 전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내 노력이나, 선행이나, 행함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일방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구원의 은혜를 받은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주님이 내게 하신 것처럼 남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아래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고 그들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얻기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7절부터 11절’의 말씀은 ‘여종’에 대한 말씀인데, 이것 또한 당시 가장 연약했던 여자 종에 대한, 그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특히 본문에서 ‘여종’이란 단어는 일을 시키는 ‘일반적인 여종’이 아니라 남자가 자신의 ‘첩으로 삼기 위해 사온 여종’을 말합니다. 당시 ‘첩’이란 사회적으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주인에게 버림받으면 갈 곳이 없는 물건 취급을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조차도 귀하게 생각하신 것입니다. 더욱이 법으로, 그것도 가장 먼저 말씀하시면서 철저히 보호하고 아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14장 3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억압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분을 모욕하는 것이지만, 궁핍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그를 지으신 분을 공경하는 것이다.”
또 ‘잠언 19장 17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주님께 꾸어드리는 것이니, 주님께서 그 선행을 넉넉하게 갚아 주신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이웃을, 주변의 사람들, 가족들, 이웃들, 성도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주변의 약한 자, 소외된 자, 낮은 자, 나보다 못하고, 나보다 부족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없는 자라고 무시하고, 무식하고 교양이 없다고 정죄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그들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무 대가없이 전적인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기도제목: 내 삶에 구원의 은혜를 간직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나타내는 삶을 살아 주님이 기뻐하시는 영혼구원의 사명을 이루게 하소서.
중보제목(금: 선교지/모든 예배): 15곳의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주일/새벽/목장예배를 통해 주님의 마음을 품는 영혼구원의 신앙을 갖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예스미션을 통해 선교지와 지역교회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참가하는 모든 성도들이 큰 은혜를 받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