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의 땅을 향해 39. 출 20: 1-3,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성도만이 할 수 있는 것(제 1계명)

2023.07.07 10:24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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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20: 1-3,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성도만이 할 수 있는 것(제 1계명), 찬 430장(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신약의 핵심 사건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통한 구원’이라면 구약의 핵심 사건은 ‘출애굽기 19장, 20장’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을 받는 ‘출애굽기 19장과 20장’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언약을 결혼식의 장면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19장’을 보면 하늘의 천둥소리가 치고, 나팔소리가 나면서 하나님이 시내산 안개 속에 임재하십니다. 이것은 마치 신랑이 신부를 맞으러 나오는 장명입니다. 그리고 신부는 신랑을 맞이하기 전에 순결을 지키고, 또 깨끗하고 정결한 옷을 입고 신랑 앞에 나옵니다. 마치 어제 말씀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을 성결케 하고, 옷을 깨끗케 하며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그 결혼의 가장 중요한 ‘결혼 선언문’, 즉 ‘십계명’이 선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장면은 ‘광야의 결혼식’입니다.

‘십계명’이란 단어는 성경에 없습니다. ‘십계명’이라고 하면 ‘명령’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성경에는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 마디의 말씀’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1절 “이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방법,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미 이집트에서 구원하셨고, 그 후에 주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계명을 주신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믿음의 성도가 이제는 어떻게 그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살 수 있는지를 알려주시기 위해 주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4절’을 보면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령에 따라 사는 성도가 율법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성령충만을 받아야 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 특히 십계명을 억지와 부담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로 행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통해 날마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누릴 때, 말씀을 지키는 삶이 짐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과 감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을 비롯한 성경에 기록된 율법이 613가지인데, 그 중에 248개는 ‘~하지 말라’는 ‘부정명령’이고, 365가지는 ‘~을 하라’는 ‘긍정명령’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율법은 ‘10가지의 계명’을 요약할 수 있고, 그것을 다시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나눌 수 있으며, 그 모든 것을 하나로 요약하면 ‘사랑’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은 사랑이 없이는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감사와 기쁨이 없이는 행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말씀이며 십계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 삶에 말씀이 부담이 되고, 올무와 같이 느껴진다면, 그 이유는 내 삶의 문제가 환경 때문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에 대한 첫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3절’에 ‘첫 번째 계명’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

‘내 앞에서’라는 원어 단어를 직역을 하면 “내 얼굴 앞에서”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 1계명을 직역을 하면 “너는 내 얼굴 앞에서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 “너와 나 사이에 다른 신들이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어떤 것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면서도 ‘바알’이라는 우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알’이 내 삶의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고대근동에서 신의 존재는 단순히 종교적인 믿음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으며, 삶의 문제였습니다. 마치 오늘날의 돈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은 믿지만 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알’을 ‘돈’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당시 ‘가나안’에서 ‘바알’은 ‘풍요’와 농사의 ‘비’를 주관하는 신이었습니다. 그래서 농사를 지으면서 ‘바알’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사사기’나 ‘역대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끝임 없이 이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갈등을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도 믿었지만 농사를 주관하는 ‘바알’도 함께 섬겼던 것입니다. 바로 1계명은 이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삶 때문에, 내 생활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섬기는 우상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오늘 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버드 대학’의 종교사회학 교수인 ‘하비 콕스’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 21세기는 기독교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과 ‘돈의 신’이 대결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당신이 마음에 두고 의지하는 것이 바로 당신의 하나님이다”

그래서 십계명의 1계명을 라틴어로 ‘코람데오’라고 하는데, 이 뜻은 ‘하나님 앞에 있다’는 뜻으로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 드러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질의 문제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 내가 하나님이 아닌 물질 앞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또 건강의 문제의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지금 내가 하나님이 아닌 건강이라는 우상 앞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문제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문제와 어려움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호세아 2장 8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그에게 준 것이요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그에게 더하여 준 것이거늘 그가 알지 못하도다”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바로 우리의 모든 소유가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바알의 우상 앞에 섬겼던 그것조차도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문제로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에 사로잡혀 있는 삶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 2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바로 세상의 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에 따라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며, 그 기쁨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제목: 하나님 앞에 온전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소서.

중보제목(금: 선교지/모든 예배): 15곳의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주일/새벽/목장예배를 통해 주님의 마음을 품는 영혼구원의 신앙을 갖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예스미션을 통해 선교지와 지역교회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참가하는 모든 성도들이 큰 은혜를 받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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